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僧舞)’ 전문>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인 조지훈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승무'는 대표적인 민속춤의 하나로, 승복을 입고 추는 춤을 일컫는다.
지금도 전승되고 있으며, 우리 전통춤의 핵심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작품은 시인이 멀리서 누군가 추는 승무를 엿보고 지은 것으로, 승무를 추는 이에게서 삶의 번뇌를 이겨 내려는 모습을 포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승무를 출 때 쓰는 고깔이 마치 나비처럼 느껴지고, 고깔 안에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인은 승무를 추는 이에게서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이 촛불에 반짝이는 모습을 포착하였고, 그 모습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미 밤은 깊어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아 내리고,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고 있는 시각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춤을 추는 이의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의 모습도 선명하게 시인의 눈에 각인되었던 것이다.
춤을 추다가 문득 멈춰선 순간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운 모습이 포착되었다.
여전히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춤을 추는 이에게서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처럼 사라지길 기원해 보기도 하였다.
다시 춤을 추던 이의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으로 모아졌을 것이다.
어디선가 귀뚜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어느덧 밤이 깊어 시간도 삼경(새벽 1~3시)에 접어들었다.
마지막 행은 다시 1연의 두 행을 한 행에 배치하면서, 승무를 추는 이의 나비같은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