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가로서의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를 제안하면서, 엄연히 법이 존재하지만 법의 권위가 미치지 못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가 제안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용어는 본래 고대의 로마에서 '누구나 죽여도 살해의 책임을 지진 않지만, 희생물로는 바쳐질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킨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 사회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며, 아울러 신에게도 버림을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아감벤의 저작인 <도래하는 공동체>는 아감벤의 사상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으며,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데 대한 철학적 해석을 제시하는 에세이들을 엮어낸 책이다. 그 형식이 단편적인 용어에 대한 설명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감벤의 사유를 관통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의 철학적 사유가 바탕이 된 것이라서, 그 내용은 결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출간한 20여 권의 저서 가운데 6번째로 출간했으며, 이 책은 ‘본격적인 정치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처음으로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아감벤은 1989년에 있었던 중국의 천안문(톈안먼) 시위에 대해서 논하면서, ‘사케르는 인간 세계에서 배제된 자아며 사람들은 그를 희생물로 바쳐서는 안 되지만 죽일 수 있었고 그것은 살인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하면서, 여전히 중국에서 국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당시 희생자들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관점이 확대되어 현대 사회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일컫는 ‘호모 사케르’라는 표현을 제안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번역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이후 전개될 아감벤의 정치적 프로그램의 모색이자 선언이자 예고로 읽힐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 역시 아감벤의 저작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사상의 일단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의 내용이나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임의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결국 모든 존재와 상황들은 필연적이기보다는 ‘임의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이해된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에 도래할 공동체 역시 임의적일 수밖에 없고, 그 성격이나 형식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이해된다.
이 책에는 서문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단지 ‘후기’를 통해서 책의 성격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 번의 독서로는 아감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여기고 있기에, 독해의 어려움을 현재 상태 그대로 놓아두고 다시 정밀하게 읽어볼 수 있기를 기약해 본다. 어쩌면 불확실성이 더욱 짙어지는 시대를 예견하고 ‘임의적’이라는 용어로 그 성격을 규정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