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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사에서 조선 후기는 이전의 시기와는 달리 다양한 주체들이 부상하여, 그에 적합한 다기한 형식과 내용을 지닌 작품들이 출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관점인 ‘토풍’과 ‘화풍’의 대립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인 ‘화풍’으로부터 벗어난 사유가 왕성하게 등장하여 ‘토풍’의 다양한 특징들이 이 시기에 부각되었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문제는 ‘토풍’과 ‘화풍’의 대립이 고전문학사의 특징을 서술할 수 있는 유일한 준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도 그러한 관점을 문학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가운데 하나로 전제하고 있음을 물론이다. 그렇기에 조선 후기의 다기한 문학적 경향들은 문학 혹은 예술에 대한 지식 계층의 독점 구조가 유지될 수 없었던 시대적 흐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2권에서 19세기 조선의 지식운동을 이끌었던 집단을 ‘연암그룹’이 아닌 ‘담연그룹’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연그룹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담원 홍대용’이며, 그의 저작 <의산문답>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논거이다. 3권은 ‘탈중화주의와 새로운 세계관의 정초 -<의산문답>’이란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홍대용의 저작과 문학적 성과를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조선의 문화 박지원’이란 제목으로, 그동안 문학사에서 조선 후기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다뤄졌던 연암 박지원의 문학적 성과와 그 영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만들었던 ‘담연그룹의 문학과 학문’에 대해서 논의가 이어짐은 자연스러운 구성이라고 여겨진다.
문학사를 바라보는 저자만의 관점은 신분차별에 강한 저항의식을 드러냈던 이언진을 ‘괴물의 등장’이라고 표현한 다음 항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생사를 건 인정투쟁 ?이언진의 등장과 <호동거실>’이라는 제목이 바로 그것인데, 비록 27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시편들에서 드러낸 의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시련을 겪고 유배지에서 학문적 성과를 드러낸, ‘추방된 자의 글쓰기 ?정약용과 이학규’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의 문학적 성과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 후기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한문으로 기록한 야담(야담의 성행과 <청구야담>)과 함께 민중 양식이었던 탈춤(탈놀이와 민중 의식)에 대한 관심도 각각의 항목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박지원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김려와 이옥을 ‘근대의 선취’라는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의 문학적 성과 역시 적지 않게 산출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여성 주체의 새로운 모습들’로 갈무리하여 서술하고 있다. 다만 주로 한문학 자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고전시가 자료는 가사 <덴동어미화전가>의 내용 일부를 언급하면서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저자의 강의 마지막 주제는 ‘근대와 고전문학의 행방’이라는 제목으로 20세기 초반 근대문학과 고전문학이 공존했던 시기의 상황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단절이 아닌 공존 혹은 계승으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3권에서도 <청구영언>을 비롯한 조선 후기 시가문학의 향방이나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왕성하게 창작되었던 ‘규방가사’ 등의 주제를 다루지 않는 등, 시가문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미약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역시 저자가 그동안 한문학과 고전소설을 주로 연구했던 터라, 고전시가 분야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때문으로 이해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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