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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모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서술자인 나(지연)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모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이상적인 모계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을 떠올렸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가족을 건설해나가는 안토니아의 모계로 이어지는 계보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계보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억눌렸던 여성들의 현실을 그대로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이 여러 대에 걸친 모계에서 각각의 어머니와 딸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의 관계를 노정하고 있으며, 각 세대의 부부 관계 역시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이지만 분명 사랑으로 결합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하게 된 ‘나’(지연)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어렸을 적 잠시 머물렀던 ‘희령’에 직장을 구해 서울을 떠난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친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모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 가족의 서사를 듣게 되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삼천이’라고 불렸던 증조모와 중혼으로 인해 남편에게 비림을 받앗던 할머니(영옥), 그리고 그러한 가족 출신으로 인해 할머니로부터 멀어졌던 어머니(미선)와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해서 홀로서기를 하는 ‘나’(지연)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그 사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왔던 증조모의 사연이 할머니가 간직했던 편지를 통해 소개되고, 할머니의 사연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 갈등 관계에 놓인 사연도 드러나고 있다.
실상 중조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남편 등의 존재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각 세대의 여성들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존재로서 이야기의 전개에 주변적인 존재로 치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년이 되어 희령을 떠난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할머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두 사람 모두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그려지고 있다. 이유를 몰랐던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할머니와 어미니의 갈등은 증조모로부터 시작되는 여성 가계의 서사를 통해 조금씩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성 가계의 서사에서 남자들은 주변부에 머물면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증조모는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난 증조부의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선택되어 결혼을 하게 된 존재이다. 그런 이유로 시댁이 있는 고향 ‘삼천’로부터 벗어나 개성에서 살아야 했으며, 병든 어머니를 거두어 준 증조부의 친구 ‘새비 아재비’의 가족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개성을 떠나 피난길에 나섰고, 증조모는 먼저 피난을 떠난 새비네 가족들이 있는 대구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여유로운 생활을 하던 증조모 가족은 증조부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희령으로 떠나 다시 헤어지게 된다. 비록 몸을 떨어져 있지만 틈틈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증조모와 새비네와의 우정은 이어졌던 것이다.
‘새비 아재비’의 부인인 ‘새비’와 중조모 ‘삼천이’의 우정, 그리고 오랜 세월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새비’와 ‘삼천이’가 떨어져 살 때 주고받았던 편지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딸들인 할머니(영옥)과 새비 아주머니의 딸인 희자와의 우정과 삶의 엇갈림도 작품을 힝미롭게 이끌어가는 소재라고 하겠다. 증조모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는 각각 남편 혹은 시가에서 원하는 아들이 아닌 딸들을 낳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남성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티프라고 하겠다.
작가는 아마도 이들이 아들을 낳았다면 남편 혹은 시가로부터 조금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딸만 낳았기 때문에 갈등과 냉대를 견디며 살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새비 아재비’를 제외한 남편들은 딸과의 관계가 소원한 것으로 그려지고, 극단적으로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한 딸(지연)에게 이혼했다는 사실로 인해 악담을 퍼붓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작품의 결말부까지 각각의 모녀들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증조모로부터 시작된 여성 가계의 서사를 이해하면서 조금은 서로의 갈등 관계가 풀릴 수 있음이 예견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은 새비 아주머니가 죽은 후 한국을 떠났던 희자에게 지연(나)이 메일을 보내 할머니(영옥)과 만나러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들을 중시하는 기존의 관념이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서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환영받지 못하던 여성들의 서사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이해된다. 부부 혹은 모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모두 편한 잠을 잘 수 없었던 밤을 지새워야만 했을 터이지만, 작가는 마지막 서로의 갈등이 옅어지면서 앞으로 그들의 밤은 <밝은 밤>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 이상적인 여성 가계를 꾸려가는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 조금은 환상적으로 느껴졌다면, 각 세대의 모녀와 부부 갈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 작품의 전개는 그대로 한국 현대사와 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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