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1)
-오랜만일세. 요새는 어떻게 사는가?
-그냥 그렇지 뭐. 그런데 갑자기 료칸처럼 살고 싶기도 하네.
-료칸?
-그래. 료칸(良寬)은 18세기말 일본 선승이자 서예가이기도 하네.
-그가 어쨌길레?
-그는 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17세경에 출가하여 다이구료칸(大愚良寬)이라는 법명을 얻어 승려가 되었다네.
-대우大愚라니?
-내 얘길 들어보게.
어느 날 료칸 선사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다네. 그 배의 뱃사공은 성질이 못된이였어. 그는 료칸 선사가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음을 알고, '좋다. 오늘 내가 이 선사가 화내는 모습을 한번 봐야겠다.’라고 마음먹었더라네.
그날은 공교롭게도 손님이 선사 한 사람뿐이어서 뱃사공은 강 한가운데서 실수인 척하며 노로 물을 튀겨 선사의 옷을 적셨다네. 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 뱃사공은 '어럽쇼 !' 하며 이번에는 배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선사를 강물에 빠뜨렸다네. 선사는 헤엄을 칠줄 몰라 곧 익사할 지경이었지. 뱃사공도 결코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강물로 뛰어들어 선사를 구해냈다네. 그랬는데도 선사는 한숨을 돌리며 말했지.
“뱃사공님 ,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이오.”
배가 선착장에 닿자 선사는 다시 한 번 인사를 했다네.
“덕분에 생명을구했소.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정말 대우 아닌가?
요새 세상 사람들은 너무 영리하게 굴어서 가끔 대우大愚처럼 살고 싶구먼.
-대체 나도 공감이 되네. 그래도 늙은이 행색으로 바보처럼 산다면 너무 비참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지만, 요새 회자되는 말 중에 곱게 늙어가는 비법이 있더구만.
-그게 뭔대?
-별 것 아닌 별 것이지.
-그렇기도 하네만, 좀 바보스러워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 뜻인 것 같네.
-그런데 나이 들수록 우아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게 말이야.
-내가 어떤 책에서 따온 글인데 한 번 들어주겠나?
-아무렴.
-나이들수록 우아해지는 사람들의 8가지 특징
1. 내용이 방전될 때까지 내버려 두지 않는다.
2. 먼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산다.
3. 뜨거운 사랑보다 미지근한 사랑이 더 좋다.
4. 하루라도 빨리 용서한다.
5. 내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다.
6. 입은 닫고 귀는 연다.
7. 습관적으로 감사한다.
8. 행복을 저축하지 않는다.
-새겨 둘만한 글이네그려. 독일 민요에 이런 내용이 있드군.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의 길이는 모른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고, 몇 살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나잇값을 하며 올바르게 살고 곱게 늙어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문제는 나잇값이네. 고희(古稀), 즉 70이 넘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드군.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所望)과 다르지. 쉰이 넘고 예순이 지나 일흔이 되면서 외로워 지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말이네.
-괴테는 노인의 삶을 '상실(喪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지.
-우리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라 해도 건강과 일, 그리고 친구, 꿈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아하고 기품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옳은 말일세. 어떤 명예와 지위로도 병을 이길 순 없으니 건강은 건강할 때 신경을 써야겠지.
-그리고 노년의 기간은 절대 짧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해.
-노년의 가장 큰 적(敵)은 외로움과 소외감일 거 같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福 중에서 가장 으뜸의 福이 만남의 福이니 말일세. 배우자와의 만남 만큼 친구 간의 만남은 으뜸이 아닐수 없네. 부부는 평생의 동반자이고, 친구는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지.
-그래, 내가 먼저 좋은 생각을 가져야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내가 멋진 사람이라야 멋진 친구와 함께 어울릴 수 있고, 내가 먼저 따뜻한 마음을 품어야 따뜻한 친구를 만나게 되지 않던가?
-우리 진실하고 강한 우정을 쌓으며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활기차게 살아가세나.
-늙어서도 꿈을 가져야지?
-노인의 꿈은 삶을 향한 소망아닌가.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할 거야.
(차를 마시며)
-인생에 씨줄과 날줄이 있다던데, 그게 무슨 소린가?
-고미숙이 쓴 ‘나의 운명사용설명서’에 나오는 말 같은데?
“인생에는 씨줄과 날줄 있다. 씨줄은 본인의 노력과 재능이며, 날줄은 시대의 흐름, 시대정신, 운이다.”
이렇게 말했지 아마?
-그게 옳은 말 같아. 시대의 흐름과 운에 맞춰서 본인의 노력과 재능을 충분히 살리면 좋은 인생을 가꿀 수 있다는 말이겠지.
-기계처럼 이루고 발걸음을 다시 못 내딛는 그런 사람들이 요새 많지? 검사, 의사, 재벌 회장…
-그래. 결코 행복은 별개야. 목표가 없어도 행복한 사람, 나이가 많아도 행복한 사람, 떨어진 외모에도 행복한 사람, 유머를 몰라도 행복한 사람, 음지 씨앗처럼 자라도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은 자존심을 가지고 자기의 장점을 실현하는 사람이야.
-그렇기도 하구먼. 그래, '미시적 우연'이 뭔지 아나?
-글세.
-나보다 잘난 게 없는데 잘 나가는 사람이라네.
-거시적 우연도 있나?
-그런 말은 듣지 못했는데, '거시적 필연'이라는 말은 있어. 내가 실력을 키워 만나는 기회를 말해.
-아뭏든 인생은 마라톤이야.
-그래. 인생은 정답이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라 했던가?
-노년에 가꾸는 행복은 어떤 걸까?
-자넨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쟎은가!
-유유자적?
-그렇고말고. 무소유, 유유자적, 소요유, 심미, 작은 만족....
-이야기가 너무 철학적이구먼.
-대체 그렇게 되었네그려. 점심 먹으러 가세.
-오늘은 추어탕으로?
-오케이. 점심 먹고 노래방 기기로 흘러간 노래나 불러보세.
(2024.6.15.)
-여담-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만나러 가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지식에 놀랐다. 가마리엘 브래드포드(Gamaliel Bradford)는 이렇게 말했다.
“카우보이든, 의용 기병대든, 뉴욕 정치인이든 외교관이든, 루스벨트 는 상대방에게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비결은 간단하다. 루스벨트는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전날 밤에 손님이 특히 관심 가질 만한 주제를 주제로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모든 지도자들이 그렇듯 루스벨트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은 그 사람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