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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풍경화』의 멈춤과 일상의 일탈(逸脫)
- 정근옥 시인, 우주(宇宙) 그 불멸의 초월성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사) k 정나눔 이사장)
1. 삶의 공간과 휴식의 틈새
시집 평설의 모두(冒頭)에서 국제PEN한국본부 「창립70주년기념 시인선 23」으로 간행된 현재 (사)국제PEN한국본부 감사인 정근옥 시집 『순례길 풍경화』(2024)의 편집 구도처리는 ‘국제PEN 헌장/국제PEN한국본부 연혁, 국제PEN한국본부 창립 70주년 기념선집 발간사, 시인의 말, 시집 목차인 1부 작별하는 바다(19편), 2부 사모니에서의 만난 별(19편), 3부 금강이 흐른다(16편), 4부 메테오라의 수도원(16), [해설 및 시작 노트]’로 결(結) 고운 옷감처럼 시 의미가 응축된 70편이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직조되어 충직한 독자의 시선을 끌어모으기에 거부감이 없다.
특히 33대 이길원 이사장 당시에 고문을 맡게 된 평자의 경우도 반세기 가깝게 펜의 구성원으로 연을 맺어왔기에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순례길 풍경화』의 멈춤과 일상의 일탈(逸脫) - 정근옥 시인, 우주(宇宙) 그 불멸의 초월성」평설에서 그 자신의 시대적 소임을 거론치 않더라도 ‘삶의 공간과 그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정신작업은 엄중하다. 차제에 ‘다름과 틀림’마저 이분화된 선입견으로 타자 간의 갈등과 대립이 극심한 현상에서 그만의 일념으로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고뇌하는 생명감은 이채롭다. 한편 상생과 조화의 틀로 공동체 의식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시 짓기 작업의 시적 행보는 비장감마저 묻어있다.
그렇다. 그 자신의 투명한 현실 인식이 비중 있게 수용된 대다수의 시편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해도 일체의 거부감이 주어지지 아니할뿐더러 혹한으로 얼어버린 정신기후도 따뜻하게 조성시켜주는 맑은 영혼은 신선한 감동의 회복으로 지극히 감사한 심사(心事)다. 비록 암울한 절망에서도 새날의 태양이 솟아오르듯 비정한 갈등 구도로 치닫는 조국의 안타까운 현상에서 꿈과 이상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모처럼 시집의 자서격(自序格)인 <시인의 말>에서 “좋은 시를 보면 고향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어머님의 품은 어둠 속에 있어도 언제나 따스함을 주고 기쁨을 준다.” 따라서 ‘저 밤하늘 차갑게 돌아선 비정의 눈빛 서슬 푸를지라도’ “별들도 길을 가다 구름을 만나면/길 위에서 길을 잃고,/가을밤 속절없이 흐르는 흰 물소리에/눈물 흘릴 때가 있다(청령포 1)”에서 영월의 산자락에 조상의 뼈를 묻은 평자의 감응(感應)은 다감한 분위기다.
그 같은 맥락에서 20세기 레바논계 미국의 신비주의 시인이며 화가인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참된 아름다움>에서 “사랑을 품고 있는 영혼만이/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일면처럼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겸허한 심성의 소유자인 그 자신은 ‘비움의 미학’에 익숙한 연유로 “하늘에 뭔가 가득 채워져 있으면 우주가 아니다./비워진 마음의 울림이 있어야 우주다//우주는 구름처럼 가야 할 곳을 가리지 않고/바람 따라갈 길 가리지 않고 돌고 돈다(우주, 그 불멸의 시詩)”라는 그 묵언의 응시는 짐짓 가늠할 바다. 그렇다. 최광일 광운대 명예교수가 “정근옥 시인은 우주에서 ‘언어는 시가 되고 음악이 된다.’라는 은유로 시인의 공간처럼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라는 지적처럼 자의식이 강하고 존재감 빛나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다.
또 한편 70년의 세월을 지나쳤어도 ‘한국전쟁(The Korea War)’의 그 상흔(傷痕) 남아있어 ‘전란의 파편 자국 선명한 미루나무만 시퍼렇게 푸른 잎을 흔드는 정황에서’ “강은 어제의 피 묻은 역사를 기억하며/속 쓰라려 누운 강바닥을 굽이쳐 흘러가지만//한번 흘러간 강물은/다시 거슬러 돌아오지 않는다(돌아오지 않는 강-소양강에서)”의 양상을 통해 한국전쟁의 3대첩 중 ‘춘천(春川) 내평리 전투’를 기리는 평자의 추모 기념비문의 <존귀한 별, 민족의 그 눈물>이 클로즈업되어 새삼 느꺼운 정취(情趣)이지만,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방식은 독창적이며 감동적이다. 이 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정 시인의 독특한 시 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라는 김왕식 평론가의 지적은 신선한 충격일뿐더러 ‘꿈의 시학’이라 일컬어도 과장됨이 없기에 전율(戰慄) 같은 가슴 떨림은 더없이 이채롭다.
2. 모순의 해법과 시적 의미망(網)
최소한 정신작업의 종사자라면 현실과 그 너머의 세계를 자유롭게 순환(循環)할 일이다. 그 같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 몸담으면서도 그 현실을 이탈한 추이(推移)의 형태로 자잘한 기억의 반추(反芻)와 그 회복을 향한 처연한 꿈에 연결고리에 맞물린 양상은 마침내 체념 그 너머로 음각된 형상으로도 빚어질 것이다. 까닭에 러시아 시클롭스키(Viktor Borisovich Shklovskii)의 관습의 균일성을 부정하는 장치인 형식주의에서 ‘낯설게 하기’를 굳이 거론치 않더라도 그 자신의 시적 기법에서 소재포착의 상이점은 친숙한 대상도 때로는 낯설게 표현하는 시적 효과를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지아의 므츠헤타시 모바리 언덕에 자리한 즈바리(Jvari) 수도원을 방문한 뒤, ‘오래된 나무 십자가 앞에서 성녀 니노가 초승달 걸린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현상에서, 그 자신의 나직이 읊어낸 “커다란 숲을 이루어 죄악의 먹구름에서 씻음을 받을 때,//전흔이 쓸고 간 수도원 앞마당엔 벌들이 꽃을 찾고/새들이 노래 부르며 하늘 향해 힘차게 날개짓을 한다(나무 십자가 앞에서-즈바리수도원에서)”에서는 물론 “눈물나게 감탄스러운, 코르코바드산 예수상 밑 카틀레아의 꽃내음, 갈릴레아 풀꽃 향기와 함께 짜릿하게 풍겨온다(리우의 작은 풍경화)”에서 따뜻한 정감과 경건한 신앙심은 이채롭게 묻어난다.
비록 성지 순례길이지만 화자(話者)가 굳이 가톨릭 신자임을 의도적으로 밝혀내지 않더라도 “불빛이 만들어내는 밤의 환상 코러스,/유구한 숨결이 흐르는 도나우강/또릿한 눈빛으로 수천 년 고여온 그리움을/부치지 못한 편지에 담아 하늘에 띄워 보낸다.(도나우강)”라는 정취도 그렇거니와 “눈 내리는 어느 날 나무들이 잠들 때/부활을 증언하는 막달라 마리아가/촛불을 켜고 경건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떠나보낸 마음이 아리고 아플 때마다/밤바다에 떠오르는 달 하나,(베른 성당의 촛불)”에서 이국적인 정경도 시적 형상화로 말끔 씻겨내 ‘적조(寂照)한 월광과 신비로운 성당 촛불의 흔들림’은 끝내 몽환적이다. 특히 이 시편을 김왕식 평론가가「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영적 성찰로 풀어낸 시」로 결부 짓고 “정근옥 시인의 <베른 성당의 촛불>은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영적 각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촛불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통해 상실, 그리움, 고통, 그리고 희망에 이르는 감정의 여정을 담고 있다.”라는 그 지적처럼 정서적 양감(量感)에 의해 지극히 교시적(敎示的)이다.
모름지기 예술의 힘은 피폐한 영혼과 산업폐기물로 방치된 세상을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 시키듯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간혹 정화와 재생이란 개념은 양면성을 지니나 한 몸을 이루는 사유 체계로 풀이되기에 ‘천상의 층계 오르는 ‘영성(靈性)의 소유자’는 충만한 생명감으로 고양(高揚)되는 느낌도 감응할 점이기에, 동일화된 ‘까마귀와 오죽(烏竹)의 대비(對比)로 ‘나뭇잎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조락(凋落)의 계절에’ 평자의 향리(鄕里)가 우연히 시적 모티브인 “달이 저문 오죽헌의 댓잎 스치는 소리에/잠에서 깨어난 까마귀 한 마리,//날개를 퍼덕이다 떨어진 꽃잎을 바라보고/소리 죽여 울음소리를 낸다(강릉 앞바다에서)”의 일례나 한반도 최남단의 정방폭포를 시적 질료로 “댓잎 흔들어대는 푸른 바람 따라서/숙명의 짐 짊어지고 하얀 칼날을 휘두르며//내일 죽더라도, 죽음은 거룩하게 맞아야 한다며/검푸른 바다 위에 장렬하게 몸을 던진다(정방폭포에서)”에서 원근조망법의 회화적 테크닉의 활용에 의한 한 폭(幅)의 수채화는 더없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내적 충만을 위하여 깊은 사유(思惟)와 인생을 관조하는 현상에서 긍정적인 사유와 삶의 중량감에 잇닿은 “산방굴사 계단을 오르면/백두에서 한라까지 오가는/백팔번뇌의 구름 함께 따라와/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산방사)”에서 응당 확증되는 느꺼운 시적 정감은 제주 10경 중 하나인 산방굴사의 천장 암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산방산의 눈물’로 일컫는 자연 관조를 거쳐 생성된 창조물이기에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사변성(思辨性)을 강하게 표출할뿐더러 맑은 영성(靈性)의 파동은 이같이 생명의 언어로 직조된 전율(戰慄) 같은 가슴 떨림으로 놀라운 황홀감이다.
그렇다. 천년의 신비 속에서 물안개 아득한 대청봉을 휘감은 설악(雪嶽)의 형상을 수묵화로 채색하여 ‘기도한 성자인 나무의 표징’을 시적 질료로 처리한 끝에 “나뭇잎이 흔들거리며 바다로 간다/잔잔한 바람이 다녀간 안개 속에서/나무는 구천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있다(안개와 고독한 나무-설악산 아래서)”라는 그 보기처럼 지상에 갈 앉은 나직한 음조로 풀어낸 촉촉한 물안개와 영원한 모성의 일깨움은 ‘꽃은 비에 젖어도 꽃의 향기는 비에 젖지 아니하듯’ 소중한 인간관계를 맺어온 이들에게 한결같이 신의를 목숨처럼 지켜내는 그만의 강직한 선비적인 품격은 새삼 경이롭다.
이같이 깊은 사유(思惟)의 존재로 구별되는 그 자신의 내면의식에서 “에베소의 하얀 꽃, 바람에 시들어 기댈 곳 없는/흑막 하늘의 그림자를 버리고/인동초 새로 돋을 봄날을 손꼽아 기다린다(에베소의 여인)”라는 그 보기에서 차별성을 지닌 시적 구도처리야말로 물아일체의 존재감에 맞물린 칙칙한 어둠이 말끔 씻겨나 ‘해맑은 영롱함’에 의해 그 존재감이 새삼 빛나는 연유로, “길이 이끄는 곳을 가지 말라. 대신 길이 없는 곳을 가서 자취를 남겨라.”라는 미국의 사상가이며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그 삶의 일깨움도 한 번쯤 분별하여 헤아릴 바다.
간혹 현재 우리 시단에 존재의 근원에 기인(起因)한 탐색과 생명에의 몰입이랄까? 전통의 서정과 현대시의 서정성 문제에 관한 논란의 키워드는 즉 자아와 세계가 충돌하여 빚어낸 갈등과 모순을 동화시킴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틈새를 좁히는 시적 세계관의 반영을 일깨워주는 양상이다. 이처럼 “언젠가 너처럼 비워낼 줄 아는 꽃이 되고 싶다/배고파 추위에 떨며 잠 못드는 사람에게/따스한 향기를 보내주고 싶다/어둠 속에 솟는 햇살처럼 사랑의 빛을 주고 싶다(시드니에서 만난 무궁화)”에서 다소 기대감이 부푼 여정(旅程)에서도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그 절박함을 ‘나라의 꽃 무궁화(無窮花)’에 연계해 술회(述懷)하되 현대 서정시의 패러다임이 급격한 변화로 ‘신서정, 반서정 또는 탈서정(脫抒情)’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작위(作爲)는 못내 시사적(示唆的)이다. 까닭에 현대의 서정시에 전통 서정의 근본 정서를 수용하고 있음에 그 나름의 시적 의미와 특이성을 그 자신의 시편에서 자아 성찰과 견딤의 시학으로 분별하여 헤아림은 응당 지켜볼 일이다.
3. 사유의 깊이와 의미론적 순환(循環)
모름지기 성서(聖書)의 “분복(分福)을 지키는 자의 복(시 16:1-11)”을 거부감없이 수락하고 절망과 좌절, 그리고 고독 앞에서도 포스트 지의 창시자로 '만인의 성직자'인 노만 핀센트 빌(Norman Vincent Peale)의 지론처럼 항상 마음의 평정(平定)을 지켜낸 정근옥 시인은, 병폐적인 내면의 갈등을 스스로 해소하고, 영혼을 정화 시켜주는 시적 치유의 지평을 열어가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다. 그 같은 연유로 그 자신의 담백한 시격(詩格)은 불확실성의 사회현상에서 겪는 존재의 가벼움을 반복적으로 체험한 초조감을 다채롭게 변주시키는 사고가능성(思考可能性)을 열어놓고 있다. 또 한편 밝은 미래사회 추구를 위해 푸른 식물성 언어로 끊임없이 빚어낸 ‘몸의 시학’은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본질적 정신작업의 결과물로 지극히 엄숙한 동기부여다.
차제에 그 자신의 다양한 시 의식에서 발상의 전환이랄까? 기존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영혼이 자유로운 바람처럼 “눈물은 마더 테레사의 별이된다/낡은 텐트 속, 어머니의 품이 따뜻하다//천사가 잠자는 천국의 집에/가늘은 아리랑 가락 따라 별이 살며시 내린다(우간다 소녀의 아리랑)”에서 확인되듯 ‘빈자(貧者)의 성녀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의 별이, 아리랑 가락 따라 별이 이처럼 목적어가 되기까지’ 그 자신의 시적 행위는 새로운 변주(變奏)로 개아(個我)의 차별성이 별개일 수 없다. 따라서 ‘연과 줄이 서로 당기듯, 꽃과 흙이 서로 밀어내듯’ 무엇보다 '아리랑'의 언어학적 근거를 ‘물길의 크기에 따라 고랑-도랑-거랑-알(아리)을 거쳐 바다(海)에 이른다.’라는 자연의 순리에 맞물린 결과로 ‘겨레의 애한(哀恨)’을 헤아리는 징표다.
모처럼 ‘여명의 무대를 여는 우주의 장엄한 개관식을 보여주는’ 정황에서도 격한 정감을 그 나름으로 절제하여 수사적 기법(craft)으로 처리한 “하늘을 향해 열기구는 두둥실 솟아오르더니/카파도키아의 민낯을 서서히, 아주 천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카파도기아 수채화 3-열기구를 타며)”에서 소아시아의 중앙에 자리한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Kapadokya)는 불가사의한 기암(奇巖)이 많기에 관광상품인 열기구를 타고 즐기는 놀이도 흥미롭지만, ‘절체절명의 절박함도, 무모함도 시와 노래가 되듯 이처럼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체득한 그 자신의 시 인식은 상이하다. 차제에 21세기의 화두인 공동체 의식의 절박함을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라는 지론처럼 암울한 혼돈의 시간대에서도 긍정적 사고로 위기를 극복하는 창조적 역할은 엄숙할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갈등으로 치닫는 사회현상에서 충만한 역동성과 실험정신으로 매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그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라면, 막중한 시인의 소임을 수행하되 깊은 영혼의 상처로 고통받는 타자를 끊임없이 치유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그 같은 양상은 월간 『시』 편집 고문인 정근옥 시인의 시집 『순례길 풍경화』에서 빛나는 존재감을 확증시킨 치밀한 구속(救贖)의 행위로 “시를 사랑하는 의로운 사람끼리 손을 잡고 좋은 시를 위해 함께 가꿔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고 올바르게 정착되어야 시의 나무도, 꽃도 시들지 않고 피어날 것이다.”라는 강한 그 자신의 합리적인 해명은 중량감이 실려 장중한 정조다. 모쪼록 현대시문학의 개아적(個我的) 차별화로 감동의 회복과 따뜻한 정신기후의 조성은 물론 21C 문화의 융복합을 매개로 시 의식의 지평을 활짝 펼쳐낸 시적 행위는 더없이 놀랍고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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