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하나의 무게를 어찌하지 못해 집을 나온 사람들이
입산 출가를 위해 찿아 나선 길에는 두갈래 길이 잇다
하나는 무작정 절을 찿아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을 찿아 절로 가는 경우다
절을 찿아간 사람들은 그 절 안에서 스승을 만나거나
아니면 계 받을 때 가서애 배급 상좌로서 스승될 분에게
배당된다.
구도의 길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하므로
후자인 경우 이상적인 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그 갈래가 어째든 간에 자기의 그 무게를 이끌고 처음 찿아거 수계득도한 절은
정신적인 요람이 아닐 수 없다
행자시절 그 풋풋한 기억들은 훗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노상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닌다
대로는 출세간의 향수가 되어 문득 그리워 질 떼도 있다
필자의 삭발 본사는 통영 미래사이다
그 무렵 효봉 선사가 주석으로 앉아 계셨다
절이라 해야 정량 까지 합해 세채밖에 안된 조금한 절이었다
요즘은 바다가 다리가 놓였지만 그 시절에는 바다 밑으로 해저 뚫린 해저 터널을
거쳐야 절로 갈 수 잇었다
뒤에는 암벽으로 된 미륵산 봉우리 솟고 둘레는 편백나무로 울창한숲을 이루엇다
그리고 멀리 수평선을 먼 바다가 내다 보이는 그런 곳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늘 배가 고팠고 고생이 많았던 시절이다
선원인 그 곳은 아침에 멀건 죽 한그릇 낮에는 남은 식은 밥 한술.
수각가에 삶은 국수를 씻다가 흘린 걸 주워 먹던 그 때의 그 맛을
그 후로 도저히 맛볼수가 없다
몸에 배지 않는 일에 지혀 코피를 쏟던 일이며 앓고 있을 때 정랑에 갓다가
걸어오지 못하고 엉금 엉금 기어왔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잇다
그 때 내가 맡은 소임은 부목 하루 석짐 씩 나무를 하고 아궁이 마다 불을 지피는 일이엇다
가볍지 않는 일은 무난히 해낼수 해낼수 있었던 것은 은사 효봉 선사의 초발심 자경문을
배우면서 듣던 법문 덕택이었다
예전 스님들이 딱던 난행고행에 견주면 우리가 껵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상이 안이해질려 할 때면 필자는 산철에 불쑥 삭발 본사를 찿아간다
거기가면 처음 출가 했을 때그 풋풋하고 간절한 기억이 되 살아나오늘 내 자신을 비추어볼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