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관련 도서 금서 지정부터 학교 내 성교육까지
올 하반기 학교도서관 내 특정 도서에 대한 금서 지정 이슈를 시작으로 성교육과 관련된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금서 지정의 경우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이 성교육 관련 도서 17권에 대해 각 학교도서관 비치 현황, 구입 시기와 가격, 도서명 등의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이는 마땅한 이유와 조사 목적을 명시하지 않아 읽기권 침해와 검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어 같은 달 충청남도의 경우 김태흠 지사가 일부 보수 단체의 민원으로 성교육 도서 10권에 대해 도내 6개 도서관 전체에서 열람을 금지했다. 이에 충남 홍성군 등은 ‘제1회 홍성 금서 대축제를 여는 등 도서 열람 제한 조치에 맞서는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금서 지정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이덕주 사서교사위원장은 사서교사의 도서 선정 자율성 침해를 언급하며 검열과 교권 침해에 대해 비판했다. 또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도서 조사 목적을 밝히지 않은 공문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133개 시민단체도 검색 및 열람 제한을 우려하며 이와 같은 것들을 없애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는 등 각계 계층의 강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11월 6일에는 서울시의회 전병주 의원(광진1)이 제321회 정례회 교육위원회(제3차) 행정사무감사에서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상황에서 시대 착오적인 도서 검열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일부 단체에서 특정 도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객관성이 있다기보다 주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근 학교 도서관 내 도서와 관련된 문제가 많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학교 현장 내 사서교사 등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자체 차원의 성교육 관련 금서 지정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청소년의 기초 성 지식 부재, 각종 성 관련 문제 등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경우도 엇가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박모(24)씨는 “자유롭게 정보를 읽고 수용할 권리가 있는데, 이것을 금지하는건 말이 안된다”면서 “특히 우리나라같이 성교육이 부진한 경우 사실적인 성 관련 정보가 담긴 책을 더욱더 금지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살 아이를 키우는 김모(38)씨는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너무 적나라한 교육 자료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하며 “성교육 금서 지정 자체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도서 내의 적절한 선과 수위가 조절된 도서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성교육 관련 금서 지정 문제를 넘어, 실제적인 성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이제 성인이 된 정모(20)씨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크게 없었고 고3 때는 더욱 없었다는 답변을 했다. 이어 “솔직히 보건 시간이든 성교육 시간이든 애들한테는 자거나 노는 시간이라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며 "최근까지 성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이었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 중·고등생의 성교육 경험률(2018~2022)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 초·중·고등생의 성교육 경험 및 도움 정도(2018~2022)
실제 청소년의 성교육 부재 수준은 전국 단위 조사 결과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고등학교 기준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교육 경험 수치 낮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도움 정도에 대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됨’ 항목을 기준으로 고등학교는 2018년 14.9%에서 2022년 20.7%로 5.8%p 상승했다. 부정 응답 비율은 2022년 기준, 10명 중 4명꼴인 42.8%가 성교육에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모순적인 부분은 2020년 대비 성교육 경험률이 높아진 데에 반해 성교육 도움 정도는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의 기초 성 지식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들이 현 성교육 과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학교 내 성교육 현실...기준과 현장의 부조화
청소년 성교육 확대에 대해 정부 및 각 학교 관계자가 노력하고 있지만, 그 효과성은 부진한 현실이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2022)」에서 800개 초·중·고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2022년 전국 청소년의 성교육 경험률은 2020년 대비 4.5%p 상승한 84%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교육 도움 정도는 6.3%p 하락한 72.3%였다. 청소년 성교육은 교육부가 제정한 ‘성교육표준안’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청소년 성교육 영역 중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이 표준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강원도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과 관련해 누구는 보수적, 누구는 개방적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양성평등, 성평등, 제3의 성 같이 성 분야의 이념적 갈등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기준 또한 상대적인 게 그 이유”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몇 년 전 있었던 바나나 피임 교육에 대한 학부모 민원 사건을 언급하며 “성에 대한 접근 태도가 시대, 연령, 지역, 종교마다 달라 어려움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러한 다름에 대해 갈등을 줄이고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잡아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성교육표준안에 대해 “여러 이념 속에서 기준을 정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꾸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을 강조하며 “현시대에 맞는 성교육표준안 개정”을 언급했다.
한편 학교 내 성 교육자의 입장과 어려움도 존재한다. 강원도 보건교사회 관계자는 “성 관련 교육은 시대의 흐름과 사건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아이들도 실제 사건을 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크다”면서 “기존 성교육표준안도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개정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덧붙여 “요즘 무조건적인 피임과 책임론 교육이 성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다양한 케이스의 아이들이 있다 보니 성에 대한 사정도 저마다 다르다”면서 “성교육은 ‘나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기에 아이들이 성의 변화를 겪어가는 초등, 혹은 그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교육이 필수적이고 국가에서 지정된 의무교육 시간이 존재하지만, 실제 운영은 보건교사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정규 교과에 밀려 보건 교육이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교육표준안 개정 방향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성에 대해 불확실한 지식 및 믿음을 가지는 근원이 온라인 속 검열되지 않은 부적절한 매체인 경우가 많다”며 “이제는 아이들의 성 인식을 위해서라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꾸준한 성교육과 적절한 개정 필요, 핵심은 건강과 존중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다양한 입장이 존재했지만, 이들이 말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성교육의 핵심은 ‘건강과 존중’이라는 것이다. 실제 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교육의 핵심은 ‘건강한 성장’임을 강조하며 “청소년 성교육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교사로 재직 중인 강원도 보건교사회 관계자는 “현장을 보면 상처받은 아이들이 참 많다”면서 “모든 일의 처음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나’에 대해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야 다른 영역은 물론, 성 영역에서도 타인을 존중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로 나아갈 준비 중인 청소년들, 그러나 이들은 성 지식 및 문화가 올바르게 적립되기도 전에 성인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 인식과 성 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의적절한 성교육 방안 모색과 성교육 개정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고윤주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