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기의 부음을 듣는다.
오순조의 부음이다.
1학년 때 8반을 같이하고 취업반과 진학반으로 갈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한 동기지만 내 주변에서 가끔씩 존재를 드러내던 친구다.
출신지인 가포라는 동네가 그렇고 늦은 나이에 대학이라고 갔을 때 이 학교 교직원으로 만난 것이 그렇고 친구의 아내가 나래합창단 한 기수 밑의 강정신이라는데서 더 그랬다.
이런 중에 그가 내게 가장 각인된 건 고1 때 내게 들려 준 무용담이다.
옮기면 이렇다.
“야, 여자 구멍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궁금해서 어렵게 돈 모아가 신포동 갔다. 스무너댓살 먹어 보이는 여자가 나를 아 취급하는데 내가 사실 대로 말했다 아이가. 여자 구멍이 하도 궁금해서 왔다고….
그러니까 기특한 듯이 보고는 하고 보고 가라며 보여 주는데 ‘으웩’ 내 속에 것 다 올라 올라하더라. 시커먼기 뭔 큰 조개 섞은거 맨치로 밖이고 안이고 다 시커멓고 더러바 못하겠더라. 너그는 절대 가지마라”였다. 실제인지 지어낸 얘기인지는 이제 알 길이 없게 됐지만 상당히 실감 있고 구체적인 표현의 얘기라 그땐 실제라 생각 했던, 그래서 이 친구의 호기 호언과 배짱이 더 맘에 들어었다.
물론 이후 대학교직원으로 만났을 때, 어느 누구보다도 건실하고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또 간간히 학교생활에 도움 되는 조언을 받기도 했었던 친구다.
그리고 합창단 후배와 부부되어 살고 있으니 부부동반해서 우리집에 놀러 오라고 또 그러마 했기에 이제나 저제나 하던차였다.
이제 내 나이 70이고 이친구들은 한 두살 아래니 69이나 68이니 70을 못 살고 간 셈이다.
예전 같으면 살만큼 산 나이라 하겠지만 현대는 아쉬운 나이지 않은가?
이제 이렇게 하나씩 간다.
앞서고 뒷서고 할뿐인데 남은자로써 아쉽고 또 서로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코로나 사태로 이런 친구의 빈소조문도 못하고 만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우리 또 변해서 멀리 왔으니 무엇을 탓 할 수도 없다.
하나하나 비우고 살아야겠다.
오늘의 숨 쉼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부고]용마48동기회 오순조님 본인이
어제 2.26(토요일) 별세 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빈소 창원 경상대학병원 장례식장
*발인 2.28(월)
*장지 창원시립 상복공원
*마음전하실곳 배우자(강정신)
농협 865 02 383292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