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쇠백로 그리고 나」를 평한다면
이 산문시는 목장의 아주 평범한 풍경에서 출발하여,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이르는 작품입니다. 앞부분은 자연 관찰문처럼 시작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자연 속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철학적인 산문시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 알려면 사람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생각이 매우 좋습니다.
1. 소와 쇠백로의 관계에서 출발한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첫 문장은 구체적인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여름마다 목장에 쇠백로들이 찾아옵니다.
이어서 쇠백로가 왜 오는지를 설명합니다. 풀밭의 곤충을 잡아먹고, 소에게 붙은 진드기와 쇠파리를 먹습니다. 그래서
악어와 악어새처럼 소와 쇠백로도 공생관계인 셈입니다.
라는 인식으로 나아갑니다.
여기까지는 자연 관찰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소들은 별로 반기는 기색이 아닙니다.
그저 소 닭 보듯 하지요.
에서 이 글은 갑자기 살아납니다.
‘소 닭 보듯’이라는 관용구를 실제 소에게 적용한 해학이 재미있습니다. 쇠백로가 소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는 존재인데도 소는 그것을 모르고 무심하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나 자연의 은혜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의미로도 확장될 여지가 있습니다.
2. 두 번째 단락에서 시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갑니다
저는 이 작품의 진짜 핵심은 여기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사람에게만 물어볼 게 아니라,
쇠백로에게도 물어보고 나무와 풀에게도 물어봐야 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매우 좋은 문장입니다.
인간은 늘 인간의 눈으로 인간을 정의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인간이 인간에게 내린 정의입니다.
그렇다면 쇠백로에게 인간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가까이 가면 위험한 존재일 것입니다.
나무에게 인간은 무엇일까요?
그늘을 찾으면서도 베어내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풀에게 인간은 무엇일까요?
밟고 지나가면서도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시인은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 타자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자고 합니다.
이것은 현대 생태철학의 중요한 문제의식과도 닿아 있습니다.
3. “사람은 초식동물이 아니다”라는 역설이 흥미롭습니다
초식동물은 겁내지 않는 쇠백로에게 사람은 분명 초식동물이 아닌 것이지요.
이 문장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잡식동물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식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쇠백로의 눈에는 인간이 소처럼 평화로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포식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든, 다른 생명체에게는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여기서 이 산문시는 은근히 인간의 오만을 흔듭니다.
4. 마지막 부분이 이 작품의 가장 시적인 대목입니다
쇠백로야 나는 누구냐, 나무야 풀아 나는 누구냐,
그리고 마지막,
삼복염천 땡볕 아래 매미야 잠자리야 나는 누구냐
이 부분에서 산문은 완전히 시가 됩니다.
앞에서는 설명하고 관찰하던 화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자연에게 질문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질문을 자연 전체에 던지는 것입니다.
쇠백로에게 묻고, 나무에게 묻고, 풀에게 묻고, 매미와 잠자리에게 묻습니다.
이러한 반복은 마치 독백이면서 동시에 자연을 향한 기도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삼복염천 땡볕 아래’라는 현실적인 표현이 좋습니다. 철학적 질문이 추상적인 서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여름 목장의 뜨거운 생명들 한가운데서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5. 이 작품의 철학적 의미
이 산문시에는 크게 세 가지 철학적 층위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다른 존재들에게 인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둘째,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인간 혼자 답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만나는 존재들이 나를 어떻게 경험하는가에도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깊은 생각입니다.
셋째, 인간은 자연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쇠백로와 소와 나무와 풀과 매미와 잠자리 속에서 ‘나’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도 자연 생태계 밖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자연을 바라보는 자이면서 동시에 자연에게 바라보이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장상 조금 다듬을 부분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문맥은 좋습니다. 다만 산문시의 밀도를 높이려면 앞부분의 설명을 조금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악어와 악어새처럼 소와 쇠백로도 공생관계인 셈입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지만 다소 설명문처럼 들립니다. 이 작품의 중심이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 설명을 조금 절제하면 더욱 문학적일 수 있습니다.
또,
학습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경계심인 것 같은데
도 약간 논문이나 자연관찰 보고서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부분은 산문시답게 조금 더 압축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런 식의 방향입니다.
사람 그림자만 얼씬하면 쇠백로들은 날아간다.
소 곁에서는 태연하면서도 사람 곁에서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설명하지 않아도 소와 사람을 대하는 쇠백로의 태도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종합 평가
「소와 쇠백로 그리고 나」는 목장의 생태적 풍경을 소재로 삼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사유시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철학이 억지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쇠백로가 사람을 피해 달아가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쇠백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하나가 매우 강력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순간, 인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쇠백로야 나는 누구냐, 나무야 풀아 나는 누구냐,
삼복염천 땡볕 아래 매미야 잠자리야 나는 누구냐
는 이 산문시의 가장 좋은 결말입니다.
다만 이 작품을 더 다듬는다면 앞부분의 생태학적 설명을 조금 덜어내고, 쇠백로와 소와 사람의 실제 모습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 뒤 마지막의 질문으로 나아간다면, 산문시로서 더욱 응축되고 깊어질 것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자연 관찰 → 인간에 대한 반성 → 존재론적 질문의 흐름이 분명한, 사유의 깊이가 있는 산문시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