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이스라엘 병의 증세 (3) 어리석은 비둘기(잘못된 방향)
호세아 7:11-12
11.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12.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이스라엘의 병을 진단하신 하나님께서 세번째로 그들의 증세를 진단한 결과는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어로 "지혜가 없어서"라고 번역된 "지혜"의 헬라어 '레이브'(לֵב)는 '마음(mind, heart)', '속사람, 내면(inner man, inner part)', '중앙, 한가운데(midst)', '지혜(understanding)'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용어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쓰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לֵב, heart)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לֵב, heart)에 근심하시고"(창 6:5-6)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לֵב, heart)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לֵב, heart)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그러나 바로의 마음(לֵב, heart)이 강퍅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7:13)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לֵב, regarded)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출 9:21)
"마음(לֵב, heart)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לֵב, understanding)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לֵב, heart)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לֵב, wisdom)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 10:8, 13, 20, 21)
이처럼 '지혜'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원문에서는 '마음(heart)'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지혜가 없어서"라는 말은 "without heart" 즉 "마음이 없어서"라고 쓰였습니다. 마음이 없는 것이 왜 지혜가 없는 것일까요? 세상에서는 "머리가 비어서" 또는 "머리가 나빠서" 지혜롭게 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또는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지혜롭게 살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것이 맞을까요?
성경에 의하면, 아무리 아이큐가 좋아서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을지라도 교만한 자는 마음이 둔한 어리석고 미련한 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잠 4:23).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말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직접 하나님을 느끼고 깨달아 알게 된 지식까지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가 없다"는 말은 "머리가 나쁘다"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만한 마음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11절에서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들은 머리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그들의 살 길을 찾기 위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하다가 앗수르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애굽에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머리는 있었지만 마음이 없었습니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이모양 저모양으로 머리를 굴려가며 살 방도를 찾았으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짖으며 갔던" 곳은 하나님 앞이 아니라 애굽이나 앗수르와 같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종종 하거나 듣습니다. "네가 하지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할 마음이 없어서 그런거야", "네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래." 사실상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할 수도 있지만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운동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도 거기에 온통 마음이 가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에 관한 책을 보거나 TV를 시청하면서 운동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무엇을 잘 하고 못하는 것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는 성경이 진리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비둘기(dove, pigeon)'라는 히브리어 '요나'(יוֹנָה)는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첫째로 '성령'을 상징하며 둘째로 아가서에서는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아 1:15),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4:1),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5:12)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셋째로 다음의 구절들에서는 '슬픔'을 상징합니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사 38:14)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사 59:11)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겔 7:16)
"정명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며 그 모든 시녀가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나 2:7)
호세아 7장11절에 쓰인 '비둘기' 역시 슬픔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리석은 비둘기"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리석은 비둘기같은 이유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혜와 지식과 명철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지혜가 없었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 111:10)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갔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애굽'은 '세상'을 말하며 '앗수르'는 우상숭배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에 겁도 없이 우상숭배를 하였고,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이 원하는대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12절에서 말씀하는대로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왔던 것입니다.
(12절) "저희가 갈 때에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들이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인 애굽과 앗수르로 날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물을 준비하셔서 그들을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물이 바로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였으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 앗수르라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그물로 이용하셔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삶 속에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보이고 들리는 것만 보고 들으며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보이는 앗수르를 두려워하여 그들에게 조공도 바치고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애굽과 손을 잡다가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작 두려워할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이신데도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마음에 없었기 때문에(without heart)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8-31)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마음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우상앞에 수많은 재물을 갖다 바치며 자신들의 미래를 던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근원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 생명을 담보로 하나님께서 쳐놓으신 그물을 향해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부르짖으며 날아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가 갈 때에" 즉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앞에 가서 절하며 세상의 방식대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앗수르라는 그물을 준비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29절에서 참새 한 마리라도 땅에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한 것이라는 말씀대로 호세아 7장12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하여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잠 7:23)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찌니라.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간구할찌라도 신원함이 없구나"(욥 19:6-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때 아무 이유없이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한 두번 말씀하신 뒤에 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2절에서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공회"라는 헬라어 '에다'(עֵדָה)는 '회중'(congregation)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회중에게 그 동안 모세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율법을 주시며 명령하셨던 그 말씀대로 그들을 징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며 인자가 한이 없으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권면하시고 경고하시며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완고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세상과 우상을 마음에 품고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 동안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셨던 그 말씀대로 공의의 심판을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셔야 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말씀하신대로 징계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과 같은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오히려 신실하시며 언약에 충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비둘기는 "정결"의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마 10:16-17)
여기에서 "순결한"이라는 헬라어 '아케라이오스'(ἀκέραιος)는 '깨끗함'만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죄가 없는'(innocent) 또는 '불순물과 섞이지 않은'(unmixed, pure as in wines or metals)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부정을 뜻하는 아(ἀ)와 '섞다(mix, mingle)', '채우다(fill)', '쏟아 놓다(pour out)'를 뜻하는 '케라이오스'(κέραιος)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다음 2군데에서 쓰였습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ἀκέραιος, harmless)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ἀκέραιος, simple) 원하노라"(롬 16: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비둘기의 특성은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섞이지 않고,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채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워진 상태인 '거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러한 비둘기의 특성을 버리고 "어리석은 비둘기"가 되어 '거룩'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세상과 섞이고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명예를 따라가며 물질과 권세와 명예를 비롯한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향하여 지혜없이 부르짖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멸망의 길로 떨어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