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또는 보시는 요사이는 '나눔'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눔의 반대말은 '인색'입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을 인색이라고 하는데, 인색은 초기 불교에서 부처님이 자주 법문에 올린 주제입니다. 재물이나 보화에 집착하면 가난한 이웃에 인색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많은 재물을 들여 제사를 지내면서도 유행자나 거지 유랑민 등 가난한 사람에게 인색한 당시 귀족이나 바라문들을 비판했습니다.
소유한다는 것은 사회적 행위입니다. 사람이 지구에 혼자 산다면 소유라는 개념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나눔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주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받는 사람이 자칫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받는 사람을 더욱 구차하게 만드는 보시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보시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깁니다.
최근 상영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은퇴한 한 영국 노인(다니엘 블레이크)이 정부의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가난하지만,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한 노인입니다. 다니엘이 만난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들은 친절하지만, 매뉴얼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취업안내소 강사는 실업자는 많고 취업 기회는 적은 현실이 '팩트(fact)'라고 강조하며, 면접에서 고용주의 관심을 끄는 대답을 하는 요령을 가르칩니다.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쓰는 데 지친 주인공이 손으로 쓴 이력서를 제출하자 취업담당자는 규칙 위반이라고 경고합니다. 경고를 받은 사람은 복지 지원을 한동안 받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인간으로서 비참함을 느낍니다. 복지정책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영화는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복지정책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장례식장에서 영화는 마지막으로 다니엘을 대신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나눔은 무엇보다 주는 사람이 자신을 깊이 성찰할 때 완성됩니다. 진정한 나눔은 불교의 무주상보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주상(無住相)보시는 세 가지 집착(상 相)이 없는 보시입니다. 즉, 주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주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존엄을 지켜주며, 주는 물건의 값어치에 대한 교만도 없는 보시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는 사람은 도덕적 보상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축복도 받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금강경의 가르침에서 보면 모두 탐욕이요, 아상(我相)입니다.
욕망을 넘어 나누는 일은 도가(道家)에서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장자(莊子)> 천지편에는 시골 변방을 지키는 파수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임금은 화(華)라는 지방에 갔다가 파수꾼을 만났습니다. 파수꾼은 성인으로 알려진 요임금에게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아들을 많이 낳으라고 축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요임금은 군자답게 이 모든 것을 사양했습니다. 요임금에게는 '이기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 克己復禮)'이 성인의 길입니다.
파수꾼이 말했다.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임금 홀로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요임금이 말했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는 덕을 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어서 사양하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 정도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사람을 낳으면, 모두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근심이 되겠습니까?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며,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만물과 더불어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이렇게 살면, 몸에는 늘 재앙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 장자 외편 천지(天地)편
요임금은 유학(儒學)의 군자를 상징합니다. 변방의 파수꾼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한 도가(道家)의 인물입니다. 파수꾼은 욕망을 극복하기에 앞서, 먼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찾으라고 합니다. 만물에는 제각기 자연적 질서(道)가 있다고 강조하며, 자연의 길을 따르면 현실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파수꾼, 즉 도가는 욕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위선이 일어나고, 예절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유교의 모순과 혼란을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