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3)
https://youtu.be/_rj9XQboi58?si=heygoc7uk60RJ-rg
-어이, 친구. 지금 흘러나오는 곡이 카르멘 서곡 아닌가?
-오늘은 자네와 함께 카르멘 서곡을 듣고, 작곡가 비제의 생애와 오페라 카르멘에 얽힌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겠나?
-오케이...
-이건 내 이야기라기보다는 전문가 이성호(테너) 님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보겠네.
-그렇게 하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성악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보여 아홉 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던 비제는 파리 음악원에서 10년을 공부하는 동안 많은 상을 받으며 재능을 뽐냈고 결국 장학금과 이탈리아 유학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지.
그러나 로마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네. 오페라 작곡도 했지만 관현악곡 작곡에 좀 더 치중했던 비제는 경제적으로 힘든 형편과 평단의 혹평을 견뎌야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진 게 아닌지.
-그렇다네. 비제는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 교외의 집에 가기 위해 올라탄 기차 안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되었지.
셀레스트 베나르Céleste Vénard라는 이 여성은 이국적인 외모에 비제보다 한참 연상이었다네. 그때 가난한 음악가인 비제가 살던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지만, 비제의 집에서 멀지 않은 베나르 별장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베나르는 그 사실을 알고 비제에게 별장 열쇠를 주며 언제든 자신의 별장에 피아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네.
후에 비제가 오페라 <카르멘>을 만드는 데 베나르가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지.
-카르멘의 줄거리를 이야기해 보게.
-그래야지.
문헌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네.
오페라 <카르멘>은 프랑스의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Mérimée가 쓴 소설 <카르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주의 단편 소설인 <카르멘>에서는 한 프랑스의 고고학자가 스페인 여행 중에 들은 이야기가 1인칭 시점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는 화자인 고고학자가 돈 호세와 카르멘의 위태로운 사랑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회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제는 소설이 취했던 액자 구성은 극적인 요소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오페라에서는 극의 스토리를 더 직관적으로 재구성했다. 소설에 등장했던 최고의 투우사 뤼카를 오페라에서는 매력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요라는 캐릭터로 다시 만들어 내 극의 전개에 변화를 주었던 것이 그 예다.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은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다. 집시여인 카르멘은 마을을 지키는 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며 '하바네라 Habanera’를 부른다. 공장으로 돌아가던 카르멘은 다른 여공과 시비가 붙고, 상대의 얼굴에 상처를 내 현행범으로 붙잡힌다. 잡혀가는 중에도 카르멘은 돈 호세를 유혹한다. 유혹에 넘어간 돈 호세는 카르멘을 풀어주고 증표로 꽃 한 송이를 받는다. 그러고는 근무 태만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편 세비야의 한 술집에서는 유명한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투우사의 노래Chanson de Toreador'를 멋지게 부른다. 이어 감옥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부대로 복귀하지 말라고 한다. 돈 호세는 감옥에서도 가지고 있었던 카르멘의 마른 장미꽃을 꺼내 보이며 사랑의 마음을 담아 '당신이 내게 던져 준 이 꽃은 fleur que vous m'avez jetée'을 절절하게 부른다. 결국 돈 호세는 탈영병이 된다.
그러나 카르멘은 탈영한 후 산속 밀수꾼들의 소굴에서 지내게 된 돈 호세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에스카미요를 향해 감정을 갖는다. 돈 호세는 투우장 앞에서 에스카미요와 함께 있는 카르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카르멘을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에 카르멘은 사랑은 길들이지 않은 새와 같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며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을 참지 못한 돈 호세는 결국 카르멘을 죽이고 절규하게 된다.
-결말이 어두운 이야기라서 좀 씁슬하다네.
그런데 오페라 <카르멘>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하바네라'는 1막에 나오는 곡으로 주인공 카르멘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준다네. 오페라를 몰라도, 또 비제를 몰라도 이 곡을 들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야.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네.
원래 제목이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인 이 곡은 사실 비제가 다른 노래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다. 초연 당시 메조소프라노 셀레스틴 갈리마리Célestine Galli-Marié는 첫 장면에서 <카르멘>의 아리아가 자신의 캐릭터를 좀 더 강하게 나타내길 원했다. 그래서 비제에게 강렬한 곡을 요청했고 비제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곡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셀레스틴 갈리마리는 비제에게 당시 술집에서 유행하는 스페인 곡을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결국 비제는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Sebastián Yradier의 '엘 아레글리또El arreglito'라는 곡을 차용해서 쿠바 춤곡의 분위기를 담은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은 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은 오늘날 '하바네라'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그럼 하바네라를 한번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세.
https://youtu.be/BXqMAe4H8Pw?si=Tjkl2hPz6O0lJfLx
-카르멘에 나오는 ‘투우사의 노래’도 유명하지 않은가?
-그래.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부르는 '투우사의 노래' 또한 더없이 유명한 아리아지. 원래 제목은 '여러분의 건배에 보답하리라' 이지만 그냥 '투우사의 노래'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네. 스페인에서는 실력 있는 투우사가 지금의 연예인과 다를 바 없었지. 그야말로 유명인사였던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이 있는 세비야의 술집에 나타나 자신의 야성적인 매력을 뿜어내며 부르는 이 노래 역시 오늘날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네.
-‘투우사의 노래’를 한 번 듣고 이야기 나누세.
https://youtu.be/5p2JgZI4sgI?si=kx_cg_XTqCL7zi3C
-그런데 ‘카르멘’이 처음에는 왜 혹평을 들었을까?
-사실 초연이 이루어졌던 프랑스의 코미크 극장은 그 당시 가족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즐겨 찾던 곳이었다네. 그런데 이곳에서 초연된 <카르멘>은 아름다운 스토리나 감동적인 음악이 담긴 가족극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 담배 공장에서 일하면서 밀수꾼들과 섞여 범죄 집단에서 살아가는 집시 여성을 위해 군인이 탈영하고, 결국 모든 것을 잃은 군인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끝을 맺는 작품을 코미크 극장의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만도 해.
그래서인지 <카르멘>의 초연은 프랑스에서 혹평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대본은 과도하게 사실적이라면서 음악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프랑스 스타일도 스페인 스타일도 아닌 작품이라고 폄하했어. 심지어는 공연을 금지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그너, 브람스 등의 음악가들이 오페라 <카르멘> 공연을 본 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네. 이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비제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초연이 이뤄지고 약 3개월 후에 급성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지.
다음은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보세.
<카르멘>은 초연 후 약 7년 동안은 파리에서 공연이 다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빈에서부터 <카르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독일어권의 규범적인 사회에서 오히려 사회 규범을 벗어난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결국 파리에서도 다시 <카르멘> 공연을 올리게 되었고, 그때는 파리의 관객들 역시 열광했다.
한편 그 당시 낭만주의 시대 음악의 중심지였던 파리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건너온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들은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전통적 방식을 깨트린 비극의 구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연출, 극의 사실주의를 뒷받침하는 현대적 음악 등 모든 것이 부족함 없는 오페라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카르멘>은 사실주의 오페라, 즉 베리스모 verismo 오페라의 탄생을 유도했다.
-오늘 비제의 카르멘을 감상하면서 그동안 클래식을 어렵게만 느껴왔는데 재미가 있군그래.
-그렇다네. 비제는 오페라 <카르멘>을 만들어내면서 집시와 군인 같은 보통 사람들을 그려냈고 그 캐릭터들은 술집이나 투우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질투를 노래했고 당시 유행하던 곡을 차용해 자신의 명곡을 만들어내는 감각도 발휘했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음악 작품을 어렵게 느끼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도 일반 대중들의 삶을 발견하고 오늘날의 상황과 비교해 보는 색다른 재미를 발견해볼 수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비제가 알려주었네.
-친구, 고맙네. 오페라에 눈을 뜨게 해 주어서...
(2024.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