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4)
-저 붓글씨로 쓴 글귀가 임상옥의 한시던가?
-그렇네. 자네는 용케도 알아보네그려.
-나도 최인호의 ‘상도(商道)’를 읽었거든.
-임상옥이라는 부자가 말년에 장자의 우화를 자신의 처지와 견주어보고 쓴 자작시였네.
-임상옥의 상도(商道)에 나오는 장자의 우화를 다시 연상해 보세.
장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우화를 남겼는데 그중에도 산목편에 나오는 우화.
장주는 조릉(雕陵)의 밤나무 밑 울타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예사롭게 생기지 않은 한 마리의 새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의 너비는 7척이나 되고 눈의 크기는 직경이 한 치나 되어 보였는데 그 새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더니 밤나무 옆에 앉았다.
장주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날개가 큰데도 제대로 날 줄을 모르고 눈이 크면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로구나.
장주는 바지자락을 걷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서 새를 잡는 화살을 들고 와서 새를 엿보았다. 가만히 보니까 그 나무 시원한 그늘에서는 한 마리에 매미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리의 사마귀가 잎사귀에 몸을 숨기고서 이를 잡으려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마귀는 매미를 잡는 데만 열중하여 자신의 몸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본 이상하게 생긴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처럼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서 장주가 자기를 잡으려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장주는 몸서리를 치면서 중얼거렸지.
‘아, 생물들은 서로 해치고 이해(利害)는 서로 상대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주는 활을 버리고 되돌아서 밤나무 숲길을 빠져 나왔다.
이번에는 밤을 훔쳐가는 줄 알고 관리인이 쫓아오면서 욕을 퍼부었다. 장주는 새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장주는 집으로 돌아와 사흘이나 꼼짝도 아니하고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때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요즘 왜 그렇게 심기가 불편하십니까.”하고 뮬었지.
제자의 질문에 장주가 대답하였다
“외부의 사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마치 흐린 물에 반해 맑은 물을 잊은 격이다. 나는 예전에 선생님으로부터 그 풍속 속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거니와 처음부터 금지구역인 그 밤나무 밭 속에는 들어가지 말았어야 옳았다. 이번에 나는 조릉을 산보 하다가 자신을 망각한 탓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할 밤나무 밭에 들어가 관리인으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인호 님의 소설 상도는 우리에게 감명을 주었네.
주인공 임상옥은 천하제일의 부자였다.
임상옥은 하룻밤을 새우며 장자에 나오는 이 우화를 곰곰이 심사숙고 하였다.
매미는 시원한 그늘에서 자신의 몸을 잊은 채 울고 있었다. 그러나 매미는 사마귀가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다. 사마귀는 매미를 잡으려는데 정신이 팔려서 자신을 새가 노리고 있음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새는 사마귀를 잡아먹으려는데 정신이 팔려 장주가 활을 들어 겨누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새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와 있던 장주는 잠시 후면 관리인에게 모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닭이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느라 허공 위에서 솔개가 노리고 있음을 눈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 병아리를 바라보고 있는 나 또한 죽음이 등 뒤에서 노리고 있는 것이다.
임상옥은 벼락을 맞은 것과 같은 전율을 느꼈다. 마치 허공을 떠돌던 솔개가 한순간에 땅으로 내리꽂히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병아리를 움켜 채듯 임상옥의 뇌리를 향해 고함 하나가 천둥소리가 되어 내리꽂혔다.
“네 이놈, 아직도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 했단 말이냐.”
그 소리에 임상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십 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내리꽂힌 석숭 큰스님의 갈(喝)이었다.
아, 생각난다.
석숭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노라. 마지막으로 말하거니와 네 생각과 네 뜻과 관계없이 네가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 있으면 그때가 네 상운(商運)이 다 한 것을 알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장사에서 손을 떼라. 현명한 사람은 지붕에서 한 방울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 안 가서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미리 짐작하여 알게 되느니라.
석숭 스님의 예언.
지난 한 낮에 보았던 살벌한 풍경.
한낮에 한가로이 병아리를 데리고 모이를 쪼던 어미닭을 허공에서 맴돌고 있던 솔개가 쏜살같이 내려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채어서 허공으로 치솟던 모습을 바라본 임상옥의 귓가에 들려오는 석승 큰스님의 대갈일성.
석숭 큰스님의 예언은 지난 낮, 닭 한 마리를 솔개가 낚아채어 감으로써 마침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닭은 분명히 임상옥의 소유였다. 그러나 그 닭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솔개에 의하여 사라졌으며 임상옥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해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미미한 닭 한 마리의 손해였으나 분명하게 석승 큰스님은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네 생각과 네 뜻과 관계없이 네가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는 일이 있으면 그때가 네 상운이 다 한 것을 알아라.”
잘 지은 집이라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튼튼한 집도 결국 한 방울의 낙숫물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천하의 권력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하늘 아래 제일의 거부도 언젠가는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천하의 구중궁궐도 한 방울의 낙수에서 무너짐이 비롯되듯 천하 재물의 무너짐도 결국 미미한 손실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임상옥은 마침내 깨달았지.
이제, 석승 큰스님이 예언 하였던 마지막 말씀, 내 상운과 명운이 다하는 바로 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임상옥은 말없이 붓을 들어 듬뿍 먹을 묻혔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어릴 때부터 내 소원 중의 하나는 하늘 아래 제일 부자, 천하의 제일의 상인이 되는 것이었소. 그 꿈을 이루어 이제 나는 조선 팔도에서 제일가는 거부가 되었소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항상 아직 장사의 기본조차 모르는 풋내기 장사꾼이라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소. 그런데 솔개가 닭 한 마리를 날카로운 발톱을 채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상업의 도를 깨우칠 수가 있었소.”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옳은 말일세.
-임상옥은 집사 박종일을 상대로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면서 말을 이었지.
노자는 말하였소.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上善若水)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나 다투지 않으며, 여러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처신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소. 재물이란 바로 물과 같은 것이오. 흐르는 물은 다투지 않소이다. 물은 일시적으로 가둘 수는 있지만 소유 할 수는 없는 것이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을 따라 흐를 뿐이오.
재물은 원래의 내 것과 네 것이 없소이다. 이는 물이 내 것과 네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내 것과 네 것이 아닌 재물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 하고 있소이다. 내 손 안에 들어온 재물은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오.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쥐면 잠시 손바닥 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그물이 사라져버려 빈손이 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요.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외다. 태어날 때부터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가진 사람 없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추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은 없는 법이오.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잠깐의 현세에서 귀한 명예를 빌려 비단옷을 입은 것에 불과한 것이오. 그 비단옷을 벗어버리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외다. 사람은 누구나 저울처럼 바른 것이오. 저울은 어떤 사람이 건 있는 그대로 무게를 재고 있소.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무게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오.
-임상옥은 상인들의 빚도 탕감했지?
어찌하여 상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냐는 박공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그 것이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이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줬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소.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덩어리를 들려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소. 금방이라도 내가 소유하려 한다면 녹이 슬거나 벌레가 먹고 썩어버릴 것이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 그것을 감히 횡재라고 부를 수 있겠소이까.
-오늘날 재산가들이 새겨들을 이야기네그려.
-임상옥의 인생 철학이 뭐였는가?
-그가 가진 인생관은 다음과 같았지.
부처님은 육방예경(六方禮經)이란 경전에서 재물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소. 나는 평생 동안 상인으로 살아오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여섯 가지의 경계를 항상 마음속으로 새기며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소.
부처님이 말씀하신 재산을 없애는 6가지 일.
첫째는 술에 취하는 일이요, 둘째는 도박을 하는 일이요, 셋째는 방탕하여 여색에 빠지는 일이며, 넷째는 풍류에 빠져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며, 다섯 번째는 나쁜 벗과 어울리는 일이며, 여섯 번째는 게으름에 빠지는 일이오.
-여섯 가지를 경계한 이유는 뭐였던가?
술을 마시는 데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소. 재물을 소비하게 되고 몸에 병이 생기고 잘 다투고 나쁜 이름이 퍼지며 분노가 폭발하고 지혜가 날로 없어지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오.
도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소. 재산이 날로 줄어들고 도박에 이기더라도 원한이 생기며 지혜로운 사람이 타일러도 듣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며 도둑질 할 마음이 생기오.
또한 방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소. 몸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항상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며 뭔가 더럽고 나쁜 일이 몸을 얽어매고 허망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오.
나쁜 벗과 어울리는 데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소. 남을 속일 꾀를 내고 으슥한 것을 좋아하며 남의 여자를 유혹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며 재물을 독차지하려 하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이오.
마지막은 게으름이오. 게으름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소.”
‘게으름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부자면 부자라고 해서, 가난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일하기를 싫어한다. 시간이 이르면 이르다고 해서, 시간이 늦으면 늦다고 해서 일하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평생을 상인으로 지내 오는 동안 나는 이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계율을 지켜 왔소이다. 술을 마시되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도박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방탕은 되도록 물리치려 하였으며, 나쁜 벗은 멀리하려 하였으며, 특히 게으름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왔소.
그러나 부처께서 말씀하신 그 여섯 가지의 경계도 천도(天道)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오. 술과 도박을 멀리 하고 나쁜 벗과 방탕을 멀리하고 아무리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뜻은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오. 내가 평생 모은 재물도 결국 나의 재물이 아닌 것이오.”
오사필의(吾事畢矣)
나의 일은 끝났도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천하의 부자 임상옥의 겸손이야말로 천하의 귀감이 되어야 햘 것이야.
-나도 많이 공감하였네.
-다음에는 버킷리스트 영화 한 편 다시 보기로 하세.
-그러세나.
(20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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