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과 금문의 步는 하나는 앞에, 하나는 뒤에 있는 두 개의 발가락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천히 걸을 때 팔을 흔들긴 하지만 두 발로 걷는것을 나타내는 것보다 그 의미가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발만으로 걸어간다는 것을 나타냈다.[1] 좌우의 두 다리가 번갈아 교대하면서 ‘앞으로 나간다’는 의미를 나타내며, 步의 본래 의미는 ‘걷다’, ‘보행하다’이다. 또한 步는 하나의 길이 단위이다. 고대에는 발을 한 번 들어 올리는 것을 반걸음(跬)라고 여겼고, 발을 두 번 들어 올리는 것을 한 걸음이라고 여겼다. 『순자荀子・권학劝学』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다다를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주대에는 8척을 1보로 삼았고 진대에는 6척을 1보로, 300보를 1리로 삼았다.[2]
文化
步는 걷다. 보행하다를 가리킨다. 설문에서 “步는 걷다(行)”라고 말한다. 갑골문을 보면 하나는 앞, 하나는 뒤에 있는 두 개의 止(이는 趾의 초기 문자)를 사용하여 보행하는 것을 나타낸다. 갑골문 중 일부는 길을 의미하는 行을 더하여 ‘걷는다’는 의미를 강화하였다. 금문은 두 개의 발 도장을 이용하여 걷는다는 것을 나타냈고, 금문 중의 일부도 여기에 行의 부호를 추가하였다. 소전은 갑골문과 금문을 따라서 하나는 정면, 하나는 반대의 止를 이용하여 묘사했다. 각각의 문자의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모두 ‘발이 가는 것’을 이용하여 걷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외에, 전국시대부터 당대까지 각기 다른 자형을 통해 고문자에서 금문으로의 발전 변화하는 궤적을 볼 수 있다.[3] 《석명(釋明)》에서는 “천천히 가는 것을 步라고 한다.”고 하였다.[4]
步는 길이의 단위 중 하나인데, 步에 대한 고금의 함의가 서로 다르다. 『예기・제의』에 “故君子頃步而不敢忘孝也”(고로 군자께서는 조금을 걸어도 감히 효도를 잊지 않으신다.)라는 구절이 있다. 정현의 『주注』에서는 “頃當爲跬. 一擧足爲跬, 再擧足爲步.”(頃은 반걸음이다. 한 발을 들어서 간 걸음이 바로 반걸음이다. 다시 한 발을 더 걸으면 보가 된다.)고 하였다. 오늘날은 ‘발을 한걸음 내딛는 것’을 一步라 하는데, 고대에는 ‘두 다리가 앞으로 한 차례 나아가는 것’을 一步라 하였다. 즉, 고대의 一步는 오늘날의 兩步와 같다. 『순자・권학』에서 말한 跬步는 고대의 半步를 말하고, 오늘날의 一步에 해당한다.[5] 하지만 一步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사기에 의하면 6척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보가 300개 모인 거리가 마을 里이다. 만약 한나라 때의 계산법에 의한다면 一尺이 약 22cm이니 一步는 132cm, 一里는 약 396cm. 尺은 지금과 다소 다르지만 里는 현재의 쓰임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