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이 한창이다. 하얗게 길 밝히는 꽃길을 따라 몇 구비 더 도니 여강 이씨 집성촌 기북면 덕동마을이다. 마을을 품은 산이 병풍을 친 듯하고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낮은 담을 이웃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마을 앞은 향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 풍경이 되고 시냇물은 그 시작도 끝도 먼 먼 시간을 이어 흐르고 있다.
멋스러운 자연을 뒤로하고 민속박물관으로 향한다. 입구에서 예닐곱 걸음 내딛어 전시관에 들어선다. 얼핏 눈에 들어온 모습이 옛 생활용품을 모아둔 여느 민속박물관과 다르지 않은데, 박물관 초입에서 허리 높이 되는 대형 유리함이 나를 반긴다.
드디어 '해좌전도海左全圖' 목판본을 만난다. 백 육십여 년 전에 만든 지도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다. 겉모습이 지금 우리나라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특이하게 지도 옆에 한자가 빼곡하다. 지도에 다 새기지 못한 역사와 자연 풍광을 글로 더한 느낌이다. 너무 커서 몇 발짝 뒤로 물러나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태 내가 본 지도 중 최대最大요, 최고最古다.
허리를 굽히고 깊은 속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길게 빼고 있는 나를 지도가 올려다본다. 잠깐, 가늠조차 어려운 시간과의 만남에 시공時空의 경계가 무너진 듯 나는 인연 둔 적 없는 시대와 마주한다. 책속에서나 봄직한 옛 시간이 성큼 다가와 옷깃을 끈다.
지도를 따라 발밤발밤 걷는다. 낮은 봉우리를 넘고 거침없이 달려 정상에 이른다. 백두에 서서 천하를 내려다본다. 오르고 올라 더 오를 곳이 없으면 오히려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다시 남으로 내려가는 길, 바람도 쉬어가는 산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 주변 산세가 여인의 치마 선처럼 유려하다.
‘京경’으로 표시한 한성에서 지방으로 뻗은 길로 눈을 돌린다. 행정, 교통, 군사 거점을 동그라미로 표시해 국가 운영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을고을이 모여 터전이 되고 그 위에 백성들이 살아간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산천에는 민족정기를 꾹꾹 눌러 담은 듯 강한 기운이 돈다.
투명 유리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바닷길을 연다. 곧장 바다 냄새 물신 풍기는 동해가 펼쳐진다. 손가락 하나 거리에‘우산于山’지금의 독도獨島가 있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이백 리 바닷길에서 만나는 섬이다. 옛 사람이 만들고 골 깊은 고을 선비에서 대대손손 전해 내려오는 지도에 독도가 우뚝하다. 우리 땅으로 새겨 보관한 늠름한 땅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더욱 애잔한, 작지만 큰 독도가 종이 위에 옹골차게 뿌리를 내리고 긴 역사를 쓰고 있었다.
독도는 바람 거센 돌섬에서 둥지를 튼 생명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한때 삼만 마리가 넘는 강치도 독도에 살았다. 엄연히 독도주민으로 우리나라 어부들은 강치를 만나도 포획하지 않았다. 어부들의 보호에 잘 살고 있어야할 강치가 지금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일본은 강치 가죽으로 제품을 만들거나 기름을 얻었다.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하게 한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되레 일본에만 존재하는 강치 박제를 내세워 자국의 영토에서 오랫동안 조업한 물증이란다.
아끼고 사랑하면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것이 생명일 때는 더욱 간절하다. 독도에는 무수한 생명이 이어서 살고 있다. 괭이갈매기가 봄 하늘을 날고 여름이면 흰 띠 꽁지깃 바다제비가 섬을 덮는다. 때로 긴 비행에서 탈진하거나 병이 난 새들도 품어 지킨다. 열악한 환경에도 살아남는 생명이 많아서 그런지 '독도는 우리 땅이다' 소리를 높이고 사람을 보내 지켜도 노린다. 수많은 역사적 증거만으로 우리 땅이라 목소리를 내는 일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물리적 증거와 함께 저마다의 가슴에 자리한 사랑을 증거로 내놓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 시켜서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깊으면 아픔이 된다. 수백 만 년 시간을 더하고 수백 킬로미터 바닷길을 헤쳐서 만나는 섬을 영상으로 만나고 사진으로 보고 가슴에 담은 지 오래다. 독도를 향한 짝사랑에도 독도는 길을 내주지 않았다. 독도와의 만남이 번번이 어긋나 배표를 예약한 날이면 풍랑이 치고 바닷길이 막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만 바라보다 돌아섰다. 허기가 몰려왔다. 허기를 채우러 들어간 식당 벽에는 독도가 늠름하고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독도 앞바다는 고요했다. 나와 어긋난 만남만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독도에 다녀온 지인들은 독도에 발이 닫는 순간 뭉클한 것이 올라온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서면 대한사람 가슴에 자리하고 있던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짧은 시간만 허락한 그곳을 거센 물결을 헤치고 찾아가겠는가. 취할 무엇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쿵쾅대는 심장이 이끄는 대로 돌섬을 찾는 것이리라. 뭉클한 것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해좌전도' 조선시대 인기를 누린 이 지도는 기관과 개인에 많이 남아 존재한다. 세 종류나 되는 판본이 있고 인쇄본을 똑같이 베껴 그린 필사본도 다수 있다고 하니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것도 많으리라. 희귀하다는 것이 가치 있게 평가 되는 요즘이다. 이러한 때에 우산도를 제 위치에 두고 설명까지 덧붙인 지도가 다수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일이 든든하다.
오래된 지도 위에 우리의 시간을 새긴다. 오천만 뜨거운 심장과 애정을 우리 땅 곳곳에 어울려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취 위에 얹는다. 우리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동해에 해 떠 오르는 소리가 우렁차다. 내게도 바닷길 열리는 그날이 오면 저 지도를 가슴에 품고 독도를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