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언니가 보내준 각종 양념류를 받고 잘 먹겠다는 감사전화를 했더니 보내줄수있어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한다. 자매가 늘 그렇듯이 이런저런 얘기보따리를 한참이나 풀고나니 우리 오남매의 어린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아침이면 부엌 문틈으로 올라오던 구수한 밥냄새. 밤늦도록 공부하던 큰오빠에게 이젠 그만 자거라 하던 울엄마 목소리. 작은오빠 친구들이 등교길에 집에 와 기다리며 하던 우스갯소리. 꽃밭을 가꾸시던 엄마의 뒷모습. 꽃그림과 함께 시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낭송하던 언니. 여러 생각들에 젖어 한참을 행복해했다. 왜 지나간 추억은 좋은것들만 생각나는걸까? 마냥 좋은일들만 있던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콘솔 설합을 열다가 엄마의 팔순기념사진을 보았다. 이미 오랜동안 병원에 계실때인데 아마도 외출하여 외갓집식구들도 오셔서 잔치를 했었나보다. 분홍색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우리 엄마. 직계 가족들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을 보니 이제는 고인이 되신 큰올케언니가 보인다. 언니를 봬니 왈칵 그리움이 밀려온다.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진 허전함과 서글품이 동시에 느껴진다. 언니 보고싶어요......그리워요...... 사진을 어루만지며 혼잣소리를 해본다. 어느날 꿈속에 언니가 찾아왔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담담한 얼굴로 '내가 곧 죽는다니 준비를 하고있어요' 하면서 언니가 늘 차고있던 혼수품이기도 한 오메가 손목시계를 내게 채워주는 꿈이었다. 며칠 지나 큰오빠와의 통화로 꿈 얘기를 하니 우리에겐 한번도 안나타는데 너한테는 왔구나, 아마도 그날이 납골당 봉인하는 날이어서 찾아왔나보구나 하신다. 속으로나마 '언니 고마워요 모습 보여줘서 고마워요 또 찾아주셔요' 눈을 감고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내게는 이 사진 말고도 소중한 가족사진이 또 있다. 흑백사진으로 뒷면을 보니 년도는 없고 1월3일이라고만 적혀있다. 큰오빠는 대학을 갓 졸업해서 군필도 아직 안한 직장새내기이고 언니는 대학 2년쯤 되었을것같고 작은오빠는 고1, 나는 중3 겨울방학때이다. 동생은 초등학교를 마쳤을때겠지. 흰 액자에 담겨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 내 눈에는 너무나 젊은 그리운 모습. 나 혼자 보기 아까워 형제들에게 복사해서 나눠드렸던 소중하고 또 소중한 사진. 내게는 보물 1호이다.
첫댓글 맞아요. 형제들이 많던 어린 시절이 좋은 일만 아니었을텐데 그립고 즐거운 추억으로 새겨 있어요. 돌아가신 올케 언니를 그리워하시는 마음에 애잔해지네요. 액자 속 이목구비 뚜렷한 부모님과 5남매, 한 얼굴처럼 닮았어요. 제 추억을 더듬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