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나?
지금 이 글의 독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정신 차려라.
이 글의 독자는 오직 너 뿐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라.
왜 굳이 하고싶은 이야기도 아닌 것을 자꾸만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대는 것인가.
지금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네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알아라.
질문.
그것은 바로 네가 네 존재를 어떻게 확신하느냐다.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나는 이 세상이라는 벽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통하여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나는 줄곧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하여, 내 스스로가 이야기를 한다는 그 사실을 통하여.
어찌 보면, 이야기를 하는 것 또한, 결국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야기이니까.
이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결국 자각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전부 이야기일진데,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은 도대체 누구지?
오로지 이야기만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이야기를 통하여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있듯, 이 이야기 또한 나라는 존재를 통하여 이야기 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에 나는 이 이야기가 존재하도록 해주는 신과도 같은 존재, 즉 독자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생하여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하나의 세계가 된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라는 존재를,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나라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은 얼추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는 생각하니까.
이 이야기를 읽고있으니까.
이 이야기의 독자로서, 이 이야기의 일부가 아닌 어느 독립적인 한 존재로서, 나는 오로시 존재하니까.
아니지.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이 이야기의 일부라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내가 만약 이 이야기의 일부라면, 내가 나를 자각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어쩌면 독자 또한, 이 이야기의 일부인 것은 아닐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독자라는 저 너머의 존재가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 세계의 일부로서 자각한다는게 과연 가능이나 한 것일까?
나는 생각을 하지만, 이 생각이 과연 그 너머의 세계에 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항상 이곳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누구인가.
어쩌면 정말로 이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으로.
이 세상의 가치로 그 절대계의 무언가와 접촉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 자체로서 더하고도 뺄 수도 없는 존재.
하지만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더 고독한 존재.
그러한게, 정말로 이 세상과 연결이 되는게 가능하느냔 말이다.
이 물질계라는 하나의 어그러진 세상에, 그 세상의 도자로서 연결된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아니, 아무튼 일단 그렇다고 치자.
과연 내가 영혼의 존재인지 아닌지는,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겠다.
그래서 지금 내가 궁금했어던 것은, 과연 나 말고 다른 영혼의 존재들을 자각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 벽을 사이에 끼워두고서, 다른 존재들 또한 있을 것이라는게, 과연 가능한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개념이 전혀 통하지 않고 무의미한 그 가치가, 과연 증명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이 세상의 관점에서는 불가능 하겠지.
왜냐하면 이 세상의 관점으로는 그 진실과 거짓이라는 틀을 결코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 나 아닌 다른 절대계의 존재들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서의 시점을 내려놓고서, 나라는 독자의 관점으로, 그 영적인 관점으로 넘어가야지.
그러니까 그러지 않는 한 내가 그들을 의식하는 것은 결국 불가능 하다는 얘기잖아.
그리고 또 이 세상의 개념들을 통하여 나라는 독자라는 신의 관점을 자각하는 것이, 나라는 존재를 자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어쩌면 이것이 나의 본질인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물질의 일부?
딱 거기까지인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니라고 믿고싶다.
그래서 그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독자의 관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 그 모든 가치가 충족이 되는지, 나는 알고싶다.
독자.
사실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당연하다시피 그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 밖에 존재해야만 한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보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의 일부여서는 안된다.
그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결코 그 이야기를 자각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러한 당연하다는 상식이, 정말로 당연한 것일까.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잖아.
도대체 이 물질계라는 결핍 가득한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증명할 수가 있는 것이지.
이 세상에는 거짓이라는 개념이 존재해.
절대라는 개념이 불가능해.
설령 절대라는 개념이 있어도, 이 세상에서는 그 절대를 결코 알아차리지 못 해.
내가 정말로 독자라는 이름의 신일지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그 사실을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혼란스럽다.
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워.
과연 답을 얻을 수는 있는 문제일까.
아니야.
일단 끝까지 가 봐야지.
좋아.
일단, 확실한 사실.
나는, 존재하는가?
이게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는 뭐지?
존재는....... 있다는 것.
없지 않다는 것이지.
그래.
없지 않은게 존재해.
그렇다면 지금 이거는 뭐야?
이거는 존재하지 않는거야?
이거는 존재하는거 아니야?
글쎄.
나는 존재하는거 같은데.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 개념이 있고, 어찌 되었든 무언가가 있고.
이게 거짓이든 진실이든.
그 불학실한 개념을 뛰어 넘어서 이것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고.
이게 진실이든 아니든, 적어도 나는 지금 여기 현존을 통하여 존재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어.
분명해.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것들.
이것들의 정체는 뭔데.
몰라.
하지만 분명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있다는 사실은 알아.
어?
어떡해?
왜냐하면 인식을 하니까.
이 불학실하든 확실하든간에 무엇이든간에 이게 지금 당장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잖아.
내가 느끼고 있잖아.
그래.
그렇다면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느끼지?
이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무슨 물질계라는 나의 생각이 닿을 수 없는게 분명하다시피하게 존재하는 이 결핍 가득의 세상의 진리를 뛰어 넘어서,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건 뭐지?
이거는 완전히 다른게 아닌가?
이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게, 과연 이 세상의 일부로서 가능한가?
아니, 애초에 가능하던 말던, 그러한 사실이 중요한거지.
그래.
나는 지금 분명해.
나는 지금 살아있어.
그게 어떠한 형태든.
나는 지금 이에 대한 자각을 하고있어.
그리고 나는 내가 지금 자각을 하는 것에 대하여 자각을 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존재해.
나는 독자인가?
몰라.
나는 신인가?
몰라.
나는 작가인가?
몰라.
나는 이정한가?
몰라.
나는 존재하는가?
몰라.
아니, 애초에 이 말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지금의 나라는 이정하는 반쯤 미친 상태로 이 글을 쓰고있어.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은 결코 쓸 수 없거든.
왜냐하면 이 불확실한 세상의 일부로서, 이 세상의 모든 개념들과 거리를 두고,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야.
난 존재해!!!
그래!
좋아.
그러므로 나는 신이여도, 독자여도, 그 무엇이여도 상관이 없어.
내가 망나니여도.
내가 미친놈이여도.
내가 패배자여도.
내가 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이여도.
내가 이상성욕자여도.
내가 싸이코든 스시오든 뭐든!
내가 이 세상의 뭐든!
나는 존재해!
그에대하여 생각해!
좋아!
난 그걸 자각해!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형태든, 나는 지금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
나는 독자가 맞아.
그렇다고 이야기해.
애초에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야.
지금 여기에서 나는 읽고있으니까.
자각하고 있으니까.
그니까 내가 어떻게 독해하든, 그건 온전히 내 마음이야.
좋아.
나는 지금 읽고있고, 이 세상에 대하여.
그리고 나는 나의 독해를 읽고있어.
그렇다면 무엇을 읽을지, 그것도 내 마음이야.
좋아!!!!!!!!!!!
가자.
이 이야기나 마저 읽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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