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 권두칼럼>
고향, 하슬라의 그 매듭 풀기
- 소중한 삶과 인연(因緣)의 의미망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본지 고문)
이 생명의 계절에 눈부신 아침 창가에 앉아 민족시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 먼저 출소하는 동료에게 써준 시편 “하늘 아래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옥중에서 하는 이별 기이할 수밖에/옛 맹세 아직도 식지 않았으니/국화와의 기약 저버리지 말게(이별)”를 읽다가 소중한 삶의 일상에서 새삼 그 만남의 연(緣)을 헤아려 본다. 근간 관동대학의 은사였던 미국 뉴욕주 웨스트체스터(Westchester)의 머시대학교(Mercy University) 경제학부의 김석희 교수가 발송해준 그분의 저서 『꿈과 비전』에 수록된 필자의 시편 <어머니의 교훈> 해설과 <삶의 교시(敎示)>를 펼쳐 읽으며 강물처럼 덧없이 흘려보낸 세월을 짐짓 돌이켜 본다.
그렇게 아득한 시간대지만, 20대 후반 김석희 교수와 ‘청송의 캠퍼스’ 학보사에서 짧은 만남이 이루어진 후, 60년을 지나쳐도 그분과 짧은 인연의 매듭이 잇닿아 뒤늦은 재회가 이루어져 노스승의 자서전 집필을 직접 챙겨드렸고, 또 학창시절부터 ‘시인이 당신의 로망임’을 알게 되어 5년 전에 등단을 주간을 맡은 월간 『모던포엠』지에 직접 챙겨주게 된 사실도 무심하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한편 10여 년을 지나쳤지만, 제자인 월간종합문예지『禪으로 가는 길』의 이종철 발행인이 모친상을 당하여서 서울 강동구의 경희의료원 영안실에 문상을 다녀왔다. 그 자리에서 또 제자인 「재경 강릉시민회」의 김기주 회장을 만나 정중하게 원고 청탁을 받았고, 다시 10여 일 뒤인 2015년 1월 13일에 ‘천년 하슬라(何瑟羅) 그 영광의 땅’의 글 모음집인「강릉사람들」의 ‘신년하례식 및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축사또 담당하였다.
이같이 온몸을 던져 한평생 열정적으로 ‘천년의 시향(詩鄕)’에서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40년 남짓 문화시민의 자긍심을 올곧게 지켜내는「강릉신문사」의 최종설 발행인이 동행해 주어 뜻깊은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하였다. 그렇다. 연유야 어떠하던 따뜻한 감회(感懷)와 함께 진정성 있게,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공감하였다. 일단 새삼스러운 지적은 아니지만, 소소한 삶의 일상에서 ‘아름다운 동행이란, 함께 우산을 쓰는 일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행위이기’에 따뜻한 감성의 동향(同鄕)으로서 이마를 마주하고 몸소 체험한 일면에서 ‘고등학교 후배들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2018명의 「강원도민대합창단」을 꾸려 극적으로 IOC 평가단의 감동을 얻어낸 성공적 결과는 못내 신선한 충격(衝擊)일 따름이다.
차제에 황혼의 삶을 만보(漫步)하며 고향의 산자락에 몸담고 살아오는 필자의 경우, 우리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위하여 온몸을 바쳐 지역의 사회 각계 원로와 제자, 특히 피가 뜨겁던 20대 후반부터 40년 이상을 지나치며 소중한 사제 간의 연을 맺은 제자들과 반세기의 기억 흔적을 되살리는 행위는 가슴을 저며줄 것이다. 또 한편 지극히 사적인 일상이지만, 30년 남짓 세월을 함께하며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지극정성인 『하슬라문학』의 심상순 회장이 「고향」을 주제로 다룬 28집의 간행까지, 적지 않은 사재(私財)를 헌납한 행위도 놀랍거니와 소중한 삶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운명적이듯, 선후배가 격(格) 없이 함께한 경우는 우연일 수 없다.
그렇다. 항상 모성(母性)이 자리한 고향은 항구와 같아서 언젠가 돌아갈 처소이기에, 단순히 탯줄을 묻은 땅이라는 개념보다 ‘정서적 양감(量感)으로 빛나는 그리움의 장소’이다. 지극히 사적인 논리이나 장엄한 백두대간이 동해로 뻗어 내린 모두의 향리(鄕里)인 강릉은, <헌화가(獻花歌)> 그 천년의 문향으로 자연조화가 수려한 축복의 땅이다. 특히 ‘빛의 고을, 하슬라의 땅’인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일관된 애정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나름의 품격을 지닌 문화적 우월성과 차별화를 따뜻한 감성에 견주어 지역의 자존감을 지켜내는 정신작업은 더없이 뜻깊다. 한편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회감(會減)에 잠길 때, 흔히들 강물처럼 덧없이 흘려버린 세월이라 종종 일컫지만, 고정인식의 틀을 몸소 의식할 일은 ‘다름과 틀림’의 개념보다 행복과 감사, 그리고 충만한 생명감으로 채워가는 문제의식이다.
각론하고 치열한 한국전쟁(the Korea war) 당시 미국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참호 속에서 추위와 기아,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앞에 처한 어린 병사에게 “지금 신이 옆에 계신다면 무엇을 빌겠느냐?”라는 물음에 “give me tomorrow!”라며 생명의 강인함을 언급했듯 생명의 고귀함은 끝내 심장 깊이 간직할 바다. 모처럼 강릉의 산자락에 평생을 몸담아온 필자에게 “강릉의 문화와 예술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지닌, 그 사람이 누군가?”를 물어온다면 스스럼없이 “「하슬라문학」의 고문이었던 심기섭(沈起燮) 수필가다.”라고 답할 것이기에 국회의원과 3선 시장을 역임한 고인의 묘석에 “평생 지역사회에 애정을 지녔던 감성의 소유자! 하슬라, 그 축복의 품에 안기다. 시인 엄창섭”에는 못내 비장감이 묻어있다.
그 같은 맥락에서 오랜 날 필자의 “예술에는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그 역설이지만, ‘지역 사랑이 승화되면 조국애가 되고 또 인류애가 될 것’이기에 21C 문화의 시간대가 비록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할지라도 생각의 속도를 늦춰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지극히 사적인 일면이나 지난해 12월 중순, 고등학교 후배가 고향에 관한 자료정리를 하다가 1984년 1월 필자의 「동아일보 신년칼럼」을 고맙게도 카톡으로 보내왔다.「고향에 살다-바다와 산의 넘치는 풍류 넘치는 강릉」의 지면에서 “집이란 인간이 버티고 서 있는 존재의 자리이며, 생명의 원천이듯 고향은 우리 모두의 영혼의 안식처이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쳐 조국을 사랑하듯 고향을 노래하며 삶의 열정을 고향에 쏟으며 살아가리라. 나는 영원히 강릉인이고 싶다.”라는 그 마음가짐은 현재도 불변이다.
까닭에 90년대 초엽 필자의 정신적 스승인 문덕수 교수님이 편지글을 통해 “엄교수! 이제는 대관령 정상에서 모든 대상을 응시하시오. 그렇게 평생 강릉의 낮은 산자락에만 머물지 말고.”라며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묵묵하게 자신과의 그 언약(言約)을 어렵게나마 자존감을 곧추세우며 이렇게 인생의 황혼에도 고향의 산자락을 보행하고 있음에 마냥 그 감회(感懷)는 새롭다. 차제에 “예술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라는 것은 오랜 날 필자의 지론이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치를 위한「강원도민대합창」(이사장 엄창섭)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또 국제적인 도시로 부상할 강릉의 밝은 미래를 위해 지연을 연고로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 풀어갈 공동의 관심사다. 모처럼 문화의 21세기 지역의 미래를 위한 의기투합으로 필자가 1995년에 도립공원인 경포대 주변에 ‘시비 공원을 조성한 사업’도 그렇거니와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또 지난 2월의 강원청소년올림픽 기간에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는 흰 털실로 우리 국민이 손뜨개질한 목도리를 IOC위원과 올림픽 선수, 세계언론인, 심지어 외국 관광객의 목에 걸어준 사단법인 「K 情나눔」(이사장 엄창섭)의 주관으로 행정당국의 일체 예산지원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자긍심은 놀랍다.
결론적으로 밝혀둘 정보의 공유라면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 땅의 우리 국민이 응당 기억하고 사랑해야 할 강릉태생인 ‘불후의 민족시인 청송(靑松) 심연수(沈連洙, 1918-1945)’에 대한 지대한 애정을 지녀야 한다. 모쪼록 정신작업의 종사자인「하슬라문학회」회원이라면 심상순 회장을 구심점으로 최소한 지상에 몸을 낮춘 겸허와 묵언의 응시로 눈부신 ‘존재의 꽃’을 켜켜이 피워내되 끊임없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차별성을 지니고 시대적 소임을 엄숙하게 수행할 일이다.
*약력 : 강릉출생, 『華虹詩壇』(1965) 발행인, 『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 학회, 김동명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 명예교수,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아태문인협회 고문, 사) k 정나눔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