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심재휘
가을 경주에게는 불국사로 간다는 버스가 있어서
낙서하듯 몸 하나가 덜컹거려도 긴 이야기가 된다
지나쳐온 정류장들도 기와를 얹은 집 모양을 하고 있다
낯선 길에 내려 찡그린 얼굴을 햇살에 새기면
시월은 몇 층짜리인지 헐리지 않도록 바람 속에 쌓은 돌
그 돌 위에 돌을 쌓으며
좁아져가는 생애가 내 발자국들을 죄다 모아서
석탑 위에 얹어준다
내 이름은 탑이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갈 만하다고
하지만 박모의 하늘에
매일 조금씩 덧칠해온 얼룩 하나가 붉게 떠서
오늘밤에 나는 불국에 이르지 못하고
왕릉 곁의 막걸리집에 국물 자국처럼 앉으면
경주의 밤은 속을 알 수도 없는 탁한 술을 마신다
깊어가는 어둠을 시큼하게라도 맡을 수 있는 곳
평생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뿐이란 걸
흠집이 많은 술집의 탁자에게 배운다
그러면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경주
뒤를 돌아보면 경주는
누구에게나 늘 그리운 오늘이다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문학동네, 2018.
경주를 가 본자는 안다
경주의 땅은 무덤의 땅이고 기와의 땅이고 역사의 땅이라는 것을...
가을에 보는 경주는 붉거나 누리거나 하겠지만
여름의 경주는 한 껏 눈부신 초록이거나 청색이란것을 단번에 알것이다
겨자빛 황토색으로 토함산은 빛나고
석굴암에서 얼비친 동해바다는 어느 님이 좋아하는 청보라빛 물감을
햇살폭 아래 풀고 또 풀으리라
둥근 릉의 완곡과 청기와의 날렵한 각선이 팔작지붕을 멋나게 하는 시가지에서
목적지를 놓친 과객은 한잔의 막걸리에서 시마를 퍼
경주라는 제목 얹어 원고지에 담았다
화자가 놓쳐버린 목적지가 이만하면 참 고맙다고 독자가 되어 나는 말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한번은 다 가봤을 경주를, 그 경주를 이리 살뜰히 풀어
탁한 술의 맵싹한 안주같이 품어 줄 시인이 있다면
나 그의 찐 팬이 되리니,,,
그대들이여! 경주에 유람 갈 일있으면 이시를 꼭 한번 만져 보고 가시라!!
나도 평생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한 말들로 숨을 잇는
모지람이 시인이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