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 김영근
대전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나와 가까운 두 분의 묘가 있다. 한 분은 누님이고 또 한 분은 자형이다. 자형이 참전용사였기에 누님까지 현충원에 모셔졌다.
자형은 생전에 술을 많이 드셔서 오래도록 누님의 속을 태우셨다. 6‧25때 두 눈이 실명된 자형은 1급 상이용사로 판정받아 연금으로 생활하였다. 실명으로 인한 정신적인 증상과 삶에 대한 비관으로 연금은 술값 치르기에도 빠듯하였다. 결국에는 간경화로 세상을 뜨시고 말았다.
누님은 매일 술 때문에 가사에는 관심이 없는 자형을 대신해서 스스로 가장이 되었다. 자식들 공부시키기 위해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 노고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해서 생전에 매일신문사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속앓이를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어 누님도 췌장에 병을 얻어 세상을 버렸다. 돌아가신 후에도 부부의 인연이 이어져 현충원에 합장되었다.
마침 대전에서 연수가 있어서 인사를 드리고 오기로 하였다. 살아생전 누님은 꽃 기르기를 좋아하셔서 집안 마당 전체가 화단이었다. 자형은 막걸리를 아주 즐겨 잡수셨다. 그러니 두 분을 찾아뵙자면 꽃과 막걸리를 준비해야 했다. 현충원 가는 도로 주변을 살펴보아도 매점 간판이 안 보이고 꽃 가계도 없었다. 구내매점을 찾았으나 벌써 문을 닫은 후였다. 다시 정문을 나와서 헤매어도 막걸리를 살 수가 없었다. 꽤 먼 곳까지 가서야 겨우 소주와 안주거리를 샀다.
다시 현충원에 들어서니 묘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형과 누님이 나와서 나를 힘차게 껴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형제는 한 핏줄임을 직감했다.
누님과 나는 스무 살 차이이다. 어릴 때 같이 다니면 보는 사람들이 아들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막냇동생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너무 닮았다고 모두 깜짝 놀랐다. 나이 차이가 커서인지 누님은 막내인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60리 길을 걸어서 통학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며, 살림살이를 아껴서 자형 몰래 용돈을 주는 때가 많았다. 요즈음 같으면 200원이 벌 가치가 없지만, 버스 삯이 5원, 10원씩 할 때였으니 꽤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 피곤한 몸을 달랠 수 있었고, 때로는 군것질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어린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내가 꼭 갚아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묘 앞에 서니 갑자기 그 옛날이 생각나 마음이 울컥해졌다. “막내가 못살까 봐 걱정이다. 공부 잘하여라.” 어릴 적 일들이 다시 생각이 나 묘지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상석 위에 술을 올려놓고 절을 4배했다. 곁을 보니 향이 통에 그대로 있었다. 향을 피우는 것을 잊고 성의 없게 엎드려 절만 한 것이다. 향 일곱 개를 뽑아서 피우고 다시 절을 두 번 하였다. 쥐포를 뜯어서 술잔에 담그고 좌우, 앞뒤의 묘비 여덟 곳에 세 모금씩 술을 따라 흩었다.
생전의 자형은 주점에 앉아서 지나가는 분들을 모두 청하여 술을 나누어 마셨다. 그 모습을 생각하며 여기에서도 모두 정답게, 의좋은 친한 친구가 되어 잘 지내시라며 빌어드렸다.
고수레를 하며 찬찬히 보니 묘비 근처의 그 좁은 공간에도 잡풀이 나 있었다. 누님은 화분에 잡초가 생기면 꽃이 잘 자리지 않는다며 늘 손질을 했었다. 이곳 묘역은 누님께서 평생 사시는 집인데 잡풀이 나 있어서야 되겠는가. 자주 못 와 본 것이 가슴 아프고 마음 한구석에 죄를 지은 것 같았다. 햇빛을 많이 받고 잔디가 잘 자라도록 손톱에 흙이 박히도록 정성을 다하여 하나씩 뿌리째 뽑았다.
한참을 뽑다보니 사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잡풀을 뽑느라고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더 일찍 왔더라면 깨끗하게 뽑아 드렸을 텐데 다 뽑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자형은 평상시 밝은 세상 속 시원하게 보지 못하시고, 혼자 다니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누님 손잡고 마음대로 놀러 다니세요. 아버지께서 끼시던 돌 안경 가져가신 것 끼시고 좋은 경치 마음 놓고 많이 보러 다니세요. 누님은 집안 뜰의 잡초는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드릴 터이니 집안 화단관리 걱정을 하지 마시고 따뜻한 잔디 옷 입으시고 고이 잠드소서!’
작별을 고하고 어둠 속을 혼자 걸어 나오니 두 어른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내년 현충일에는 생질들과 같이 오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힘없는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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