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십자가
어느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위스에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가파른 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의 브레이크가 파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버스는 더 가속이 붙어 위험한 운행을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가지 않아 한가운데에 어린아이가 놀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버스가 그대로 직진하게 되면 아이는 죽게 되고, 아이를 피해 방향을 틀면 승객들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모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운전기사는 망설임 없이 직진을 선택했고 가까스로 버스를 멈춰 승객들을 무사히 살릴 수 있었습니다. 한편 길 위의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승객들은 현장으로 가 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관광객들은 놀라면서도 자신이 살았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운전기사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아이의 아빠였기 때문에 비통하게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온 인류를 살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들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치고 우리를 살린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크게 두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위대하심입니다. 만물 속에는 무한하신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 권세와 권능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느님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하느님이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골고타 십자가 위헤 그분의 아들을 못 박히게 하면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그 은혜는 골고타 작은 언덕 위에 못 박힌 그 하나의 장면이지만 거기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있습니다. 골고타 위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온 인류의 사랑을 합해도 하느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복원과 회복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미술 작품도 자연도 모두 망가지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망가진 우리를 완전히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느님이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회복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처음 자녀로 만들어 주셔서 새 것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피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능력인 것입니다. 그 아드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셔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9장 1절 말씀을 들어봅시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암흑의 땅에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이 떠나간 것입니다. 주님이 이 나라를 번성하게 하시므로, 그 기쁨을 크게 하시므로, 수확하는 기쁨과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곡식을 거두는 기쁨은 이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이요, 전쟁에 승리하고 전리품을 가지고 들어오는 기쁨은 구속의 기쁨, 십자가 피의 기쁨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이 죄악은 그 무엇으로도, 누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파멸시키는 이 저주받은 세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멸망에 빠지게 하려는 원수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를 잡고 있는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그분을 희생시키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모두 인류의 죽음을 그분의 죽음으로 하느님이 해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채찍을 그분에게 다 돌리셨습니다. 그분이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고, 그분이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심으로써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드님의 희생으로 사는 것이지 내 노력과 선행으로 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끊임없이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능력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증거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면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도 하느님의 아들을 죽이시고 우리를 살려 주시는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구원과 생명의 종교,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어린 생명은 부모로부터 태어납니다. 부모의 고통과 아픔을 통하여 한 생명이 태어나듯이, 우리 영혼의 생명은 하느님 아들의 아픔과 죽음, 그 부끄러움과 멸망으로 인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 속죄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유다인은 항상 기적을 찾고, 로마인을 지혜를 찾습니다. 그리스인은 로마시대이지만 그리스문명 아래 있었기 때문에 지혜를 찾습니다. 나라마다 놀라운 것을 자랑하고 찾습니다. 미국 사람은 그들의 지식을 자랑하고 군사력을 자랑합니다. 일본과 독일은 경제를 자랑합니다. 이처럼 모든 민족이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자랑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온 인류가 우러러보는 것으로는 구원의 길이 전혀 없고, 인류의 구원은 하느님의 아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보고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무한한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저주와 멸망에서도 십자가는 우리를 지켜 줍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항상 십자가로 무장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선교, 십자가 없는 기도, 십자가 없는 봉사, 십자가 없는 충성, 십자가 없는 설교, 십자가 없는 부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교가 2천년 동안 이 모든 세력을 딛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십자가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아무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