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그 속에서 험악한 일들을 꿋꿋히,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게 견뎌내는 한 여인을 보면서
(장삼이사(張三李四) 독후감)(김동욱)
이 소설은 '정거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한 편물 목테를 맨 젊은이가 실수로 가래를 신사의 구두 위에 뱉고 신사가 과장된 몸짓으로 그것을 털고 닦는 모습을 바라본다. 더불어 주변사람들의 '두꺼비 같은 인상을 가진' 신사에 대한 좋지 않은 눈길도 직감한다. 그는 젊은 여인을 감시하듯 끼고 있다가 술에 취하고,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검표원이 와서 검표를 하게 되는데, 여자는 자신이 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 하면서 검표원의 꾸지람을 듣는다. 그때 '당꼬바지' 가 색시장사가 돈벌이로는 최고라는 말을 하고 가죽재킷이 같이 맞장구를 치면서 사라진 신사에 관한 흉을 한껏 보다가 신사가 돌아오자 다시 분위기는 조용해진다. 신사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 후 그가 볼일을 시원하게 보지 못 한 것을 익살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신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 변하고, 객실내 사람들이 신사에게 말을 걸고 영감은 술을 부탁하면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진다. 사람들은 '돈벌이가 고만한 노릇이 없쉔다' 라는 등의 신사의 말에 동조하고, 여인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여인은 무덤덤하게 담배만 피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역겨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기차가 S역에 도착하고, 신사는 달려온 청년으로부터 그의 형이 달아난 옥주년을 잡으러 갔다고 듣고, 신사는 청년의 분에 못 이겨 뺨을 때린다. 이어 청년은 손을 빨리 써서 붙들어 데려오는 중이라고 신사에게 말을 해서 화를 가라앉게 만든 다음, 신사가 여인과 표를 넘기고 내린 후 청년은 여인을 마구 때린다. 여인은 이를 물고 버티면서 간신히 청년에게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이야기 한 후 가서 오지 않고, '나'는 여인이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객실에 새로 타서 여인이 왜 맞는지 영문을 모르는 승객들에게 청년은 별일이 아닌, 아버지에게 맞은 분풀이를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러는 와중에도 '나'는 여인의 시체가 뒹구는 것을 상상하며, 여인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그녀는 분을 바르고, '옥주년도 잽혔어요?" 라고 말하는 등 추파를 던지는 모습을 보이고, '나'는 웃어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소설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서술자가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젼혀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건이 벌어질 때는 마치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건과 매우 동떨어진 듯 하다가 이내 자신의 생각으로 돌아 올 때는 또 다시 서술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떄 이외에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서술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은 매우 객관적이고, 마치 찍혀진 하나의 영상물을 보듯 읽혀졌다. 그렇게 소설속에서 드러난 사건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인물은 '신사' 라는 사람이다. 두꺼비처럼 생기고, 결백증인지 과장된 몸짓으로 구두의 가래를 털어내는, 도망친 아가씨들을 잡아 데려다 놓는 그 신사는 처음에는 차가운 분위기로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었지만, 나중에는 익살스러운 말로 사람들과의 분위기를 풀어내는 사교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신사가 자신이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면서 도망치는 아가씨들에 대한 괄시섞인 말을 시작하면서 신사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과 관심은 어느새 신사와 같은 관점이 되어버려 한데 묶여 아가씨를 욕되게 하는 분위기로 무섭게 흘러가면서, 사교성이 어느덧 분위기를 몰아가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씁쓰러웠다. 결국 신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사교적일 지 모르나, 그 하는 일 자체가 근본적으로 악덕하고 부도덕한 일이므로, 나중에 청년의 뺨을 때리는 등 그의 생활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거나 실천하기는 힘든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와 같이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당꼬바지'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신사를 좋지 않게 보는 인물이었다가 신사와 말문이 트이고 급격하게 거리가 가까워져서 어떻게 보면 소설에서 신사와의 거리가 제일 넓기도, 혹은 좁기도 한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확고한 생각에 근거해서 신중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대하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에는 신사에게 완전히 동조되어 아가씨를 같이 욕보이고, 신사와 급격하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 마치 처음에 등장했을 때와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또한 이 외의 승객들도 사실 '당꼬바지'라는 인물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듯 보였다. 그 후 '신사'와 '당꼬바지'를 비롯한 소설 초반에 등장했던 승객들이 사라지고, '청년'이라는 인물이 '신사'에게 일을 넘겨받으면서 등장 한 후 여인을 때리고 여인이 화장실로 사라진 후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분을 바르고 다시 나타나는 장면들을 통해서 '신사'와 '당꼬바지'등의 인물과 확연히 다른 인상을 가진 '여인'이라는 인물이 보다 더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사실 이 인물은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는 폭력에 의해 맞으면서 시련을 온 몸으로 견디는 인물이다. '신사'에게 잡혀오는 듯한 장면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여인'은 잘 모르긴 해도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그 이전에도 많은 시련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과 신사에 의해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청년에게는 분풀이의 대상으로 맞아 이를 물고 꿋꿋히 버텨야 하는 수모를 겪는 이 인물이 사라지자,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우려를 하는데, 소설속의 '나'로 하여금 이 인물이 목숨을 끊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인물이 적지 않은 시련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이후 여인이 다시 분을 바르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독자인 나도 매우 놀랐는데. 이는 소설속의 '나'도 이와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여인이 비록 조롱은 당하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 어떠한 인물보다도 굳세고 강인하게 느껴지도록 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 수모와 모욕을 숱하게 당해도 그저 무덤덤하게 담배만 태우는 여인의 모습이, 그리고 사정없이 맞아가며 무거운 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분을 바르고 눈물 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다시 청년에게 사글사글하게 말을 건네는 여인의 모습이 지조없이 현실에 구부러진 인간의 모습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이기보다, 마치 어떠한 역경과 고난도 그녀를 꺾을 수는 결코 없을 듯이 보였으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히 버텨내며 태연하게 상황에 직면하는 모습이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확연히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남의 말에 동조하며 다른 사람을 욕보이거나, 혹은 자신의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여인에게서는 함부로 울거나 슬퍼하지도, 화내지도, 심지어는 눈물을 마음껏 흘리지도 않고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강인함을 보았다. 이러한 여인의 모습에서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 서술자는 여인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안 좋게 생각하고 여인이 혹여나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이는 그대로 독자인 나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었다. 그러고 나는 서술자와 동시에 그런 여인을 보면서 잔잔한 웃음을 띄웠다. 서술자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했을지 알 수 없지만, 독자인 나는 그런 강인함을 파악하지 못하고 속단한 나의 헛된 걱정 때문에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도 해 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장삼이사'라는 제목은, 아마도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열차에서의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제목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도 해 본다.
많은 시련은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괴롭힌다. 이 소설속의 여인 역시 지금 많은 시련 앞에서 큰 도전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도전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다시 서술자의 입장에서 소설을 읽어보면서, 이 서술자가 처음부터 여인과의 거리를 가깝게 두고 생각을 펼쳐나가는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그 이유는 혹시나 자신의 처지가 매우 암담해 마치 여인이 자신을 닮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여인의 그러한 태도를 보면서 자신도 다시금 단단해 지는 것을 느껴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나약함을 벗어던진, 그러나, 굳건하게 삶을 헤쳐 나가면서도 결코 비열해지거나 다시 나약해 지지 않는 태도를 배웠고, 그렇기에 여인을 둘러싸고 많은 시련을 던져주는 인물들을 통해서도, 세상의 부조리함과 악덕을 품은 인물들의 모습을 끈기있게 지켜보며 어느 정도 소신을 가지고 비판을 해 가면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과연 이 소설속의 여인과 같이 시련 앞에 좀 더 태연해 질수 있을까 반성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