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나무집과 가을과 하루살이
한 모퉁이만 더 돌아가면
정자나무집이 나온다
그때 가을이 왔다
처서가 지나도 오지 않던 가을이
구월이 와도 감감무소식이더니
그 모퉁이를 지날 때
해마다 가을이 오는 날이 있다
사랑이 찾아오듯이
그 순간을 모를 수 없다
2025년 9월 2일 오후 5시 47분
나는 시간까지 봐 두었다
한 모퉁이만 더 돌아가면
정자나무집이 나오는
그 길에 잠깐 멈춰서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부터 석 달 구십 일
지상의 나무들은
얼마나 곱고 아름답게 물들 것인가
또 나는 생각했다
석 달 구십 일이
내게 남은 생이라면 억울할까?
그게 좀 억울하다면
사람의 수명이 석 달이라면?
거기에 운이 좋게도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통 가을이라면
조금은 덜 억울하지 않을까
정자나무집 앞에서
시인 둘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식당인지 막걸리집인지 애매한
정자나무집 회원들이다
저녁 여섯 시에 몇몇이 모여
주제도 없이 두세 시간을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를 듣다가 나온다
정자나무집 주인인 이모님은
고등어찌개와 열무김치를 내오며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게 되어
석 달 동안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정자나무집 회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마디씩 위로와 덕담을 건네는 동안
나는 속으로만
‘석 달이면 내 생애네?’ 했다
많이는 억울할 것 같지 않았다
하루가 온 생애인
하루살이를 생각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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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동시방
정자나무집과 가을과 하루살이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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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1
25.09.03 14:3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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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자나무집 모퉁이를 돌지 않아서인지 저는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만나는 순간이 어김없이 오겠죠?
지금쯤은 이미 맞이하셨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