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바라보기
할리우드에서 ‘전미 10대 미인’에 속할 정도로 가장 인기 있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유명한 사진 잡지의 표지와 세계적인 잡지 표지에도 나오는 그녀에게 미국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유명인사가 많은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청중 앞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의 등장에 사람들은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며 열광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사랑에 빠졌습니다.”
순간 많은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 운 좋은 사나이가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녀가 답변했습니다.
“예, 제가 사랑하는 사나이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이 이야기이 주인공은 에반스 콜린이며, 그녀는 목사와 결혼해서 선교지를 떠났습니다. 훗날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할리우드와 인기, 부귀영화를 버리고 후회가 없습니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할리우드의 배우나 영국의 여왕이나 미국의 대통령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게 이런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가 주는 기쁨과 주님이 주신 기쁨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누리는 은혜와 하느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하느님의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기쁨, 은혜, 능력, 건강한 삶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자는 아름답게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신자는 능력 있게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신자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은혜를 받았다가도 차츰차츰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빠져 들어가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고, 현대 문명이 우리를 건지는 줄 알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학자 페스탈로치는 “자식을 가르치는 데 과학으로 하여라. 그러면 유익할 수도 있다. 자식을 가르치는 데 신앙으로 하여라. 그러면 죽음도 행복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과학이나 컴퓨터 등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분명 유익이 있습니다. 더불어 좋은 대학을 보내고, 좋은 직장을 얻게 하는 것도 유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생명, 내 모든 앞날, 죽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신앙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녀를 가르칩니까?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과학자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위대한 하느님 자녀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흉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형틀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자에게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분명합니다. 죄를 파괴하는 길, 죄의 문제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오로는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우습게 여길지 몰라도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바오로의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그가 크고 놀라운 일을 일평생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농부, 군인, 경주자에 비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령한 농부, 군인, 경주자입니다. 이 세 신분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옷, 얼굴, 머리 스타일 등 외모를 아름답게 꾸밀 수도 없습니다.
운동선수를 보면 화장하고, 양복을 입고 나온 선수가 있습니까? 농부가 넥타이를 메고 정장 입고 들에 나갑니까? 군인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계절 군복을 입습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과 언변에만 아름답게 꾸미려 한다면 그 신자는 이미 능력 없는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옷 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노래 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노래 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돈 많은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 밤이면 단골처럼 TV에 등장해 시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주인공이 무엇입니까? 바로 흡혈귀였습니다. 날카로운 두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해쳤던 흡혈귀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능력의 사람에게는 어떠한 악한 것도 곁에 가지 못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코린토 교회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힘에 있다고 했습니다.(1코린 4,20) 말 잘하는 것, 철학적, 예술적으로 하는 것은 아직까지 유혹을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환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죽이나 우유 같은 아주 부드러운 것, 순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병들수록 사람은 귀찮아 하고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며 그저 가만히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현대인들은 영적으로 하느님 아버지 앞에 병들었기 때문에 건강한 자녀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연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십자가를 못 보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험한 것을 붙잡지 아니하고, 기도실로 들어가지 않도록 유인합니다.
자기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삼손의 힘, 골리앗의 힘을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마귀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만이 그 능력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며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의지하는 신자의 삶은 자기 자신도 상상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능력이 생깁니까?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상하게도 감사함과 기쁨이 나를 이끌고, 내 마음과 삶이 먼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내리신 은혜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