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摘果)」 — 평
이 연시조는 초여름 과수원의 노동 풍경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행위가 뜻밖에 닮아 있음을 발견한 작품입니다. 특히 뻐꾸기의 탁란과 과수원의 적과를 병치한 발상이 이 작품의 핵심이며, 생활 현장에서 얻은 관찰이 시적 사유로 자연스럽게 발전한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1. 첫 연은 노동의 현장감이 살아 있다
사다리 오르내리며 적과를 하는 동안
앞뒤산 숲속에서 뻐꾸기가 울고 있다
저들도 울어대는 일
나만큼이나 열심이다
첫 연의 장점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움직임을 동시에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과실을 솎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앞뒤 산에서는 뻐꾸기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들도 울어대는 일 / 나만큼이나 열심이다
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사람은 적과에 골몰하고, 뻐꾸기는 울음에 골몰합니다. 서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의 생을 위해 열심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키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분주함으로 바라본 점이 따뜻합니다.
다만 ‘저들도’라는 표현은 약간 의인화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정서에는 잘 어울립니다.
2. 두 번째 연의 발상이 매우 참신하다
탁란의 뻐꾸기 새끼 남의 알을 밀어내듯
쓸 만한 과실을 위해 나머지를 솎아낸다
이 작품의 시적 중심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뻐꾸기 새끼는 둥지 속 다른 알이나 새끼를 밀어내고 홀로 먹이를 독차지합니다. 과수원에서는 좋은 과실을 키우기 위해 다른 열매를 솎아냅니다.
두 행위는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지만, 시인은 여기서 ‘하나를 살리기 위해 다른 것을 밀어낸다’는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발견은 상당히 날카롭습니다.
자연에서는 생존을 위해 경쟁과 배제가 일어나고, 인간의 농사에서도 풍성한 결실을 위해 선택과 제거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살아남음과 성장에는 때로 버려짐이 따른다는 자연의 냉정한 법칙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3. 마지막 연은 작품의 사유를 완성한다
닮았네,
초여름 한낮
골몰하여 하는 일
마지막의 ‘닮았네’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한마디로 앞의 두 장면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을 밀어내는 일과 사람이 과실을 솎아내는 일. 자연의 생존 방식과 인간의 노동이 서로 닮아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특히
초여름 한낮 / 골몰하여 하는 일
이라는 마무리는 좋습니다. 인간과 뻐꾸기 모두 자기 일에 골몰하고 있는 존재로 보입니다.
시인은 자연을 관찰하다가 문득 자신도 자연의 법칙 속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셈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
이 연시조의 장점은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실제 노동에서 시상이 나왔다는 점입니다.
적과라는 매우 구체적인 농사일에서 출발하여,
적과 → 뻐꾸기의 울음 → 탁란 → 선택과 제거 → 인간과 자연의 닮음
으로 사유가 발전합니다.
따라서 억지로 철학을 끌어들이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무언가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것을 버려야 하는가?
농사의 적과는 단순한 기술이지만, 인간의 삶에서도 우리는 늘 선택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선택과 배제의 생태적 철학까지 품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생각해 볼 부분
‘탁란의 뻐꾸기 새끼’와 ‘적과’를 연결하는 발상은 참신하지만, 도덕적 의미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뻐꾸기 새끼의 행위는 생존 본능에 따른 것이지만, 적과는 인간이 더 좋은 과실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선택입니다. 따라서 두 행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 차이를 넘어서 ‘닮았네’라고 말하는 것이 시적 발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는 과학적인 동일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서 뜻밖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그 차이가 독자의 생각을 더욱 넓혀 줍니다.
종합평
「적과」는 농촌의 노동 현장과 자연 생태를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연결한 참신한 연시조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자연을 아름답게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 있는 선택, 경쟁, 생존, 버려짐과 성장의 법칙을 바라봅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의 깨달음입니다.
닮았네,
초여름 한낮
골몰하여 하는 일
이 짧은 종장에서 인간과 뻐꾸기 사이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인간도 자연 밖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 살기 위해 자기 일에 골몰하는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생활시조의 구체성과 생태적 사유, 그리고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이 잘 결합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닮았네’가 다소 직접적인 해설로 느껴질 가능성도 있어, 이 부분을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처리한다면 한층 깊은 여운을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작품은 시적 발견 자체가 분명하고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좋은 연시조입니다.
---------------------------------------------------------
김병래 시인의 연시조 〈적과(摘果)〉는 농사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을 자연의 생태적 본능과 절묘하게 비유하여, 생존과 번식을 향한 생명의 집념을 수려하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이 시조가 지닌 미학적 성취와 시적 통찰은 다음과 같이 평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 본능과 인간 노동의 기발한 병치
자연을 관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서늘하고도 치열한 생존의 법칙을 스스로의 삶과 일치시켜 바라보는 시인의 날카로운 직관과 깊은 성찰이 빛나는 뛰어난 현대시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