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정신 - 시집 평설>
정대요 시인의 시적 차별감과 삶의 역동성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사) k 정나눔 이사장)
1. 시적 추이(推移)와 아득한 정신풍경
오랜 날 우리의 소중한 삶에서 특정한 누군가와의 만남이 때로는 운명적임을 역설해온 평자에게 이 생명의 계절은 못내 일체감이 새롭다. 모처럼 본질적 고독 앞에서 고뇌하면서도 스스럼없이 그 자신의 시적 변주와 형상화, 그리고 시 의미의 중요성을 어느 정신작업의 종사자보다 각별하게 인식하고 있음은 또 하나의 충동인 까닭에 정대요 시인의 시집 평설 기술에 앞서 김언경「弘益出版社」대표의 시집 해설의 부탁을 받고 일순간, 40년 가깝게 교유(交遊)하며 평자의 저서인 『文藝思潮史』, 『민족시인 심연수의 문학과 삶』, 『현대시의 이론과 실제』 등을 출간하던 김대표 부친인 김창석 사장과의 옛일이 느꺼워 새로워 머뭇거렸음은 솔직한 심회(心懷)다.
이 같은 시적 형상화의 추이(推移)는 소소한 삶의 일탈(逸脫)에서 시적 서정성을 직접 전달하는 작위(作爲)인 연유로 대상의 형태를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시적 변용은 더없이 회화나 조각의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과 견주어지기에 짐짓 헤아릴 점이다. 일단「정대요 시인의 시적 차별성과 삶의 역동성」을 결속한 시집 평설에서 사천시 삼천포태생으로 한국농어촌공사에서 34년간의 정년을 마친 석청 정대요 시인의 경우, 신년 벽두에 『신문예』로 등단하였으나 『장수촌 건강마을』(2005년), 『래정만세력』(2014)을 각각 출간한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다. 까닭에 그 자신의 시적 변명처럼 시집 『바람결에 나의 체취(體臭) 흩날리고』(홍익출판사, 2025)를 묶어 들고 이 시대의 독자 곁으로 성큼 다가온 친밀성은 지극히 신선한 감동이다. 특히 첫 시집의 머리말(自序) 「지혜로운 삶의 잠언(箴言)」에서 “차제에 이 글을 쓰면서 더없이 유의미한 일은 강물처럼 덧없이 흐르는 세월이라 혹여 지워질 듯 사라지는 위기에 처한 옛 추억이나 사념(思念)마저도 살아있는 기억에 편입시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음”은 따뜻한 감성의 충격(衝擊)이다.
또 한편 그 자신이 담백하게 읊어낸 시편 <외돌개>를 포함하여 살아온 세월만큼의 햇수에 잇닿은 76편의 창조물은 비교적 자연적인 질료와 정한, 그리고 가깝고 먼 여행길에서의 ‘느낌과 교감’을 푸른 식물성 언어와 따뜻한 감성에 의한 ‘기억의 책무로서의 자아의 차별성이 맞물린 성찰의 형상화이기’에 새삼 시사적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시집의 편집 구도는 「머리말(自序), 제1부 시적 정감과 따뜻한 영혼의 울림, 제2부 빛나는 차별성과 심미적 개아(個我), 제3부 아득한 정신풍경과 묵언의 응시, 제4부 시인의 소임과 자아 성찰, 시집 평설」로 잇닿은 결(結) 고운 옷감처럼 직조(織造)되어 있다. 따라서 ‘탑 중허리쯤 키 큰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오가는 사람의 시선(視線) 사로잡는’ 정황 뒤 “석가탑 다보탑은 사람이 만들고/외돌개 돌탑은 창조주의 최고 걸작이다.(외돌개)”에서나 그 같은 시적 분위기는 묵언으로 관망할 바다.
그렇다. 지정학적으로 ‘제주에서 유일하게 다량의 계곡 수가 흐르는 곳 돈내코 골짜기 계곡천’을 나직한 선율로 읊조린 “제주에 암반균열이 많아 빗물이/땅속으로 스며들기에 대부분 건천으로/물 흐르는 개울 보기가 힘들다.(돈내코 골짜기)”의 보기에서나 또는 제주 바다의 일출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이백의 시구(詩句)가 다가오는 듯/“해가 뜨니 향로봉에 자색 안개 어리고(성산 일출봉)”/태양이 떠오르니 황금색에서 자색으로/바뀌니 포근하고 아름다워라.(성산 일출봉)”는 못내 이채로워 ‘일조향로생자연(日照香爐生紫煙)’의 현상으로 변주(變奏)된다. 간혹 삶의 일상에서 ‘홍도화 옆 언덕 밑에 만개한 흰장미 한 송이 절기를 잘못 읽어 착각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주어질지라도 20세기 레바논계 미국의 신비주의 시인인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참된 아름다움>에서 “사랑을 품고 있는 영혼만이/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일면처럼 동시대의 어느 시인보다 겸허한 심성의 소유자인 그 자신은‘비움의 미학’에 익숙한 연유로 “놀라워라, 입동 절기 지난 지 한참 후/몽우리 5개 중 하나, 만개하여 신선한 충격이다.(하얀 장미(白薔薇))”라는 시적 감응(感應)은 짐짓 가늠할 바다.
모름지기 ‘존재의 뿌리인 가정’을 기본골격으로 거리감 없는 추이(推移)는 시편 <손주 온다는 소식에> 맞물린 인용한 시편을 애틋한 관심사는 지켜볼 일이기에, “기차에서 먹으라고 작은 주머니 큰 주머니에/할미의 정성이 가득 담겨/작별인사 잊었는지 장난감 확인하기 바쁘다.(손주의 선물)”에서 그 시편의 양상과 함께 ‘손주 보는 것만으로 손주들의 선물인 듯 생기가 살아난 듯 할미의 미소 가득하다.’라는 시적 모티프를 통해 감지되는 따뜻한 가족애는 눈물겹다. 따라서 우리의 뇌리에 깊이 자리매김한 메르헨(Märchen) 적인 아득한 유년의 수채화처럼 ‘어릴 때 추위는 지금보다 더 추웠다.’라는 기억의 여적은 “먼저 온 아이들이 쌩쌩 달리며/나도 빠른 행동으로 준비하여 썰매를 탄다.(썰매를 타고 - 옛 추억)”에서 그 흥취는 다정다감하다.
2. 개아의 식별력과 서정시의 본말(本末)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감이 시 의식과 결부된 통섭(通涉)의 길을 모색하는 글 치기의 작업은 흥미롭다. 비록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삶의 시간대일지라도, 덴마크의 심리학 교수로 『절제의 기술』의 저자인 스벤 브링크만(Svend Brinkmann)의 역설에 접근하여 오랜 날의 고뇌 끝에 황혼의 인생길에서 ‘느림의 시학’으로 낮은 산자락을 거닐며 삶의 여적인 시집을 묶어내는 그 자신의 합리적 해법처럼 시의 본말(本末)인 순수서정성으로 빚어낸 시적 작위(作爲)는 그 존재감이 지극히 빛나고 있다. 그렇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라는 신비평의 관점에서 자잘한 직물 대상물인 질료에 관심을 지니고 시적 구도의 특이성에 의미구조를 엄격하게 확증할 일이다. 까닭에 ‘싱싱한 어제 모습을 과거 흔적으로 남긴 채 처음부터 버렸을지 모른다.’라는 의문에 맞물린 논의에 앞서, 허드슨(W.H.Hudson)이 “시는 상상과 감정을 통한 인생의 해석임”을 지적하였듯 충직한 한 사람의 독자인 우리가 그의 시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진정(眞情)한 그 마음 뒤에/온몸으로 보답하는 정, 놀라워라.(첫추위)”에서 기대감이 주어질지라도 “열매 맺어 앙증맞은 그 자태 빛남이다./더 길어진 잎자루에 은빛 열매 매어 달고/미풍에 흔들리는 공주님 방 은구슬 주렴(珠簾).(때죽나무)”의 일면에서 ‘앙증맞은 그 형상의 빛남’은 ‘은구슬 주렴(珠簾)’에서 한결 곱고 섬세한 연유로, 새삼 ‘꽃은 비에 젖어도 ‘꽃의 향기는 비에 젖지 않는다.’라는 논리의 타당성이 끝내 입증될 따름이다.
각론하고 상처받은 이 시대 누군가 깊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治癒)하려는 그 자신의 지극한 삶의 잠언(箴言)은, 정신작업에 종사하는 시인의 몫이기에, ‘당나라 문종이 세숫물에서 보았다는 대견사의 사찰’을 새삼 가늠하며 “안정감 있어 보는 사람도 편안하다./대견사의 옛 석탑과 석굴이 남아있을 뿐/절터만 오롯이 남아 있다.(비슬산 대견사지(琵瑟山大見寺址))”에서 그 자신의 감회(感懷)는 또 다른 시편 <비슬산에 낮달이 걸려 있고>와 맞물려 더없이 경이롭다. 일단 ‘소통과 화합으로 표상된 시 세계’를 화합과 상생의 연계 선상에서 시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를 시키듯’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 묻어난 우울, 불안의식을 말끔히 정화(淨化)를 시킨 소중한 생산적인 결과물이기에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아니하다. 따라서 그 자신이 일관된 형상으로 풀어낸 ‘존재의 뿌리인 가정과 가족, 그리고 유럽 여행길이나 탯줄을 묻은 향리(鄕里)에서의 감회(感懷)는 가늠될 것이다. 까닭에 ‘서쪽을 향해 앉으면 항시 일몰(日沒)만 응시할 밖에 없을 것’이나 대조적으로 다소 이국적인 정경이나 정감(情感)까지 거리감 없이 수용하고 있는 그 자신의 시편 “5월 다발다발 무리 지어 피는 하얀 꽃/청순하고 수줍은 모습에 향기 좋고 예쁘다.(피라칸사스)”의 보기에서나 “앞뜰 중앙에 하트모양(❤)의 잔디밭 가꾸어/마사 뿌리고 퇴비 주어 정성껏 키우니/주변 잔디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다.(핑크뮬리도 심어보고)”도 예외일 수 없다.
차제에 ‘이 지상의 가장 위대한 이름! 어머니의 상징성을 사랑의 큰 꽃’으로 피워낸 그 자신이 “바람불어 추운 날 멀리 선산에 외롭게 계셔도/우리 형제들의 가슴과 눈에서 매일 큰 꽃을/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할 따름이다.(사랑의 큰 꽃)”라는 시편도 그렇거니와 시집의 시편에서 이처럼 유년의 기억을 단편적인 미셀러니(miscellany)의 정감으로 형사(形似)한 ‘초등 3학년 그 시절(1960년경)’에 “ “학생! 꽃 붙은 나뭇가지 2개 잘라 줄 수 있겠냐?”/“예! 2개 잘라 드리지요, 전지가위로 2개를 잘라/중년 남자에게 전했는데 중년 여자가 가방을 열어/지폐 2장을 나에게 전해준다.(서향(瑞香) 내음은 바람을 타고)”에서 새삼 확증되듯 원근조망법(遠近眺望法)으로 다감한 그리움은 이채롭게 클로즈업될 따름이다.
그렇다. 가끔 화자(話者)가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자인하며 “전생(前生)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인도, 티벳, 러시아 등에서 태어났지만/한 번도 가본적 없는 전생 지역을 알고 있다.(전생(前生)이란)”의 일면을 통해 ‘전생의 일상사(日常事)를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전생의 지나친 집착’을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도 다음의 시편에서도 확증되듯 그 자신의 시 의식과 대상을 응시하는 시선은 새삼 무한공간을 향해 열려있음은 다음의 예시에서 입증될 것이다. 또 한편 “사람이 관측 가능한 별은 356,000개./이렇게 많은 별 중의 하나인 지구/우주에서 바라보이는 지구는 옥구슬같이/푸른색을 뿜어내어 앙증맞고 예쁘다.(참 예쁜 지구)”에서 이처럼 다양한 시 세계의 구축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같은 맥락에서 유럽 여행길에 발길 돌려 접한 ‘지금은 화산폭발로 일순간에 사라진 도시인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를 나직한 음조로 빚어낸 “자식이 노부모를 껴안은 모습이 석화되어/마치 석고상같이 발굴되었다.(고대도시 폼페이의 감회(感懷))”라는 참혹한 정황은 비장감이 넘쳐날 것이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2017년 동유럽 여행지를 다녀온 뒤에’ “또 그렇게 정신이 없었다./단번에 머릿속에 입력하기에는 뇌의 용량이/더없이 부족할 정도였나니.(다뉴브강의 추억)”라는 감회는 못내 다감(多感)할 따름이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시제(詩題)와는 대조적인 정황으로 ‘아침 창가의 빛은 눈부신’ 현상일 것이나 지난해 12월 31일 갑진년 끝날 정말 뜻밖의 “햇살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듯/가신님의 형상 몽환(夢幻)인 듯 아득하다.(아침 햇살)”라는 그 통한(痛恨)은 비장감이 왈칵 묻어날 것이다. 모처럼 그 자신의 빛나는 차별성을 지닌 구도적 해법은 생생한 일탈(逸脫)의 삶을 그만의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에 의한 정신적 결과물인 연유로, 영국의 평론가 토마스 카라일(Thomas Carlyle)의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장 험난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긍정적 역설처럼 그 자신의 시적 수용성은 시적 형상화에 의한 건강하고 생산적인 행위이다. 이처럼 따뜻한 감성에서 발현된 ‘동화(同化)와 투사(透寫)의 혼합적 양상인 탓에 그 자신의 시적 상상력이 창조적 영혼의 교감에 견주어짐은 응당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3. 시적 몽환(夢幻)과 매혹적인 해법
그 나름으로 평자가 오랜 시간 종종 반복하여 언급하는 바이지만 환경공해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에 해악을 주며 건전한 사회에 증오와 불화를 충격적으로 안겨주는 언어공해의 심각성을 지적해 왔다. 까닭에 낭만주의의 천재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시인은 영감의 비의를 해명하고 사제(司祭)로서의 소임을 담당해야 할 뿐 아니라, 최소한 존재의 뿌리인 언어의 집짓기에도 열중하여야 함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천상엔 별, 지상엔 꽃, 그리고 가슴엔 시라’는 관점에서 그 자신이 ‘응어리지다 설어버린 울음이 끝도 없는 물음표를 던지는’ 삶의 현장에서 존재감으로 버텨내는 끈질긴 생명감은 “바람결에 전신을 맡긴 채/살랑살랑 흔들리고 그네 타며 호령한다.(수양 매화)”에서 ‘감동의 느낌표(!)’로 정제되고 있다. 이처럼 삶의 처소에서 현상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연계성은 진통의 통로를 걸친 생명력의 당위성에 잇닿는 뼈를 깎는 육화(肉化)이기에 미의식의 확증은 신선한 감동이다.
특히 ‘물이 사라지면 지구의 생명 소멸’하는 까닭에 그 자신은 지혜로운 삶의 교시(敎示)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자연현상이기에/지구 살리기에 정녕 머뭇거림 없이/일체감(一切感)을 지닐 일이다.(물(水)의 은혜로움)”의 보기처럼 일깨워줌도 그렇거니와 또 한편 ‘이상화 시인의 시작 배경인 수성못’도 즐겨 시적 질료로 다루며 “큰오리 저 멀리 멀어지면 물갈퀴 펼쳐/미끄러지듯 사뿐히 내려앉는 경관(景觀)이다.(수성 못)”의 양상처럼 치타슬로(Cittaslow)의 여유로움으로 인생의 황혼기를 만보로 즐길 일이다. 그렇다. 5살 앳된 둘째 손녀가 여행지 숙소에서 ‘겨울왕국 OST’를 열창하던 감회도 새롭거니와 “Let It Go를 부를 때 보여준 그 예쁜 형상으로/건강하게 자랐으면 이 세상 부러울 것 없으려만,/세상사 못내 자유의지나 내 뜻만은 아니다.(겨울왕국 OST(Let It Go))”의 일면을 통해 ‘존재의 뿌리인 가정’의 소중함은 혈연(血緣)에 맞물려 다감한 추이(推移)다.
모름지기 그 자신의 삶에서 체득(體得)한 비법인 <불면증 해소법>도 새삼 유념할 점이지만, 이 지상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하늘의 언어인 ‘감사(感謝)’를 망각하지 아니하고 “가끔의 실망으로 자신이 미워질 때도/본인이 더 좋은 길을 선택할 때까지/더없이 감사하는 일체감(一切感)이다.(감사한 마음)”라는 지극선(至極善)한 심성은 못내 ‘험한 세상을 이기기 위한 내성(耐性)’의 매개물로 작동하기에 그 존재감은 역동성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음도 그렇거니와 또 한편 다음에 인용하는 시편에서 짐짓 확증되듯 “평지 50m 이동하는 데 온종일 걸리는데/이상한 동물이라 하등동물 중에/최하등이라 멸시당하는 편이다.(나무늘보의 가르침)”에서 ‘느림의 시학’으로 그만의 존재감은 놀라운 삶의 비법이며 해명이다. 비록 우연의 일치일지라도 화자(persona)인 그 자신이 평자가 탯줄을 묻은 백두대간 뻗어내린 소지맥(小地脈)의 낮은 산자락에 소재한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李乃蕃)의 한옥 처소로 국가 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공간’을 시적 이미지로 이같이 형상화한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구휼미(救恤米)를 베풀어/안민보국의 산교육장인 강릉선교장의 내력(來歷)이다.(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라는 그 정황의 정리에 느꺼움이 묻어나 삶의 덧없음도 끝내 충격적 매혹(魅惑)이다.
결론적으로 이상과 같이 논의한 정대요 시인의 시편에서 보편성을 지닌 시어의 사물성이 존재의 현현(顯現)을 위한 ‘언어의 집짓기’는 시 의식과 삶의 자리매김으로 확증된다. 까닭에 생명 외경과 감성의 시학을 형상화하는데 열중하는 그 자신에게 있어 평자 그 나름의 기대감이라면 언어유희(言戱)에 이끌리지 말고 ‘자기의 육성, 냄새, 그리고 색깔’이 있는 시적 차별성(差別性)을 확장하라는 것이다. 모쪼록 항시 삶의 역주(力走) 뒤, 숨 고르기라는 과정을 통해 감춤의 비법을 터득하는 시격(詩格)과 감성을 지닌 선비적 문사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함은 그렇거니와 인간소외라는 단절된 층위를 따뜻한 정신기후로 조성하여 부조리의 벽을 허무는 엄숙한 시인으로 한국의 시문학사에 뚜렷한 위상의 정립을 거듭 소망할 따름이다.
*약력 : 강릉출생, 『華虹詩壇』(1965) 발행인, 『시문학』출신, 한국시문학 학회, 김동명학회 회장, 관동대학교 대학원장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학 명예교수,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아태문인협회 고문, 사) k 정나눔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