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출판 기념회 소묘
일요일인 그저께 김만년 선생님의 《사랑의 거리 1.435미터》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오후 2시, 고양시 덕양구 그분의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 였습니다. 작가의 명성 따라 부산, 대구에서 온 분도 있었지만 사십여 명의 하객 중 태반이 ‘에세이문학’ 우리 식구들이었습니다.
‘일현문학회’ 원정란 회장님이 사회를, 축사는 제가, 건배사는 이상규 회장님이 했습니다. 주황색으로 타오르는 장작 난로, 그 위로 기관차처럼 쉭쉭 허연 김을 내뿜는 커다란 주전자, 분위기는 훈훈하고 따뜻했습니다.
이어서 나온 음식들은 소박하면서도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야들야들한 돼지고기 수육,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탕, 말랑말랑한 팥시루떡 꿀과 인삼 편…. 거기다 시원한 막걸리와 따끈한 정종까지, 이상규 회장님과 저는 딱 한 잔씩만 하고 일어서기로 했는데 웬걸, 말랑 쫄깃한 수육에 꽂혀서 그만 퍼질러 앉아버렸습니다. 술 못하는 제가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넉 잔을 마셨다면 아마 짐작이 가실 겁니다.
《사랑의 거리 1.435미터》는 벌써 매진되어 재판을 찍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비출판이 아닌 기획출판이라 ‘에세이문학’ 식구들 모두에게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날 제 축사가 좋았다면서 보내달라는 분들이 있기에 여기에 숟가락을 얹습니다.
덕담
방금 소개받은 강철수입니다.
이런 멋진 자리에서 덕담 한마디를 하게 된 건 오로지 제 복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수필집 《사랑의 거리 1.435미터》를 내신 김만년 선생님께 마음을 다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그 수필집을 받고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만나면 안아주고 싶은 사람,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끝맺음을 했습니다.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습니까. 두메산골에서 이제 막 올라온 듯 어리숙해 보이는 모습, 넥타이가 뭔지도 모르고 여러 곳으로부터 문학상을 받아 칭찬이 자자해도 뻐길 줄도 모르는…. 순수의 결정체 같은 그를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그럽디다. “그분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에게서 사람 냄새 나는 건 당연지사라 하겠지만 가파른 경쟁 사회를 사느라 많은 이들이 원초적인 그 냄새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반들거리지 않는 이분의 촌놈 티,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 냄새의 시원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분을 만나면 곧장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저지난달 세미나 때도 그러자고 했더니 ”또 우리 둘이서만요.‟하면서도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분하고만 찍은 사진이 여러 장입니다. 가끔 들여다보면서 이분의 사람 냄새가 나에게로 전염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분과의 인연은 내가 계간 《에세이문학》 발행인 시절인 2015년 ‘올해의 작품상’을 시상하면서였습니다. 글 제목이 아마 〈오래된 집〉이었을 것입니다. 이분의 글들은 좀 특이합니다. 한 가지 주제로 끌어가는 교과서적 글이 아니고 오만가지 얘기를 비빔밥처럼 섞어 놓아, 저걸 어쩌나 싶었는데 어느 대목에서 ‘앞으로 나란히!’ 일목요연하게 줄을 세우는 솜씨는 가히 장인(匠人)급이었습니다.
대부분 수필가는 가르쳐 준 스승이 있는데, 이분에게는 그런 분이 없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철도 기관사인 작가 자신의 말처럼 철길 따라 달리는 강과 산 그리고 하늘과 구름 같은 자연경관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인지 이분의 글은 자질구레한 수필의 규범에 억매이지 않는 자유! 생기발랄함이 넘쳐납니다. 원고지 몇 장이라는 매수에도 구애받지 않아 대부분 글이 깁니다. 어떤 글은 길게, 길게 700리 낙동강처럼 유장하게 흘러가기도 합니다.
이분은 스승이 없었기에 이 동네, 저 동네 블록 담장을 치고 사는 수필 동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이었습니다. 그때 저기 계시는 김경희 주간께서 옳다구나 팔소매를 끌어당겨 2018년에 기어이 《에세이문학》 식구로 만들었습니다.
2003년에 월간문학을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해서 여러 곳으로부터 문학상을 받기도 했는데, 15년이나 지난 후에 등단 절차를 밟자는 말에 순순히 응하는 숫배기 같은 양반. 그래서 다들 당신을 좋아합니다.
덕담 한마디만 하라고 했는데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한 가지만은 꼭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기 이 민들레 농장 어떻게 장만했는지 아십니까. 칙칙폭폭 기관사 월급이 그리 많지 않은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럼 무슨 돈으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2003년부터 최근까지 20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차곡차곡 그 상금 모아서 산 게 바로 이 농장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문학상을 타셔서 몇 년 후 저 건너편에 있는 땅도 사서 제2의 민들레 농장을 차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제 덕담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 좋았는데 이렇게 올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경희샘이랑 둘이 자주 눈맟추며 감탄을 마지 않았지요.
역시 오랜 시간 《에세이문학》의 발행인으로서 쌓으신역량이 두드러지게 느껴집니다.
박수, 힘차게 보내드립니다.
그 박수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의 따뜻하고 재밌고 진심 어린 축사가 분위기를 한껏 돋웠을 것 같습니다.
작가도 멋지게 축사하신 분도 멋지십니다.
미옥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