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을 깎으며
김응숙
자라나는 모든 것에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이 발끝에까지 이르러 발톱이 자랐다. 신문지를 펴고 발톱을 자른다. 손톱깎이의 새침한 이빨 사이로 두꺼운 엄지발톱을 밀어 넣는다. 한입 가득 뱉을 수 없는 욕망을 물어버린 손톱깎이가 이를 앙다물며 발톱을 잘라낸다. 엄지발톱이 거칠게 잘려져 저만치 날아간다.
뿌리에서 풀려나며 그것은 덧정도 없다는 듯 사라져버린다. 삭월의 밤하늘로 몸을 숨긴 그믐달처럼 희끗한 장판 위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잘릴 줄 알면서도 자라기를 멈출 수 없었던 욕망의 서러운 부스러기다.
잘려진 엄지발톱의 단면을 손끝으로 쓸어본다. 그지없이 까칠하다. 어렵사리 바깥으로 밀어낸 가장자리가 부질없이 잘려나간 것에 대한 항변일까. 끝부분은 바짝 날조차 서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앞이 가로막혀 있었던 발톱이 아닌가. 양말이나 신발은 발톱이 자라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특히 구두의 좁은 코는 딱딱한 형틀처럼 발톱을 죄며 압박했을 것이다. 하나같이 그들은 발톱에게 이렇게 주문했을지도 모르겠다. 자라지 마라. 드러내지 마라. 너에게는 네 자신을 충족할 권리가 없다.
한밤이 되어서야 발톱은 자유를 얻는다. 주인마저 깊은 잠에 빠져든 어둠 속에서 은밀한 욕망을 키운다. 낮 동안 단단히 가로질러 놓았던 걸쇠가 풀리고, 욕망의 성장판이 열린다. 의식이 심해 상어처럼 무의식의 저변으로 가라앉고, 아침이 되어서도 기억할 수 없는 무수한 꿈들을 먹고 발톱이 자란다. 꿈들로 다져져 화석같이 단단해진 발톱이 밤마다 조금씩 바깥으로 가장자리를 밀어낸다.
발톱이 조금이라도 자랐다 싶으면 어머니는 평상에 치마를 펼치고 앉았다. 펼쳐진 월남치마에는 희고 붉은 꽃무늬가 가득했다. 햇살을 이고 마당을 뛰어다니던 나와 친구들은 어머니 앞에 줄을 섰다. 날개에 꽃무늬가 새겨진 손톱깎이를 들고 있는 어머니는 바리캉을 들고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는 이발사 아저씨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환한 햇살 사이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쨌거나 몸 밖으로 자라나는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이 아니던가. 우리들은 괜히 옷매무세를 바로잡았다.
손톱을 깎을 때까지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던 친구들도 발을 내밀 때는 조금 부끄러워했다. 어머니는 꼼지락거리는 발을 확 끌어당겨 꼼꼼하게 발톱을 깎았다. 모양을 보아가며 양쪽의 홈 진 부분도 적당하게 잘라냈다. 발톱과 발가락 끝 뭉툭한 살점 사이에 끼인 새까만 때도 손톱깎이의 작은 칼을 이용해 말끔히 파냈다. 정말 개운했다. 어머니는 발톱을 다 깎은 두 발을 가지런히 놓게 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 발끝을 수건으로 쓱쓱 닦았다. 그리고는 치마를 털어 잘려진 손발톱 부스러기들을 한손에 모아 싸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들은 함석 아궁이에 던져질 것이었다.
열 개의 발톱을 다 깎자 마치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노곤해졌다. 그 노곤함 속에서 나는 지난밤 점이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했다. 밤에 손톱이나 발톱을 깎으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다고 했다. 잘려나간 손발톱 부스러기를 찾지 못하면 시궁창 쥐가 그것을 먹고 또 다른 나로 살아간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들은 서로 바짝 붙어 앉았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게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이 불쑥 나타나 나를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무엇으로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니 울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반응을 재미있어 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던 점이 언니가 돌연 목소리를 낮추었다. "밤에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하면 발톱이 빨리 자란대." 이상한 생각이란 무엇일까, 알듯 모를 듯했다. 우리들 중 몇은 고개를 숙이고, 나머지는 멀뚱하니 점이 언니를 쳐다보았다. 나는 치마를 끌어내려 드러난 발을 덮었다.
치마 아래로 살짝 드러난 여자의 발이 유난히 희었다. 펼쳐든 책 속에는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기모노를 입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일본 여자의 그림이 있었다. 드러난 가슴보다 반쯤 가려진 맨발에 시선이 더 머물렀다. 나는 어머니가 높은 선반 위에 그 책을 놓아두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문을 잠그고, 베개 두 개를 포개고 올라서서 겨우 내린 책은 '文藝春秋'였는데, 커튼까지 친 어둑한 방안에서 본 그녀의 하얀 발끝 발톱들은 가지런히 깎여 있었다.
발톱 깎는 것을 익히기는 매우 어려웠다. 왼손으로 오른손 손톱을 깎을 수 있게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제대로 발톱을 깎을 수 없었다. 우선 손톱보다 두껍고 단단했다. 손톱깎이의 날에 방향을 맞추어 발톱을 끼워 넣는 것도 힘들었다. 손톱깎이의 날개를 눌러 미끄러지지 않고 발톱을 자르려면 꽤 강한 악력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혼자서 발톱을 깎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작은 희열을 느꼈다. 그 일련의 동작들은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 힘의 조절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하나를 익힌 것 같았다. 이제 발톱이 자라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발톱은 무의식적으로 자랐다. 손톱이 여러 번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동안, 발톱은 석순처럼 아주 조금씩 자랐다. 가끔씩 나는 그것들이 내 몸 밖으로 여과되지 못한 욕망의 침전물이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등을 구부려 자라난 발톱들을 깎고 나면, 나는 나 스스로 다시 곧은 선 안으로 가지런히 정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발톱을 깎는 것은 내 몸의 가장 낮은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결코 만월이 되지 못할 잔여의 욕망을 조용히 잘라내는 일이 아닐까. 잘라내어도 다시 자라날 터이지만, 깎아야만 하는 발톱이었다. 열 조각의 발톱 부스러기가 잘려나갔을 뿐인데, 새뜻하니 온몸이 가볍다.
첫댓글 김응숙 선생님의 작품 잘 읽었습니다. 사유의 깊이가 아득하고 매끈한 문장들이 부럽습니다.
이복희 선생님 덕분에 또 많은 공부를 합니다. 고맙습니다. ^^
누군가 손톱을 자르며 슬픔을 잘라냈다고 하고 발톱이 자란 것은 기쁨이 자란 것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손톱이 더 빨리 자라는 걸 슬픔을 잘라냈다고 여기면 마음이 좀 편안하겠지요?
발톱은 두껍고 거리가 멀어 자르는 게 어려워도 기쁨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니 잘라내고 또 기쁨이 자랄 것을 생각하면... ㅎㅎ 수다가 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