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예레미야 20:9
예레미야는 자신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말씀을 전하고 싶은 그의 열정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힘이 그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 예레미야는 “나는 더 이상 전하고 싶지 않은데도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닫으려고 하는데 그 말씀이 속에서 불덩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뱉어내야 사는데, 예레미야가 앞서 겪었던 모욕과 모멸감의 경험이 자꾸만 그를 막아섭니다.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사람들이 조롱하고 박해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그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고 주님께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을 닫으니까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말씀을 밖으로 내놓으면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괴롭히고, 말씀을 안에 가두어 두면
그 말씀이 예레미야 자신을 견딜 수 없게 만듭니다.
말을 해도 고통스럽고, 말을 하지 않아도 고통스럽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면 속에서부터 타오르는 이 불은 누가 지핀 것일까요?
예레미야 자신일까요?
예레미야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은 자신에게서 솟아난 열정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예레미야가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속에서 불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말씀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이 예레미야를 붙들고 있습니다.
그는 말씀을 놓으려고 했지만 말씀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사역의 열매는 당장 그의 눈앞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말씀은 먼 훗날 포로기의 이스라엘과 그 이후의 공동체가
자신들의 역사와 하나님을 이해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미래의 열매가 지금 압박과 절박함을 겪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당장의 위로가 되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말씀 때문에 현재의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 보이지 않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20장 9절을 묵상하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말씀을 붙들고 여기까지 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놓으려고 할 때에도 말씀이 나를 붙들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