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년의 질문’
우리 사회의 적폐 실상을 소상히 고발하고 있는 소설 ‘천년의 질문’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에게 지배당한다.” - 플라톤
지금 돌아보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거대 자본에 휘둘려 인간을 소외시킨 현 상황을 통찰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재편하는 소설에서, 작가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수천 년에 거쳐 하나의 거대한 집단, 즉 국가에 소속되어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물었을 법한 질문인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이고도 치열한 질문에 대한 뜨거운 응답을 던진다.
소설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건 취재에 고군분투하는 기자의 노력, 비자금 장부의 행방을 추적하는 재벌 그룹 구성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인 국회의원과 사업가, 변호사 등의 아귀다툼.
나와 내 이웃을 위한 시민운동의 실천만이 거대 권력의 독재를 막을 수 있으며, 우리 모두 함께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머물지 않을 때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에 공감하여, 여기에 그의 고견을 옮겨 본다.
‘천년의 질문’(조정래)
잠깐 스웨덴 국회 전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스웨덴은 인구 1,000만이 조금 못 되고 GDP는 54,000달러나 되니, 정치는 국민을 최고로 잘 모시는 세계적인 모범국입니다.
세계적인 모범 국가 스웨덴식 국회가 한국에서도 실현되어야 합니다.
법치국가의 변화는 법을 만드는 국회부터 변화시켜야 합니다. 한국 국회의원은 모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스웨덴에서는 그랬다가는 국민들이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국민 세금을 낭비하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습니다.
한국 국회의원 보좌관은 여덟 명입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보좌관도 비서도 없습니다. 단, 두 의원당 한 명씩 국가 입법조사관을 제공합니다. 그 조사관의 보조를 받으며 의원들은 연간 수십 건씩 법안을 발의합니다. 국회는 휴일 없이 일하고, 24시간 일하는 체제입니다. 그런 봉사 정신을 잃으면 자연스럽게 탈락합니다. 근무 중인 의원들 거의 전부가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옵니다. 의원들은 식당에 오갈 시간 여유가 없기때문에 도시락을 싸 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녀 의원들 거의가 자전거를 타고 배낭을 메고 출퇴근합니다. 4년 임기 동안 법안 발의를 게을리한다면 엄중 징계를 받아 국회에서 쫓겨납니다.
국회의원은 또한 특권이 없습니다. 법 앞에 평등하듯 국회의원들은 근로자들과 똑같이 일할 뿐입니다. 물론 면책특권이나 불체포 특권도 없습니다. 공무 출장으로 비행기를 탈 때도 가장 싼 좌석을 이용하고, 자동차를 이용할 때도 택시는 안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 이유는 국민 세금을 절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장성 외유 같은 것도 없습니다. 출장의 경우 경비 영수증을 100% 제출하고 그 영수증은 영구 보관됩니다.
선거 공약 때도 꼭 지킬 수 있는 것만, 틀림없이 자신 있는 것만 공약으로 내세웁니다. 정치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신조로 의원 생활을 해 나갑니다.
스웨덴의 시의원들은 국회의원들 보다 훨씬 더 큰 희생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특권도 보수도 없이 오로지 봉사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는 보수가 있다면 주민들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긍지와 보람일 것입니다.
스웨덴의 정치가 이렇게 깨끗한 것은 지난 400년 동안 피나는 자각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자각과 노력이란 다름 아닌 시민들의 직접적인 감시와 감독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력은 감시와 감독 그리고 견제가 없으면 반드시 횡포하고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또 인간의 속성입니다.
서유럽 여러 나라의 시민들은 서로서로 보고 배우며 그 감시와 감독 조직을 철저하게 가동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비영리민간단체, 시민단체가 대강 23만 2천 개입니다. 핀란드는 14만, 프랑스는 백만, 영국은 87만 개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시민단체 수도 너무 적고, 국민의 참여도 낮고, 그러니 감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민주국가 국민에게는 국가에 대한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국민이 국법을 준수하는 것은 의무이고, 국민이 위임한 모든 권력을 철저하게 감시 감독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입니다.
그 권리 행사는 바로 시민단체를 통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단체 수만 보아도 한국인들은 국민으로서 직무유기를 너무 크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심장이 뛰듯이 살아 움직이지 않고서는 그 사회와 국가는 병들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는 시들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은 절대 불변의 사실입니다.
스웨덴의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의 경제활동도 치밀하게 감시 감독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민주국가의 2대 권력은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입니다. 그 권력들을 줄기차게 감시 감독하지 않고서는 건강성을 유지해 갈 수가 없습니다.
스웨덴에는 기업이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탈세를 하지 않으며, 그 어떤 편법으로도 기업이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편법이나 불법을 자행했다면 그날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그 기업은 바로 파산됩니다. 모든 기업은 투명하고 정직하게 경영해도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익만으로도 기업인들은 보통 시민들보다 몇십 배에서 몇백 배 부자로 잘살 수 있습니다. 기업 모두가 전문 경영인 체제이기 때문에 경영권 세습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언론도 큰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언론의 적극적이고 꾸준한 유도가 시민의식을 바꾸고 시민단체 증가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최고의 문제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권위주의와 독재의 야망으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다.’
(202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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