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벌휴이사금 (伐休尼師今 184~196 재위기간 13년 )
벌휴[발휘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석씨이며, 탈해왕의 아들 구추 각간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성은 김씨이다. 그녀는 지진내례부인이다. 아달라가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제10대 내해이사금 (奈解尼師今 196~230 재위기간 35년)
12년 봄 정월, 왕의 아들 이음[혹은 내음이라고도 한다.]을 이벌찬에 임명하고, 내외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25년 봄 3월, 이벌찬 이음이 사망하자 충훤을 이벌찬에 임명하고, 병마사를 겸하게 하였다.
제13대 미추이사금 (味鄒尼師今 262~283 재위기간 22년)
미추 이사금[미조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이다. 어머니는 박씨이다. 그녀는 갈문왕 이칠의 딸이다.
《견해》 남당유고에는 이음(利音)이 이칠갈문왕이라고 한다.
제14대 유례이사금 (儒禮尼師今 283~298 재위기간 16년)
유례 이사금[고기에는 제 3대, 제 14대의 두 왕의 이름을 똑같이 유리 혹은 유례라 하였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조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씨이고, 갈문왕 내음의 딸이다. 그녀는 예전에 밤길을 가다가 별빛이 입으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임신이 되었다. 유례를 낳던 날 저녁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찼었다.
《견해》 유례이사금의 어머니는 내음의 딸이며, 박씨라고 하였다. 내해이사금 12년 기사에는 내음이 내해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유례이사금의 어머니는 박씨가 아니고 석(昔)씨여야만 삼국사기에 모순이 없는 것이다.
내해이사금 12년 기사의 내음의 신분인 왕자(王子)를 진골의 신분으로 해석한다면 - 내해가 벌휴의 손자로써 왕위를 이었기 때문에 내해가 어린나이에 즉위하였고 즉위12년이라면 아들이 비록 있었다 할지라도 나이가 어렸을 것이다 - 이벌찬과 내외병마사를 겸하는 최고재상의 올랐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남당유고는 다음과 같은 계보를 제시하고 있는데, 괄호()는 어머니다.
아달라(자황) - 이음(공례) - (술례)구도 - 미추
아달라(자황) - 내음(아례) - (아소례)조분 - 유례
벌휴(자황) - 이매(내례) - 내해(옥모) - 첨해
벌휴(자황) - 골정(옥모) - 조분(아소례) - 유례
남당유고가 제시한 위의 계보에 의하면 아달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기사는 잘못이며, 미추와 유례의 어머니가 모두 박씨라는 것은 인정될 수 있다.
첫댓글 유례이사금 탄생설화는 동명왕 난생설화와 유사한 데가 있군요. 위와 같은 설화가 실제 있었다면 '알' 이라는 부분이 사실상 삭제된 난생설화 계통의 가장 후기 버전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신라 초기에 '병마사' 기 있었다는 것이 특이하군요. 혹시 관련 자료의 검색이 가능하시다면 '병마사' 가 최초로 등장하는 게 언제쯤인지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고려 이전에 병마사라는 관직은 본 기억이 없어서 말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병마사라는 관직이 여러번 등장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요? 유심히 안 봐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 고구려본기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시 찾아 본 바로는 서천왕 11년에 달가에 대한 기록에서 知內外兵馬事 라는 구절이 있긴 한데 이건 兵馬使 가 아니라 兵馬事 라서 관직명은 아닌 것 같고... 신대왕 대에도 명림답부에 대한 기록에서 이와 비슷한 令知內外兵馬 라는 구절이 있긴 한데 이 역시 '병마사' 라는 관직명은 아닌 것 같고...
남당유고의 유례이사금 출생기사입니다.
十五年 正月 阿召禮生 帝子儒禮 異香滿室 初阿召禮 夜禱樹王 星光入口 而娠也
15년(A.D.306) 정월 아소례(阿召禮)가 왕의 아들 유례(儒禮)를 낳았다.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처음에 아소례가 밤중에 수왕(樹王)에게 기도하였는데 별빛이 입안으로 들어와 임신을 하게 되었다.
二十一年 木蛇 正月 以儒禮太子爲副君 初阿召禮呑星而生 儒禮端麗而有藝
21년(A.D.345) 목사(木蛇=乙巳) 유례(儒禮)태자를 부군(副君)으로 삼았다. 처음에 아소례(阿召禮)가 별을 삼키고 태자를 낳았다. 유례는 행실이 단정하고 겉모양이 아름다우며 배움(재주)이 있었다
삼국사기에 신덕왕은 아달라왕의 후손이라고 했죠..즉 아들이 있었다는 소리입니다..벌휴왕이 탈해왕의 후손 같지도 않은데 왕위에 오른 것부터가 굉장히 의심스럽습니다..정변의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님께서도 중요한 자료를 찾으셨군요.
벌휴기에 기록된 아달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기록과 신덕왕기에 기록된 아달라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서로 상반됩니다.
결국 거짓말은 탄로가 나게 되어 있죠.
추가로 80년에 죽은 탈해왕의 손자 벌휴왕이 184년에 즉위하는 건 앞뒤가 전혀 맞지가 않죠..뭐 먼 후손으로 이야기한다면 나름..그리고 아버지라고 한 구추에 대한 내용이 벌휴왕본기에 즉위년에만 있다는 게 의심스럽기도 하고요..
아달라 자료 찾다가 간만에 들렸네요.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