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의 근원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 조사한 자료를 보면, 그리스도인들도 유혹을 받는다고 합니다. 제일 큰 유혹이 물질에 대한 유혹이고, 그 다음이 명예에 대한 유혹, 주일 미사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성당에 안 나가도 괜찮겠지?’, ‘오늘 친구가 야외로 놀러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스키 타러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골프 치러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등 신자들은 유혹을 자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밖에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신자들도 똑같이 음주, 이성에 대한 유혹을 받는다고 합니다.
유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유혹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혹이라기보다는 시련(TES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잘 경외하는 자에게 오는 시련입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통하여 시련을 겪는 장면이 나옵니다. 욥도 시련을 겪고, 사도 바오로, 예수님도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흠 없는 삶을 살았는데도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느님은 더 많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더 큰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십니다. 더 잘되게 하기 위해서 시련을 주십니다. 하느님 앞에 당하는 시련은 잘못할 때 오는 것이 아니고 잘할 때 옵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시련은 대체적으로 다 합격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믿을 때 오면 시련을 잘 감당하여 합격하기 때문입니다. 코린토1서 10장 13절 말씀을 들어 봅시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시련을 감당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길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련은 좋은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충분한 믿음과 자격, 기도를 보시고 시련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둘째, 마귀로부터 오는 나쁜 유혹이 있습니다. 이런 유혹은 언제 옵니까? 우리가 약할 때, 기도하지 않을 때 옵니다. 그래서 대체로 마귀로부터 오는 유혹에는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재물의 유혹이나 질병의 유혹,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한 번 흔들리면 평생 흔들리고, 한 번 길을 잃어버리면 평생 길을 잃게 됩니다. 한 번 타락한 길로 들어가면 평생 부패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는지 안 서 있는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마귀는 늘 우리의 마음을 엿보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유혹을 잘 물리쳐야 하느님이 주신 모든 축복이 내 것이 되고 끝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면 어떤 행복과 축복도 유혹이라는 마차에 실려 영영 떠나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했던 다윗도 유혹을 받아서 넘어졌듯이 주님의 신실한 자녀들에게도 유혹이 있습니다. 어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오랜 세월 공부한 것, 기도한 것이 안타깝게 무너져 버립니다. 그런 유혹에 빠지 쉬운 말이 있습니다.
첫째, “안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말에 모두 속는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다 그러는데’ 하고 안심시키면서 유혹을 합니다. 여기에서 많이 넘어집니다. 성경 속 엘리야가 자기만 바알을 숭배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주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7천 명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유혹에 넘어갈까요? 유혹 받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둘째, “딱 한 번만, 이번만, 마지막으로!” 하는 말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아 딱 한 번 범죄하면 마귀에게 딱 잡히는 것입니다. 마귀의 함정에 내가 빠지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한 번 떼먹어 봅시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압류해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마귀에게 한 번 잡히면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끝까지 따라붙습니다. 계속 유혹을 합니다. 한 번 먹어 보면 또 먹고 싶고, 한 번만, 한 번만 하다가 지옥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셋째, “요것쯤이야 뭐 큰 죄인가?” 하는 말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살인죄나 거짓말한 죄나 다 똑같습니다. 음란한 죄나 그런 매체를 접하는 죄나 모두 똑같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모르고 깊이 빠지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합니다. ‘요즘 이런 죄도 안 짓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어떠한 죄든지 크게 보고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나이도 젊은데 그까짓 것 정도야!” 하는 말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젊을수록 하느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봄에 씨앗을 심어야 가을에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인생도 봄날을 잘 지내야 좋은 열매를 맺는 가을이 오는 것입니다.
죄악에 빠지면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갑니다. 무엇인가에 홀리면 시간이 일순간에 지나갑니다. 도박에 빠지면 낮이 가고 밤이 가는 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모든 죄악의 시간은 빨리 지나갑니다. 따라서 젊을수록 술과 오락, 불의와 죄악, 세상 향락에 빠지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머리가 좋다, 잘났다, 많이 배웠다, 돈이 많다, 권력이 있다’는 사람들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코린토1서 10장 12절 말씀을 들어 봅시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언제나 머리 좋은 사람이 빨리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한 번은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마지막 덫에 걸리는 것입니다. 새가 올가미에 걸리듯이 마귀에게 걸린다고 했습니다. 공부 잘한다, 권력 있다, 돈 많다, 누구보다 잘났다고 생각하십니까? 마귀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 놓고 언제나 밖으로부터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게 합니다. 이런 유혹에 항상 승리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1코린 10,12)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