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학 권두칼럼>
별의 시인 『동주와 함께 걷는 길』의 해법
- 박성진의 시적 조망(眺望)과 그 친화력
엄창섭(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본지 고문)
1. 시적 교감(交感)과 동행의 당위성
모름지기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박성진 시인이 최근 빛나는 존재감을 지켜낸 끝에「마르지 않는 가압장 동주의 몽마르트르 언덕-박해환 시인 일구어낸 10만평 동주의 산촌」을 절절히 읊어낸 그 자신이 앞서 간행하는 제3 시집『동주와 함께 걷는 길』(책나라, 2024)의 편집 구도는 결(結) 고운 옷감처럼「제1부. 동주 한 사나이의 길(15편), 제2부. 동주의 조국(19편), 제3부 후쿠오카 형무소에 피는 꽃(22편). 제4부 달빛 속에 고독한 나(15편)」의 일면에서 치밀하게 직조된 71편이 비교적 단조로운 호흡의 구도처리다. 일단 그 자신이 시 심리의 작위(作爲)는 “별빛 하나하나가/내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삶의 무게 버거워도/희망의 빛 잃지 않고 있네(별 헤는 밤)”라의 보기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이처럼 연유할 따름이다.
또 한편 우리 근현대문학사에서 일제강점기 대표적 민족 시인으로 시대적 상황으로 존재감이 베일에 가려졌던 북간도 용정태생의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정음사, 1948)의 간행 직후에야 그나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마치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가 “시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임”을 밝혔음은 유념할 점인 까닭에, 개념도 불투명한 이념의 대립으로 밝은 미래가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지난 2022년 7월 22일의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의「백영(白影) 정병욱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특별전」이나 윤동주 시인 작고 80주년을 맞아 국내외적으로 각종 추모 행사는 뜻깊은 추이(推移)다.
차제에 이 땅의 진정한 휴머니스트이며 창조적 영혼의 소유자가 비정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정황에서 민족의 울분을 순수서정의 꽃으로 형상화한 특정한 시인에 관한 시적 접근에 몰두한 박성진 시인의 시집 출간은 따뜻한 감성을 공감한 정신적 결과다. 따라서 “아침이 오면 빛나는 태양처럼/그대의 시 영원히 빛나네//한 줄기 우리의 길 밝혀주는/시간이 지나도 빛나는 그 이름(동주의 이름표)”의 일면도 그렇거니와 그 자신이 ‘밤하늘은 어둠만이 아닌 희망을 품은 거대한 어머니의 품’을 망각하지 않고 다시 내면의식에서 소환(召喚)하여 “새로운 아침을 약속하는 소리/들으며 그곳에 가 닿으리라(캄캄한 밤하늘에서 빛을 보며)”라는 기대감은 못내 비장감이 묻어난다.
까닭에 일제강점기의 그 암울한 상황에서 ‘모국어로 시를 쓴 시인’으로 피가 뜨거운 열혈의 청년으로‘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가슴에 안고 다녔던 별의 시인 윤동주는’ “한번 책을 잡으면 놓지 않던//새벽까지 세계전집을 읽던/무서운 독서광 동주(암흑의 세대에도 독서광)”의 보기에서 젊음의 한 때를 ‘잃어버린 조국의 뼈아픈 치욕스러움을 시로 형상화’하며 끝내 민족 앞에 부끄러운 자신의 참회록을 확증한 면모를 “졸업을 며칠 앞두고/태평양 전쟁이 터진다//졸업 후 동주는/사촌 형인 송몽규와/일본 유학길에 오른다(슬픈 비는 내리고)”라는 삶의 여적(餘滴)에는 비장감이 묻어있다.
각론하고 민족시인 윤동주가 정병욱 교수에 의해 세인의 주목을 받은 것은『하늘과 바람과 별과詩』(정음사, 1948) 유고시집의「서문」에서 정지용의 의중은 확인된다. 이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하는「序詩」를 중심으로 빈도수 높게 사용된 ‘하늘, 바람, 별, 길, 밤’이라는 시어의 틈새 좁히기를 비교문학적 일면에서의 검토작업은 유의미하기에『동주와 함께 걷는 길』의 시집 간행은 지혜로운 삶의 잠언이다. 모처럼 그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견주어 시 짓기도 그렇지만 브런치 스토리 작가이며 칼럼니스트로 음악 작곡, 보석 및 예술작품의 수집, 또 감정(鑑定)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삶의 여적은 묵언으로 응당 관망할 바다.
다소 문학 외적인 문제이나 오랜 날 평자와도 시를 통해 소중한 연을 맺은 한국의 상징적 블로거 ‘꽃순이 배선희 시인’과의 조우도 그렇지만, 그 자신이 세계 180여 개국을 여행하며 희귀 보석을 수집하고 세계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스케치한 체험은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역동성이다. 따라서 ‘영원한 청년!’ 제2 시집『별 헤는 밤, 동주를 노래하다』간행 이후의 제3 시집에서도 밝혔듯 낮은 산자락의 들꽃에도 따뜻한 시선을 주는 ‘별과 길의 시인 윤동주’에 관한 지극한 관심사는 또 하나의 신선한 감동이다.
2. 후쿠오카 형무소에 피는 꽃의 내구성(耐久性)
한국 근현대시문학사에서 그만의 차별성을 자리매김한 윤동주 시인에 관한 따뜻한 정신기후는 유추될 것이나 시적 징표로서 고향의 개념은 고정된 공간의 개념에만 머물지 않는 정서적 양감이다. 모처럼 윤동주 시인의 보편적 시론은 ‘저항 시인론과 부끄러움의 미학’이다. 박성진 시인의 시집에서 ‘부끄러움’이란 시어가 빈도수 높게 확인되는 현상에 비춰 이것은 그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동력이며 모티프로 “저항적이고 지사적 색채”라는 시적 경향의 특이성은 가늠할 점이다. 특히 북간도 출생인 윤동주는 조국 상실로 분노에 찬 지사들이 모이고 교회와 학교가 새로 형성되던 당시 인구10만의 용정(龍井)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천성이 맑고 고운 그 자신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며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종종 들꽃을 가슴에 꽂거나 책갈피에 끼워 넣으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독백하는 다감한 품격의 실체로 연약한 것에도 세심한 관심은 하늘처럼 높고 깨끗한 품성의 일면은 유념할 바다.
각론하고 그 자신의 시편 중 “그대가 전해주는 순전한 마음/그리움 안고 별 같은 시를 쓴다(그리움의 별)”도 그렇거니와 ‘동주의 양심과 깊은 성찰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양심의 참회록’을 쓰는 또 그만의 시적 행위는 “순수한 영혼의 소리 들려오고/진실한 고백이 속삭이듯/내게 묵언으로 용서하는 시간이다(나의 참회록)”라는 진실한 고백이기에 이 시대의 독자에게 ‘순수한 영혼의 소리’로 들려오는 것은 지극히 극명한 현상이다. 한편 그 자신이 ‘동주는 영혼을 관조’하는 시적 해법도 “동주가 사랑한 모든 시들/오늘 우리 영혼의 울림이다(라이너 마리아 릴케)”에서의 보기나 연작시로 ‘한 편의 시가 눈물에 젖는「동주의 시편」’에 맞물린 생명의 원천이며 영원한 모성(母性)을 상징하는 ‘조국을 위한 뜨거운 사랑, 고뇌와 눈물을 시로 형상화’야말로 그 자신의 시편인「동주의 바다」의 보기처럼 합리적 해법인 그 존재감의 빛남이다.
무엇보다 생명의 원천이며 지고지선의 표징인 하늘에 시적 상상력을 결부시켜 확장하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층위로 읊어낸 윤동주에게 “하늘”은,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한 종교적 대상이다. 그의 하늘은 사랑과 용서, 그리고 공의의 표징이며 ‘바람에 스치우는(序詩) 별’이 자리한 현실적 처소로 비교적 윤동주의 시력에서 1941년은 그만의 시 문학을 총결산하는 시간대다. 차제에 “잃어버린 자유와 평화를 그려/별처럼 빛나는 시를/또박또박 모국어로 썼다(동주의 조국)”의 시편을 통해 느꺼운 일화의 감회랄까? 도시샤대학 문학부 재학 당시 어느 날 영문학과 교수 집의 회합에서 일본 친구의 말이 끝났을 때 “여러분은 목숨 바칠 조국이 있지만 내게는 그런 조국이 없다.”란 울분에 젖은 윤동주의 절규다. 특히 시편 끝에 천황의 소화(昭和)가 아닌 서기(西紀)로 기록하였듯 작은 것도 소홀하게 지나치지 않았다. 이처럼 박성진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편을 조응(照應)한 끝에「十字架」에 시적 이미지를 결부시킨「십자가 아래에서」의 대비는 ‘생명 허락한 창조주께 무릎 꿇고 그의 길 밝혀주기를 기도하는 경건함’에 잇닿은 시적 다양성의 확장이다.
차제에 ‘어둠 속에서도 윤동주의 영혼은 시를 쓰며 버티었기에 그의 시가 세상을 안겨주었듯’ “공식적인 사인은 결핵으로 기록되지만/치료한 의사의 증언이/생체실험의 가능성을 제기한다(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라는 엄연한 사실은 참담한 심정이다. 까닭에 깊은 밤 고뇌 끝에 깊은 사유를 거친 여백의 틈새 좁히기 또한 집념이 강한 박성진 시인의 정신작업의 이 같은 수행은 비장감이 묻어있다. 그렇다. 꽃다운 젊음의 윤동주는 수인번호 645로 복역 중에 옥사하였고 며칠 뒤 명동촌으로 날아온 전보는 ‘동주 사망, 시체 가져가라’였다. 모처럼 박성진 시인이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윤동주 삶의 족적을 서사구조의 측면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분할·통합하여 ‘출생→성장→사망’을 원근조망법으로 시편을 새롭게 형사(形似)한 점은 이채롭다.
까닭에 시적 틈새를 좁혀가며 연보(年譜) 격인 “안타깝게도 1945년 2월 16일에/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으로/27세 그 열혈(熱血)의 나이에 옥사한다(시인의 탄생)”에서 일체 긴장감의 끈을 늦출 수 없다. 한편 대조적으로 그의 시편 중 호흡이 긴 산문시인 “뜨거운 눈물은 흐르고 다시 한번 청명한 하늘 위 별을 본다. 변함없이 수신을 보내는 별들 너희들은 내 운명을 알고 있는가.(언덕 위의 세찬 바람아)”의 일례나 “삼천만 군중이 일장기 밟는 소리/내 살과 뼈 흙 속에 묻어 풀 한 포기로 태어나/나답게 윤동주 손을 잡으리라(갈대밭 숲속의 몽환)”에서 절제된 감정에 가슴 뭉클함은 소홀하게 지나치거나 끝내 가볍게 털어낼 수 없다. 특히 혹독한 일제강점기 ‘살아있는 눈빛 그립다’라는 그 자신이 ‘선한 눈빛’에 맞물린 “바람도 구름도 별 하나까지/나의 것들을 빼앗아 간 일장기야(태양)”는 비통한 수인(囚人)의 정한이다.
3. ‘달빛 속에 고독한 나(個我)’의 해법
모름지기 윤동주 시인은 지극히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자못 외국 시인으로 구수하면서도 신경질적인 프랑시스 잠과 장 꼭도, 그리고 조국애에 불타는 나이드의 시를 즐겨 읽으며 때로는 시흥에 취해 무릎을 치기도 하였다. 비교적 그 자신은 어질고 곧은 성품의 소유자로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투르게네프,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등에 관심을 지녔고, 국내 시인으로 정지용, 한용운, 백석을 따랐다. 까닭에 참담한 스탈린의 압제하에서 끝내 당파성을 뛰어넘지 못한 채 굴복하고 “내 조국, 러시아에 돌아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라고 절규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비극적 생애도 새삼 헤아려 볼 일이다.
또 한편 “후쿠오카 형무소는/계절의 봄도 가두었다”라는 <형무소에 핀 꽃>은 물론‘고문하는 자와 순순한 시인 수감자 시가 화해와 용서의 고리가 되었을까?’라는 물음 앞에서 그 자신이 이정명의 소설「별을 스치는 바람」을 접한 뒤’ “지독한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은 까막눈/조선어로 된 책은 모조리 불살랐다(이정명 소설「별을 스치는 바람」)”에서의 이 같은 상황 심리는 암울하다. 그렇다. 그 자신이 낮은 음조로 읊조린 끝에 “너의 청춘 정녕 시들지 않기에//오, 별은 꾸짖어도 빛나리니/매를 맞는 팽이 더욱 잘 도는 이법(理法)(봄 그리고 봄)”은 신선한 충격의 일깨움이다.
각론하고 안타깝게도 그의 생애는 불과 ‘27년 1개월 16일’ 밖에 안 되지만, 아명인 해환(海煥)과 달리 암울한 삶을 마감했다. 한편 ‘키에르 케고르의 십자가 끌어안고 큰 별이 지던 날 인왕산도 울었다’라는 박성진 시인의 각별한 시적 교감(交感)처럼 ‘영원한 문학청년 윤동주’가 주권 없는 나라에서 시심을 키우며 불꽃처럼 살다간 짧은 생애 중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윤동주의 <자화상>)”라는 ‘청운동 하숙생 시절’을 헤아리면 멀리 보이는 인왕산의 풍경은 못내 아득해 몽환적이다. 여기서 단조로운 호흡인 2연 6행으로 시 의미를 응축한 “키에르 케고르의 십자가 끌어안고/큰 별 지던 날 인왕산은 서럽게 통곡했다(인왕산 별)”에서 수사적 기법의 시적 묘취는 가시적이다. 특히 박성진 시인의 시편「윤동주 옥사 80주기에 맞추어」나 또 그와의 연(緣)이 맞물린 평자의 ‘윤동주 헌정 시’「밤하늘 성좌와 맑은 영혼의 느낌-윤동주 시인의 본향과 겨레의 초상(肖像)」은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문학을 모사하고 재현한 결과물로 개아적(個我的) 차별성이 각별하다.
결론적으로 박성진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시격(詩格)에 각별하게 초점을 맞춰 연대기술적 측면에서 시적 상상력의 대처는 한층 더 이채롭다. 모쪼록 극단주의로 치닫는 삶의 일상에서‘세상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뿐인 연유’로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라는 존귀한 별의 시인에 관한 지고지순한 민족정신을 ‘바람의 초상(肖像)’으로 켜켜이 지켜낸 후학으로서의 창조행위는 끝내 교시적(敎示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