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정죄의 의미
로마서 8:1-2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말만 보면서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씀하는 "정죄"란 헬라어로 '카타크리마'(κατάκριμα)라고 하는데, 이는 "저주의 판결"을 뜻하는 말로써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판사가 판결할 때에 어떠한 죄로 인하여 사형수임을 구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그가 어떤 죄로 인하여 결국은 죽어야 한다는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8장1절의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저주의 최종 판결인 영원한 죽음을 구형받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즉 심판에서 면죄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에서 면죄되었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비난과 최종판결인 사형을 언도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심판 대신에 생명을 얻는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지, 살아가면서 어떠한 비난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말을 단순히 '비난'이나 '판단'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갖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그를 비난하거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잘못을 지적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오해합니다. '정죄'라는 말이 '비난'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죄를 지었을 때에 권면해주면 "당신이 지금 나에게 정죄하는 것이냐"라며 따지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성경에서 정죄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나를 정죄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너무 몰라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해석을 할 수 없으므로 자기 나름대로 (세상적인 지식, 국어의 뜻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러한 어리석은 언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오해는 잘못 가르쳐온 선생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르침이나 우리 스스로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우리가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죄'와 '심판'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정죄'는 인간쪽에서 선택한 결과로써 참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어둠을 선택함으로 받게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심판'은 심판주이신 주님께서 인간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와서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죄인이었던 우리를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해주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잡힌 그 여인도 예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다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하기에 바쁩니다. 마귀는 우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우리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라며 참소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는 것이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함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용서를 거부하기 때문에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그들의 죄를 용서받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용서받기를 거부하므로 영원한 형벌을 구형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날에 우리의 선택에 따라 어둠을 선택하여 정죄함 속에 살아가던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정죄받은대로 영원한 사형에 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를 갖고 태어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도 아닌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말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그분과 같이 살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사람들 앞에 떳떳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겉으로는 굽이 갈라진 돼지처럼 경건의 모양을 갖추어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서 열심히 봉사도 하지만, 막상 생활 속에서는 가족이나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섬겨주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 자신을 섬겨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자신을 바라보며 사도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며 우울해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러한 탄식에 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며 로마서 8장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원죄를 갖고 태어났지만,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흐트러뜨리기 위하여 넣어주는 부정적인 생각과 비난의 음성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단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에 더이상 마귀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정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마귀가 우리를 지옥에 끌고가기 위해 비난할 수 없다는 말이지, 다른 이들이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며 충고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2-13)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을 비판하고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사랑의 주님은 언제나 용서해주시며 은혜로 모든 것을 덮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무조건 용서해주시며 동행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와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거나 정죄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언행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성경말씀에 입각하여 하는 것이면 의롭다고 인정받지만, 성경말씀과 반대될 경우에는 당연히 정죄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의 어떠한 의로운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거듭난 의인이라면 성경말씀과 반대되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부인하며 성경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만 성경과 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며 아직 젖먹는 어린아이 수준이므로 자꾸만 젖을 달라고 보채며 자기의 요구만 들어달라고 "응애 응애"하며 울거나 땅바닥에 누워서 발버둥치며 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성경은 그렇지만..."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의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정죄와 성령께서 주시는 죄책감을 우리는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향해서 던지는 정죄는 우리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하며 어둠 속에서 우울하고 불쾌한 감정을 갖고 후회를 하지만 결코 회개하지 못하게 합니다. 반면에 성령께서 주시는 죄책감은 우리 스스로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마음을 동반시키며 후회가 아닌 회개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하여 어둡고 우울하고 불쾌했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사라지므로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지 않고 후회만 하면서 마귀가 속삭이는 정죄에 빠져서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의 죄를 곱씹으며 낮은 자존감을 갖고 움츠려있지 말고, 회개하여 죄씻음을 받은 자로써 가슴을 활짝 펴고 밝게 빛나는 얼굴로 빛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삶의 적용]
*아직까지 죄책감속에 시달리는 무엇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 회개하지 않는가?(회개하여 죄책감에서 해방되자)
회개한 뒤에도 마귀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들게 하여 우리를 정죄한다.
결국 우리로 하여금 평안함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귀의 전략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자.
회개했으면 다시는 그 죄악을 반복하지 말자.
만약 회개한 뒤에 또다시 그 죄악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후회하여 입으로만 뉘우친 것이다.
그런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므로 응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우리의 기도도 상달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였는가?
나는 진정으로 회개한 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가?
회개하지도 않고, 죄책감도 없이 살고있지는 않는가?
내가 "양심에 화인맞은 자"가 아님을 감사드리자.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며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매사에 회개를 잘 하는가? 아니면, 핑계와 변명거리가 많은가?
끊임없는 변명을 하면서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요한1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매 순간마다 주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자.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죄받아야 마땅한 죄인인 저를 선택하시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셔서 제가 회개할 때에 용서하시며 치유하시며 회복시켜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해주시는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지극히 큰 사랑의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의 무리에 들지 않고, 주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항상 죄에 민감하여 수시로 회개할 수 있는 심령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과거에는 제가 죄책감을 갖고 살면서도 후회는 하지만 회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귀에게 넘어가서 계속해서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그 모든 짐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기를 원하오니 그 동안 시달려온 저의 죄로 인한 죄책감의 근원들을 모두 생각나게 하셔서 주님 앞에 모두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누리며 주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됨을 통하여 저의 삶이 회복됨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지금도 세상에서는 기근과 지진과 여러 사고들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저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소망이 있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천국의 소망이 없이 심판이라는 미래를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할 때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들을 위해 제가 세월을 아끼며 기도와 말씀 묵상과 전도에 힘쓰기를 원하오니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셔서 오늘도 제 힘이 닿는대로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을 이 땅위에서 이룰 수 있도록 동행하여 주옵소서.
저를 정죄함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