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즘 / 김정호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타향살이 시름에 젖다보면 향수병처럼 그리움이 스며든다.
지난주에 고향장터로 차를 달렸다. 명물 “돔베기”를 사오려고 갔다. 얼마 전에 돔베기가 중금속이 많다고 TV에 방영되고 주춤하였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먹는다고 죽을 일은 아니라며 다시 찾는 이가 그렇게 줄지는 않았다.
가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니 한번 얻은 명성은 쉽게 잃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고장에는 제사에는 그래도 “돔베기” 산적이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이 확실하다.
시장을 둘러보다 보니 “말 나물”이 눈에 뜨인다. 옛 연인을 만난 듯이 반갑고 기쁘다. 말 나물은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생소할거다. 경북 내륙지방에서 겨울에 즐겨 먹은 저수지에서 나는 일종의 수초(水草)다.
난 어릴 때 말나물을 채취하러 어른들을 따라다닌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연못에 대나무 갈퀴로 만든 것을 던져서 가라앉은 후에 서서히 당기면 수초가 갈퀴에 걸려서 나왔다. 갈퀴의 양쪽에 줄을 길게 메어서 서로 저수지 둑의 건너편에서 당기고 한쪽에서 풀어주면 더욱 쉽게 말 나물을 채취 할 수 있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말나물은 향기가 진하며 무채를 설어서 참기름과 깨소금 간장 된장 등을 적당히 넣고 엄마가 무쳐 주면 일등 요리가 된다. 말나물은 콩나물과 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쌈으로도 먹는다. 말나물은 그냥 말이라 한다.
말나물의 정확한 이름은 말즘(Potamogeton crspus)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말이라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말은 다른 종류이다. 말은 우리나라에 13여 종류가 있는 가래속에 속하며 이들 중 새우가래와 매우 유사한 종이지만 가장 크게 자라는 종류이고 특히 낮은 수온과 적은 빛 조건에서도 2m정도까지 자란다. 말 나물은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고 해야 제 맛이 난다. 겨울이 따뜻하면 말 나물은 인기가 없다. 기생충이 생길 거라면서 잘 먹지 않는다. 허지만 올해처럼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겨울에는 찾는 이가 많아지며 말 나물의 질도 좋다. 말 나물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며 변비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말 나물은 시어머니 모르게 먹을 수가 없다. 어디에 붙어있어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먹고 나서 설거지를 깨끗이 해도 푸른 작은 잎사귀가 어딘가 붙어있기 마련이다.
나의 고향은 옛날에 역마(驛馬)가있었다. 사통오달로 교통의 요충지인 영천은 말[馬]로 유명해졌다. 오일장 규모도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다. 대 좋고 말 좋은 곳이 영천장이다. 우스개로 영천 “대말거시기”라는 말이 대 좋고 말 좋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목장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새통이다. 교통 경찰관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도 도로를 점령한 장사꾼들은 모른 체한다. 겨우 시장 안에 들어서니 사람 천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역시 명절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을 보는 아내의 손길이 바쁘다. 큰집인 우리 집에 형제들이 다 모이니 맏며느리는 신경이 쓰인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말 나물에 마음이 다 가있다. 엄마와 아내의 솜씨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수년간 전수한 나물 무치는 방법을 아내는 거의 알고 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탁에 앉아서 말 나물을 기다렸다. 아내가 바쁘게 손을 놀려서 말 나물을 무쳐 밥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엄마가 만든 것과는 맛이 다르다. 향긋한 향기는 그대로인데 입안에 나물은 맛이 다르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엄마와 고향이 너무 그리운 탓이겠지.
내년 겨울에도 눈이 펑펑 내리고 저수지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서 맛있는 말즘을 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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