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혹을 이기는 비결
병원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약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를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의사의 약점, 병원의 문제점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의사를 어렵게 만들고, 골탕 먹이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병원에 자주 다니다 보면 병원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없고 문제점만 머릿속에 남아서 피해 의식을 가지고 긴장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법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찰서, 법원, 변호사, 판검사, 형사법 같은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관도 오히려 피하려고 합니다.
신자 중에도 늘 유혹에 빠지고, 늘 유혹 중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유혹에 끝나면 저 유혹에, 저 유혹이 끝나면 이 유혹에 듭니다. 일생 동안 항상 유혹 중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신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혹이 안 될 만한 것도 만들어서 유혹에 빠지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 말씀을 들어 봅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약해서, 내 욕심 때문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오해하고 섭섭해 하고 낙심을 잘하는 사람들은 늘 유혹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꼭 밤에 마귀가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약해서 헛것을 보고 자꾸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늘 우는 얼굴, 슬픈 모습, 근심에 찬 말 등 이런 것이 몸에 완전히 배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늘 근심과 환난을 줘서가 아니라, 우리가 유혹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을 유혹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도 안 좋아하고, 감사할 것도 감사하지 않고, 기뻐할 것도 기뻐하지 않고, 걱정이 없어도 공연히 걱정스럽게 꾸미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돌 밑에 있는 벌레는 자기를 누르고 있던 돌을 들어내도 밝은 곳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습하고 어둡고 더러운, 병균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일평생 유혹을 조심하고, 멀리하고, 괴롭고,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기를 힘쓰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유혹에 빠지는 것은 주님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유혹을 받는 것이 약이 되고, 은총이 되며, 믿음을 자라게 한다면 예수님도 “하느님,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유혹을 받게 하시고 잘 때 유혹, 깰 때 유혹을 받게 하소서.”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유혹이 좋은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유혹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유혹은 있지만 그 유혹이 늘 오지는 않습니다. 하느님도 유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유혹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유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특정한 때 한두 번 당하는 것이지 하느님이 날마다 우리를 유혹에 몰아넣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든 유혹을 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이 유혹하시는 것은 정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가, 진정 하느님을 믿는가를 알기 위함입니다.(신명 13,3 참조) 우리 마음에 하느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진실로 삶 속에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사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비결을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 앞에 늘 부족한 마음으로 살면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은총을 받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우리의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느님을 가까이할 때 무슨 고백을 했습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이사 6,5)라고 했습니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하느님과 멀어진 증거입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하느님과 멀리 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나는 요즘 믿음 생활 잘한다, 충성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느님과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 거룩하신 분, 영원하신 분을 가까이 합니까?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그 앞에 나를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앞에 나는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앞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저는 부족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저는 못합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세요. 은총을 주세요. 힘을 주세요.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느님이 하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한 것을 뚜렷하게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힘을 주고, 기도의 줄을 붙잡게 하고, 주님의 성전을 가까이하게 합니다.
둘째,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는 환난을 막는 방패요, 모든 불행을 막아 주는 바람막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어떤 감사를 해야 합니까? 환난과 유혹을 받지 않고 잘 이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루카복음 17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에게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중 아홉 명은 치유를 받아 집으로 바로 갔고, 이방인 한 명만이 돌아와서 주님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열 명이 치유를 받았지만 은총과 위로, 용서는 단 한 명만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 생활이 늘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에 늘 매여 있어 감사하지 못하고 삽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전하고, 부족함 없고, 눈에 차야 감사하려고 하니 일생 동안 한 번도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으며, 어찌 우리가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모든 법에도 약점이 있고 흠이 났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갈라티아 신자들은 감사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으니, 멸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며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나의 죄를 벗게 하신 이 은총만을 생각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