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수업이 비어 있는 한가한 오후 시간입니다.
그동안 건강하신지요?
이렇게 관습적인 안부인사를 드리려니
어쩐지 정 시인이 안녕하지 못한 듯한 예감이 듭니다.
지난 번 월례회 때 전화를 드려도 불통이고 해서
혹시 전화번호를 바꾸었나 싶어 박두규 회장님께 물어보니
박 시인도 전화를 넣었는데 받지 않는다고 하네요.
언제 집으로 전화를 한 번 해야지
아니면, 정형에게 편지라도 한 통 띄워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오늘 카페에 들어와 공개적인 연애편지를 쓰고 있네요.
지난 오월이었을까요?
월례회를 마치고 뒤풀이도 거의 끝나가는 자리에서
언제 광양에 쳐들어가 정 시인을 불러내어
물 좋은 곳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박두규 시인이랑 박철영 시인이랑
농담반 진담반 그런 말을 주고 받았더랬습니다.
정말 그런 날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엔
정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었던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 3차까지 이어진 뒤풀이를 마치고
새벽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언뜻 언뜻 정시인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오십줄을 막 넘어설 무렵 한 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 힘든 감정은 아마도 상실감 같은 것이겠지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런 힘든 순간들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하니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존경심도 생겼습니다.
언젠가 시로 형상화하고 싶은 그림이기도 한데
산에서 서너 시간도 넘게 야생화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몸이 불편하신 듯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날이 좀 더워서 그랬는지 할머니께서 집 앞 계단을 내려와
바람을 쐬고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 얼굴에 가득한 주름과 웃음이
산에서 마주친 어떤 예쁜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제 가슴에 꽂히는 가슴 철렁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시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의 가슴 철렁한 생생한 경험이
저의 둔한 글재주로 인해 자칫 관념적인 경노사상쯤으로
변질 될까 싶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정형,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하나의 위대한 그림이구나.
작품이구나. 아름다움이구나. 아니, 아직은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는 말로 못할 것 같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마음이 참 차분합니다.
그 차분한 마음에는 슬픔의 감정도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기쁘거나 가슴 벅찬 순간보다는
어쩐지 이런 그늘이 있는 시간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조차 애틋해집니다.
정형, 정말 언제 광양으로 한 번 쳐들어갈까요?
한 달에 한 번 먹는 술이지만 꽤 늘어서 대작을 해드릴만 합니다.
그제 월례회를 마치고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에 들어오는 바람에
아내가 금주령을 내린 상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제 퇴근하고 아내가 김치 담는데 잔심부름도 많이 해주어
한 번은 더 사고를 칠만합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두 번 시작 종과 끝종이 울렸습니다.
사뭇 깊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서툴게밖에는 표현하지 못합니다.
다음 월례회 때는 꼭 얼굴을 뵈었으면 합니다.
서울과 광주 등지에 계시는 회원들도 다들 그립니다.
두 달에 한 번 꼴은 서로 만나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는 않아서요.
첫댓글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그러하겠지요. 요즈음 회사 비상이 걸려 정신없더군요. 오히려 미안하다며 안부를 전하더군요.
오늘 정안면 시인께서 개인 메일로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삶과 문학에 대한 깊은 고뇌의 무게가 느껴지는 편지였습니다. 언제 날을 잡아 소주 한 잔 하기로 했습니다. 순천작가회의 회원님들이 그립다고 하네요.
저는 시인중 정씨는 무조건 좋아하는데 정안면 선생님은 시까지 너무 좋아서 예전에 여천에서 한번 뵈었지만 지금도 좋은 기억이 있네요. 저도 술 좋아 하는데요....(길문학회 회장 : 정성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