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박규환
일년에 봄이 두 번쯤 있어 주거나 일년 내내 봄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나는 자주 하곤 한다. 뭐 봄이라는 계절을 내가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오래 병상에 시달리는 아내에게 봄을 빙자한 위로의 말로 아픔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위로의 말이 실제로 육체의 아픔을 덜어 주는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에 희망을 줌으로써 잠시나마 그렇게도 열망하는 삶에의 기대를 잃지 않으리란 생각에서다.
70여성상인 생애의 반이상을 병고에 시달려왔고 완전히 기동불능의 상태에서 병상에 누운채 이래 저래 10수년의 세월을 보낸 경험이 있는 나는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앓고 누웠던 처음 몇해 동안은 일친척을 비롯해서 친구며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문병을 오곤 했다. 문병객이 찾아왔을 때 뜰에 내려서 그들을 맞이할 수 없고 그들과 같이 담소할 수 없으니 나는 누웠고 그들은 머리맡에 앉아서 마치 임종이나 지키는 자리처럼 숙연한 분위기가 내겐 그렇게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내게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을 하기도 했고 뵤방(妙方) 한 두가지쯤 들려주는 것이 예사였지만 그냥 앉아있기 힘들어서 해보는 잉야기같이 들리곤 했다.
그런데 문병객들의 더러는 봄이 되면 좋아질 것이라는 예언과 위로의 말을 내게 들려주곤 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니 어떤 약보다도 자연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봄이 오면 좋아지리라”는 말에 마음이 끌리곤 했다. 그래 한겨울 두터운 이불을 덮고, 덧문 까지 닫은채 앓고 누워 있는 주제에 어드메쯤 오고 있는지 가늠되지 않는 봄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나의 남아있는 전 삶의 뜻이었다.
그러나 봄이 열 번도 넘어 왔다가 가고 뜰아래 목련이며 철쭉이 열 번을 피고 또 지곤 했지만 나는 병상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봄이 올 때마다 이 봄이 어쩌면 내게 줄지도 모를 건강에다 동면한 개구리가 봄되어 튀어나오듯 나도 10년 병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은 희미하지만 찬란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병상에서 빠져나온건 봄이 아니라 여름이었다. 아니 여름의 짙은 녹음은 봄에 눈튼 새싹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니 결국 봄의 소생력이 여름에 결실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마루에 따사로이 비쳐드는 봄 햇살을 받으며 방문턱을 넘어 기어나와 앉았기도 하고 건강했을 때 담밑에 심어 두었던 옥매화의 이르게 피는 꽃을 깊숙이 꺼진 눈으로 바라다 볼 수 있을 정도의 삶을 유지했을 뿐인데 초여름엔 지팡이를 짚고 어렵사리 뜰아래를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봄의 저력이 여름들어 열매맺은 것이나 아니었을까! 이런걸 일러 신의 섭리라 하는건지 모르지만 그렇게해서 자유롭지도 건강하지도 못하지만 아직도 나는 여명(餘命)을 이어가고는 있다.
그런 체험을 갖은 나인데 하루아침에 아내가 병상에 누운지 두 번째 봄을 맞고 보냈다. 40년 병부(病夫)를 보살펴서 가냘픈 오늘의 명맥이나마 유지시켜 준, 내겐 고마움 아내인데 지병인 고혈압이며 당뇨로 어느날 자고 난 이른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때 본인은 물론이려니와 나 또한 본인 못지않게 당황했었다.
소위 중풍의 일종이어서 그에 따른 양한방(洋漢方)의 좋다는 치료 방법은 거의 거친 셈인데 아내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정밀한 사진 촬영에 의하면 일과성(一過性) 혈전증(血栓症)에 지나지 않다는 진단인데 말과는 달리 회복할 기미는 아직은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아내는 나의 이러한 기록을 볼 기회는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 환자에 대해서 삼가야 될 말이나 생각을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 마치 전염병 환자처럼 아내를 격리하는 비정(非情)을 느끼게 한다.
아내와 나는 나이의 차이가 적지않은 9년의 세월이고보니 내가 먼저 죽어야 될 일이고 또 젊어서부터 병고에 시달려만 온ㄴ 나야말로 아내가 너무 젊은 나이에 망부(亡夫)의 변을 당할게 걱정이었는데 이제 나의 나이도 70도 몇해를 넘기고 아내 또한 회갑을 지난지 여러해이고 보니 망년의 세월이 그렇게 다를 것도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처음은 아내의 병이 그렇게 오래 끌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중풍의 일종이겠지만 증상이 그렇게 심한 것같지 않았고 또 의사들도 결과에 대해서 낙관하는 편이어서 그 방면에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선 의사의 낙관이 전염되어 의약과 세월이 주효하리란 기대를 잃지 않은 셈이다.
아내가 앓아 누운 것이 겨울이어서 나는 아내를 위로할 때 언제나 봄이 오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남녀가 유별한 유가의 전통 속에서 자라온 나는 외견상 아내에게 다정함이나 친절같은걸 표시할 줄 모르는 성격이 되어 있어서 그 말도 아마 상냥한 표정으로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봄’을 미끼로 아내를 위로코자함은 지난날 내가 앓고 누웠을때 그렇게도 휘황했던 기대를 이젠 아내에게 심어주고자하는 나의 노력이오 처방인 셈이다. 따스한 햇볕에 대지를 녹이고 새싹이 돋으며 개나리 진달래가 피는 소생의 봄이 오면 사람도 또한 자연의 일부인데 어찌 그대로일 수가 있겠느냐는게 위로의 요지였다. 마치 봄이면 아무도 죽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설득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해 봄은 그 간절한 기대와 희망을 배반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이면 거의 흉내는 내본 셈인데 결국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다.
그건 희망과 기대가 차츰 희박해졌다는 반증이고 보면 나의 차지는 맥빠진 허탈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은 싫다. 그러나 싫대서 피할 수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그건 죽고사는게 사람의 뜻이 아니란 것 아니겠는가. 자살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그도 죽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죽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야된다는 것이 거룩한 명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의 경험으로는 실제로 죽는다는걸 그렇게 의식한 적이 없다. 죽음의 두려움을 몰랐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냥 살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체념의 상태에서 긴 세월을 병상에 누웠었을 뿐이다. 죽기를 기다린건 아니지마는 죽어질 시간을 망연히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나서 구차한 삶이지만 고희(古稀)를 넘기고도 아직 여명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그 점에서 나와 다르다. 삶에 대한 집념이 지나치게 강한 것 같다. 삶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어려운 일이기야 하지만) 삶같은건 의식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고 ‘마음을 비웠을 때’ 병은 저도 모르게 기적처럼 물러나는 것으로 생가되는데 아내는 그게 아니다. 아내는 40년 천주교인이지만, 그리고 조석으로 기도는 드리지만 속욕(俗慾)이나 기복(祈福)의 대상일 뿐임을 나는 안다.
그의 신심(信心)을 욕되게 하자는게 아닌, 나 또한 그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하는 속물(俗物)이기에 이런 마음의 속삭임을 적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 일동일전이 삶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일반적인 동작이야 반드시 삶을 의식하고서의 일이 아님이 보통인데 아내는 무릇 모든 행동이 삶의 의식에서 이루어진다. 그 것이 아내가 병상에서 빠져나오자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될만치 보는 눈이 아프도록 처절하다.
어찌됐건 병상에서 맞는 첫봄에의 기대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로 끝나고 말았지만 다시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고나야 봄이 올터인데 그 영원처럼 긴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될걸 생각하면 아득한 일이었다. 물론 병이란 봄에만 낫는다는 법은 없겠지만 겨울 속에 웅크린 삶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오래 기다리던 봄이 다시 왔다 갔지만 아내에게는 변동이 없다. 이제 봄을 기다자는 이야기를 다시는 더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원래 개성이 강한, 자기 판단을 굽힐줄 모르는 이른바 고집불통이라 이를만해서 나같은 우유부단하고 언제나 용기를 결한 남편에겐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은 배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가 약해져서 도움을 필요로 할 형편일땐 일단 그런 삶의 태도는 달라져야 할터인데 아내는 남의 동정을 사는데 많은 결함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이 잘못은 아닐 듯하다.
하룻밤 사이에 낫는 병이 아닌데 날마다 초조하고 날마다 목마른 기다림과 그 기다림이 채워지지 않을땐 짜증밖에 올 것이 없다.
이제 나는 아내에게 ‘봄이 오기를 기다리자’는 간곡한 위로를 입밖에 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요즈음은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뜻이 아니고 다 하늘의 뜻이겠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기다려야 될 뿐이라고, 또 우리가 건강을 되찾아서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느냐, 그게 일년일는지 5년일는지 앞날이 그다지 멀지 않은데 한 해를 더 살면 뭣할 것이며 또 한 해를 덜 산대서 얼마나 아쉬울 일이 있겠느냐고. 지금 우리가 건강을 되찾는대야 이미 7순을 넘긴 나는 물론 7순을 몇 해 앞둔 아내가 혹시나 되찾을 건강이 젊은날 우리가 가졌던 건강과 같은 것인줄 환상하고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늙은 사람의 기쁨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병들지 않고 건강해도 이미 사양의 인생에겐 우리가 환상하는 젊은 날의 영광은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아내에게가 아니고 차라리 내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봄을 기다리던 그 화려했던 꿈은 무참하게 후퇴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축소하는 방향에 역점을 두는 위로일 수밖에 없게 되고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한 체념이거나 달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하는 그 자체가 슬픔이지만 이미 봄에의 기대가 헛된 마당에 어쨌으면 하겠는가.
누군가가 무엇인가의 욕망을 호소해왔을 때 그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때의 안타까운 심정은 쉽사리는 잊을 수 없는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라면 육친이 생사의 기로에서 바라는 절실한 생(生)에의 호소를 24시간 듣고도 못들은 체하는 고통도 전생의 업보치곤 가혹한 편일 듯 싶다.
설혹 아내가 건강한 노인이라치더라도 그에게 남은 봄이 몇 번일 것이며 그나마 아내의 꿈 속에 잠재하는 젊은날의 봄일 순 이제 없는데 병상의 환자는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만나면 그대로 20대 30대의 봄이 되돌아오는걸로 착각하는 그 것이 진짜 병일 수도 있고 ,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가련한 꿈이 아내를 병상에서 놓아주지 않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이로 보더라도 나는 아내보다 월등히 많고 병력(病歷)으로도 아내는 나를 따르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아내보다는 훨씬 먼저 죽는게 순서라고 생각해왔고 또 그러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최근의 나는 그 생각을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하게끔 되어가고 있다. 그건 내가 오래 살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어느모로 보나 내가 먼저 죽는게 순리인데 그 순리에 따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내의 유달리 까다로운 성품을 아는 나로선 나 아닌 누구에게도 아내를 보살필 괴로움을 떠넘기고 싶지않은 내 나름의 충정에서이다. 내가 죽을 땐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단언할순 없는 일이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긴 하다.
앞으로 나는 또 봄을 기다려야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는 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런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첫댓글 박규환 선생님은 제6회(1993. 3) '현대수필문학대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박경주 선생님의 엄친이기도 하시구요. 행간을 띄운 것은 읽는이의 시력을 배려해서 입니다. 활자 크기도 키웠습니다.
김경애 선생님 덕분에 제 아버지께서 출세를 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이 글은 표제작이지만, 대표작은 되지 못합니다만, 가슴 뭉클한 아내의 병상 이야기입니다..부모님 생각이 나는 아침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봄을 기다릴 수 없다는 뜻 같습니다. 긴 문장이지만 읽기가 편하고 글 전체가 가슴이 아립니다. 박규환 선생님의 애틋한 글, 잘 읽었습니다.
이라다는 박규환 선생님의 슬픈 글만 올라올 것 같네요. <봉변기> 가은 유머가 들어 있는 글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램만에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심주희님, 한준수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수필들은 해학과 풍자가 그 맛을 더합니다만,,이 글은 슬픈 이야기입니다..천하무봉의 만연체지만, 문장을 잘 끌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아버지에 대한 칭찬이 바로 저의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해학 뒤에 슬픔이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준빠님 조금만 기다리셔요.
인생의 길에서 만년의 정서가 고스란이 배어 있는 글이군요 --감동적입니다 -고맙게 잘 읽고 갑니다.
김형구 선생님, 고맙습니다.
글이 좀 긴 듯하지만 차분히 읽다보면 뚝배기 맛이 솔~솔~ 나는 게 진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