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저기 있다/ 조봉경
온난화 때문인가. 봄꽃이 피는 오뉴월에도 이른 더위가 서둘러 찾아오곤 한다. 돌아가신 엄마의 생일날 아버지와 약천사를 오른다. 팔순을 훌쩍 넘은 아버지에게 가파른 오르막은 꽤 버거워 보인다. 관세음보살, 아버지는 가다 서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숨을 몰아쉰다. 노인의 이마에 그새 땀이 흥건하다.
집 뒤로 언덕 하나를 올랐을 뿐인데 멀리 두송반도와 감천항까지 눈아래가 훤하다. 그러게, 이곳 다대포는 쨍하고 맑은 날이면 일본 쓰시마까지 넘볼 수 있는 땅이었다.
약천사 주지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듣는다. 지대는 높다지만 절 주변으로 빌라와 살림집들이 인접해 있는 암자다. 축원문을 읽는 독송 소리에 민원이 들어올 법도 한데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목탁 소리를 따라 가는 스님의 목청이 카랑카랑 맑고 크다.
아버지는 여전히 부처님 앞에 합장 중이다. 법당 바닥에 이마를 대고 나무 관세음보살,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오래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읊조리기만 한다. 바다 한 가운데서 숨을 거둔 집사람... 하마 그 일도 십수 년이 흘렀다.
제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불상을 본다. 부처의 좌우로 떡과 과일이 수북하다. 불을 밝힌 촛대 옆에 종이로 만든 연꽃들이 한 무더기 피어있다.
묘법연화경...엄마가 바다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던 그날에도 묘법연화경이 펄럭이고 있었다. 해녀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선 뱃머리에 조악하게 걸려있는 깃발 하나. 흰 연꽃 위에 묘법연화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세상이 온통 진흙 바닥일지라도 한 송이 연꽃은 기어코 피어나리라. 고단한 중생들을 향해 꽃을 들어 보인 석가모니는 그렇게 자신이 시바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지.
엄마를 추억하는 일은 내게 버겁다. 당신의 여린 몸과 마음에 물질을 업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더욱 아찔하다. 엄마는 다대포 연안의 바다 한가운데서 물질을 하는 중에 심장마비로 숨이 멈췄다. 엄마는 18살에 물질을 배워서 죽은 때까지 해녀로 살았다. 엄마가 가라앉은 그 자리에 하얀 스티로폼 테왁이 부처의 연꽃처럼 둥둥 떠 있었다.
어둑해진 어시장 사이로 쉴 새 없이 물차들이 달렸다. 차바퀴가 구를 때 횟집 앞 좌판에 쪼그려 앉은 엄마의 얼굴 위로 구정물이 튀었다. 걸걸한 입심으로 수단이 좋은 해녀들은 이미 다 팔고 파장한 후다. 추위에 새파랗게 질린 엄마의 얼굴, 여태 팔지 못한 해산물들이 엄마의 망사리 속에서 졸린 눈을 끔뻑거렸다. 찬밥과 된장... 저런 게 도시락이 될 수 있을까. 엄마는 종일 밥과 된장만 먹었다. 시장 입구에서 양동이를 들고 서 있는 사춘기의 나는 입이 삐죽 한발이나 더 나와 있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엄마의 모습이 속상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엄마와 마주 앉아 성게를 깐다. 단도를 쥔 내가 성게 아가리를 벌리면 엄마가 그걸 받아 찻숟가락으로 성게알을 훑어낸다. 숙련되지 않은 채로 성게를 깠다가는 속살을 망가뜨리기에 십상이다.
엄마가 성게를 씻는다. 분비물을 걷어내고 성게 똥을 핀셋으로 뽑아 낸다. 뽀얀 살굿빛 속살만 남은 성게알은 일본으로 수출한다. 일본 사람들이 다대포 앞바다 성게알을 환장하고 먹는다고 엄마는 빙그레 웃었다.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엄마는 고무 물옷을 입고 있었다. 낚시꾼들의 신고를 받고 시신을 찾으러 나갔을 때 엄마는 검은 물 위에 작은 섬처럼 누워 있었다. 오월의 하늘 꼭대기에선 불덩이 같은 태양이 이글거렸고, 엄마를 삼킨 바다에는 거짓말처럼 바람 한 점 없었다.
물때가 어긋났던가, 해녀를 실어 나르던 고씨 할아버지는 넋이 나간 얼굴로 갑판에 널브러져 엄마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해경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불러 엄마의 신원을 확인했다. 시신을 덮은 포를 들어 눈을 감은 엄마를 보자 아버지는 하얗게 질려서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대포 선창으로 요란하게 구급차가 들어왔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한데 실어서 가족들이 모두 병원으로 몰러갔다. 엄마와 함께 물질했던 해녀 이모들이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엄마를 데려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우리만 살아와서 염치없다고.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선창을 떠나고 나는 해가 저물도록 부둣가를 떠나지 못했다. 저녁이면 늘 엄마와 마주 앉아 성게를 까던 자리였다. 엄마의 손가락 끝에 모로 박혀 있던 성게 가시들이 보라빛 핏물을 뿜으며 나를 찔렀다. 해녀 이모들이 전해주고 간 엄마의 망사리가 내 발 밑에서 꾸물거렸다. 전복, 해삼, 돌문어와 멍게들이 수초에 엉킨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죽은 엄마가 남기고 간 바다의 생물들...물에 젖은 어물들 위로 그제야 눈물이 떨어졌다. 이것들을 캐느라 바다 밑에서 사투를 벌였을 당신을 떠올리니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자꾸 넘어왔다. 뭍으로 돌아오는 엄마가 금방이라도 바다 너머에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물속에 안과 밖이 있던가. 종잡을 수 없는 바다의 날씨들, 그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살다 간 나의 해녀 엄마는 겉과 속이 늘 같은 사람이었다. 산다는 건 어쩌면 저마다의 파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차를 권하는 스님의 권유에 아버지는 다음으로 미룬다. 뚜벅뚜벅 앞서 걷는 아버지께 다가가 손을 내민다. 건네 잡은 아버지의 손바닥이 딱딱하고 딱딱하다. 굳은살의 한점 온기가 울컥 마음을 흔든다. 마트에 들른 아버지가 약천사로 쌀자루를 올려 보낸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토끼눈을 뜨자, 니 엄마 생일 밥이다, 하신다.
언덕 아래 펼쳐진 바다에 점점이 섬들이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이 무채색 꽃밭 같다. 저곳에 나의 엄마가 있다. 엄마는 모자섬에도 있고 몰운대에도 있고 솔섬에도 머문다. 갑갑함을 참지 못하는 생전의 유언대로 식구들은 당신을 땅에 묻지 않았다. 엄마는 나비 무늬의 날개를 달고 다대포 어디든지 날아다닌다. 다대포 모든 생명 안에 스며들어서 다시 살아 숨 쉰다.
불생불멸, 연꽃의 씨앗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2천 년을 해묵은 종자도 발아가 되는 시공을 초하는 꽃이다.
한집의 가장이 되어 자식을 길러보니 나의 부모가 새삼스러워 진다. 바다에 나가 벌어먹어야 하는 하루하루가 결코 녹록지 않았을 터인데 엄마는 누구에게도 호된 소리 한번 입 밖으로 뱉지 않았다. 거칠고 험한 삶의 밑바닥에서도 엄마는 우아한 연꽃처럼 살다갔다. 나의 해녀 엄마는 석가모니가 손을 들어 가리키던 그 한 송이 꽃이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