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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10/234일차> 2012년 6월 1일(금) 멘도사-->살타, 계획도시 멘도사와 와이너티 투어
멘도사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 중 하나인 로페즈 와이너리의 전시장.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와인산업의 중심지이자 세계 8대 와인 생산지의 하나로,
아르헨 전체와인의 70% 이상이 여기서 생산됩니다.
'멘도사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지 않으면 범죄'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뭔가 쫓기듯이 뛰어다니고 있다. 정리가 안된다.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2박3일, 발파라이소에서는 1박2일,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1박2일... 거의 달리기를 하다시피 하면서 여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시나 국가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고, 계속 뭔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호스텔에 묵고 있는 서양 여행자들이 대체로 4~5일 머무는 것과 비교해 나는 엄청 빠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무엇을 볼 것이며, 칠레에서는, 그리고 볼리비아, 페루에서는 무엇을 볼 것인가. 당장 멘도사에서는 무엇을 볼 것인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달리는 것 같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씻고 1층 홀로 내려와 그 동안의 여행 행로와 향후 일정을 카페에 올리고 살타(Salta) 와 칠레의 아타까마(San Pedro de Atacama) 숙소를 예약했다. 살타는 7 두엔데스 베이스 호스텔(7 Duendes Base Hostel), 아타까마는 호스탈 투야스토(Hostal Tuyasto)로 1박이 7000칠레페소(약 1만7500원)였다. 그런 다음 짐을 맡기고 숙소를 나섰다.
멘도사는 좀 독특한 도시다. 엄청나게 넓은 도로가 가로-세로로 직선으로 쭉쭉 뻗어 있고, 곳곳에 공원이 조성된 매우 계획적인 도시다. 어떻게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직사각형으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1년 대지진으로 도시가 대부분 붕괴되자 1863년 도시계획을 새로 세워 도로를 넓게 내고 곳곳에 광장을 조성했다. 지진이 다시 일어날 것에 대비해 시민들이 대피할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길을 널찍하게 만들었고, 곳곳에 큰 공원과 광장을 만들어 놓았다.
넓직넓직한 멘도사의 도로와 무성한 가로수.
1860년대 최소 5000명이 사망한 대형 지진 이후 완전히 설계를 다시 한 계획도시입니다.
때문에 멘도사를 돌아다니는 것은 좀 싱겁다. 오래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미로 같은 골목들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가장 오래된 건물이래야 150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원주민 유적이나 스페인 정복 초기의 유적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멘도사에서는 도시 곳곳에 조성된 공원과 그 공원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그나마 볼거리라 할 수 있다.
특히 멘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와인이다. 세계 배낭여행자의 바이블인 론리 플래닛에서 ‘멘도사에서 와인 투어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와인은 멘도사 여행의 필수 코스다. 좀 더 엄격히 말한다면 멘도사에서 와이너리 이외엔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중심지역이다.
숙소를 나서 시내를 좀 걸었지만, 상가만 밀집해 있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독특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려던 여행의 목적을 갑자기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도착해 뭔가 ‘지적인 갈증’을 풀어보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멘도사의 역사를 알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며 박물관을 소개받고, 멘도사 지역의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와인 얘기가 나왔다. 사실 와이너리에 가봐야 별 것이 없을 게 분명하다. 바로 직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도 칠레 최대의 와이너리를 돌아보았지만, 여기서 와인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 자기네 와인의 시시껄렁한 얘기만 할 게 분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유명하다니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와이너리를 소개받은 후, 공책을 하나 산 다음에 카페에 앉아서 어디를 갈지 여러 생각을 했다. 15km 정도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니, 전원 풍경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다음 돌아오면 4시 정도가 될 것이고, 박물관과 시내 산책으로 멘도사 일정을 마무하면 될 것이다.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5번째 노트를 사용하고 있다. 공책은 진짜 소중한 여행의 동반자다. 이것저것 메모도 하고, 숙소를 비롯한 중요한 정보도 기록하고, 혼자 카페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메모하는 일이다. 어제 하루 종일 안경을 끼어서 그런지 안경이 편해졌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소개해준 로페즈 와이너리(Lopez Winery)로 향했다. 최대 와인 생산지역인 마이푸(Maipu)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5대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였다. 론리 플래닛을 보니 멘도사에는 모두 1200여개의 와이너리가 있으며, 아르헨티나 와인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멘도사는 2005년 프랑스의 보르도 등과 함께 세계 와인 캐피털로 선정된 세계적인 와인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세계 와인캐피털은 프랑스의 보르도와 뉴질랜드 남섬의 크리스트 처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나파밸리, 포르투갈의 포르투,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스페인 빌바오의 라 호이자, 독일 리안헤센의 마인츠,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등이다.
로페즈 와이너리 입구.
아르헨티나 5대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멘도사 외곽으로 나가자 멀리 서쪽에 눈 덮인 안데스의 영봉들이 펼쳐졌다. 잉카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개 시스템을 통해 산 정상부위의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척박한 멘도사 일대에 공급하고 있다. 멘도사는 관개시설만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두어 포도밭을 비롯한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이 물을 이용한 발전시설도 설치해 두고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은 와인산업 이외에 올리브, 사과, 오렌지, 복숭아, 아몬드 등 과일과 양파 등 채소산업도 주요 산업의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여기에 필요한 용수를 전통적인 관개시스템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 메마르고, 거칠고, 황량한 안데스 산맥의 동쪽 지역에 눈 녹은 물을 이용한 관개 시스템이 멘도사를 일종의 오아시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9번 버스를 타고 45분 정도 외곽으로 나가자 로페즈 와이너리가 나타났다. 여기에선 거의 매 시간 무료 와이너리 투어가 진행되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아르헨티나 주민 5명이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투어에 참가했다. 가이드가 스페인어로 설명한 다음, 영어로 간단히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와인 제조공장을 직접 둘러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먼저 와인을 수확해 이곳으로 가져오면 발효공정을 거친다. 레드 와인은 20도의 온도에서 10일 정도, 화이트 와인은 17도의 온도에서 20일 정도 발효시킨다. 이어 숙성 과정을 거치는데, 6개월~1년 정도의 기간 동안 오크통에 넣어 숙성시킨다. 숙성 기간은 와인 종류에 따라 다르다. 충분히 숙성돼 제맛을 띠면 보틀링(Bottling)에 들어간다. 병입, 즉 와인을 병에 담는 것이다.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 공장의 생산능력은 연간 5000만 리터에 달하며, 시간당 1만병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로페즈 와인은 전량 아르헨티나에서 소비되며, 수출은 하지 않는다. 이런 생산시설을 갖춘 와이너리가 멘도사에만 1200개가 넘는다니 놀라웠다. 생산시설을 돌아보고 스파클링 와인과 레드와인의 테스팅을 했다. 멘도사가 낳은 ‘신의 물방울’이지만, 다른 곳에서 맛본 와인과 특별히 다른 것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포도주 생산과정
포도주를 발효하는 과정입니다. 포도즙을 넣고 발효시킵니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도조절 장치가 달린 대형 특수용기를 이용합니다.
발효가 완료된 와인을 이 오크통에 넣고 6개월 동안 숙성하는 과정입니다.
정확한 숙성기간은 포도의 종류에 따라 다르며, 그에 따라 맛도 달라집니다.
숙성 과정을 거쳐 제조과정이 완료된 포도주를 병에 넣는 과정입니다.
모든 공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노동자들이 귀마개를 하고 있네요.
로페즈 와이너리의 담벼락에 그려 놓은 포도를 생산하는 과정을 그린 벽화.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멘도사 시내로 다시 돌아와 카페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인데펜덴치아 광장(Plaza Independencia) 앞의 사르미엔토(Sarmiento) 거리의 한 식당에서 쇠고기와 감자튀김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보행자 전용도로로 거리엔 식당이 즐비했다. 오전에만 해도 상점들이 문을 열고 거리엔 사람들로 붐볐으나, 오후 3시 경에 센트로에 돌아오니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시에스타 시간으로 오후 1시부터 4~5시까지는 시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는 ‘이상한’ 도시였다.
계획도시 멘도사는 격자형 도로와 공원의 도시다. 가장 대표적인 공원은 산 마르틴(San Martin) 공원으로 하루 종일 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크고, 도로도 넓다. 산 마르틴 공원 이외에도 4대 공원이자 광장인 에스파냐 광장, 이탈리아 광장, 인디펜치아 광장, 산 마르틴 광장이 있다. 도시를 계획적으로 만들며 도로를 충분히 확보하고 도로 변엔 가로수들을 충분히 심었고, 가로수가 크게 자라 도시가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각각의 광장은 나름대로 특색이 있었다. 에스파냐 광장(Plaza Espana)은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스페인과 형제애(brotherhood)를 위해 건설된 광장으로, 양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조각과 벽화가 있었다. 이탈리아 광장(Plaza Italia) 역시 이탈리아와의 우호를 위해 만들어진 공원으로, 로마의 유적을 연상시키는 조각상과 고대 로마 건설의 전설적인 영웅인 로물루스 형제를 자신의 젖으로 키웠다는 전설의 늑대상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에스파냐(스페인) 광장에 세워놓은 벽화.
과거의 식민통치를 했던 스페인이 아르헨티나와의 형제애를 위한 그림들입니다.
식민지(colony)에 대한 개념이 한국-일본과 너~무 다릅니다.
이탈리아 광장으로, 분수 건너편에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이탈리아 광장 한켠에 만들어 놓은 '로물루스 늑대'.
고대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 형제를 키운 전설 속의 늑대입니다.
에스파나 광장에서 이탈리아 광장으로 가면서 정부 건물(Government House)들이 모여 있는 행정타운을 지났다. 정부 건물 앞과 옆에는 각각 멘도사 법원과 의회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 이곳이 멘도사의 정치 중심지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부 건물 앞에는 넓은 공원과 운동장이 조성돼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젊은이들은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멘도사 정부 건물입니다.
멘도사 법원 건물입니다.
인데펜덴치아 광장은 멘도사의 중앙공원으로, 젊은이들의 휴식과 만남의 광장이었다. 광장 주변엔 수공예품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주말이면 대성황을 이룬다고 했다. 야간엔 화려한 빛의 향연인 루미나리에와 시원한 분수가 멘도사의 낭만을 더해주는 공원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도 늦가을 오후 햇살을 받으며 벤치와 잔디밭에서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거나 뛰어놀고, 일부는 잔디밭을 뒹구는 청소년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인디펜치아 광장의 시원한 분수.
젊은이들로 항상 붐비는 낭만과 젊음의 공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멘도사의 상징 역할을 하는 인디펜치아 광장의 '루미나리에'
야간에 불이 들어온 모습이 훨씬 더 멋있습니다.
이들 공원을 차례로 돌아본 다음 마지막으로 산 마르틴 광장으로 향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남미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영웅인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내려보는 광장에서 롤러 브레이드와 자전거를 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산마르틴 장군의 동상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니 아이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달라며 카메라 앞으로 몰려들었다. 순수한 아이들이었지만, 조금은 불량끼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 마르틴 광장에서 놀다가 카메라를 보자 달려온 멘도사 청소년들.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독립전쟁을 이끈 산 마르틴 장군 동상.
스페인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그는 남미 독립을 위해 남미로 넘어와
칠레-페루 등의 독립과 아르헨티나의 독립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남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산 마르틴'은 무수히 만날 수 있습니다.
산 마르틴 광장의 다른 편에서 만난 청소년들.
까불까불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청소년들입니다.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데 5시가 넘어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낮에 문을 닫았던 상가들도 다시 문을 열고, 거리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시에스타가 끝난 것이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대체로 오전 8~9시에 문을 열고, 12시30분~1시경에 문을 닫은 다음 4~5시에 다시 문을 열어 오후 8시30분~10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했다. 세상이 달라져도 300년이 넘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멘도사의 후예들은 점심을 겸한 휴식시간의 전통은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하긴, 이곳의 한 여름 낮에는 찌는 듯한 더위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에스타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시에스타 시간인 오후 3시 경의 썰렁한 보행자 전용도로.
다행히 식당은 영업을 지속해 오른쪽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다시 붐비기 시작하는 거리.
시에스타 시간과,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6시께 숙소에 맡겨 놓았던 배낭을 찾아 둘러메고 나섰다. 걸어서 터미널에 도착해 샌드위치와 커피로 식사를 한 다음, 오후 8시30분 살타(Salta)로 가는 안데스마르(Andes Mar) 버스에 올랐다. 아르헨티나의 북서부 중심 도시인 살타까지는 1308km로 20시간 걸린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선 짐을 싣고 내릴 때 팁을 주는 것이 관행이다. 사람들이 얼마를 주는지 모르겠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나 로사리오 같은 곳에선 팁 주는 것을 슬쩍 무시하고 내가 직접 배낭을 버스의 짐칸에 싣고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워 2페소를 팁으로 주고 짐을 맡겼다. 배낭을 받은 버스회사 직원은 버스의 짐칸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어제 멘도사에 도착했을 때에도 짐칸에서 내 배낭을 꺼내준 직원에게 2페소를 주었다.
버스로 남미을 여행할 경우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안데스 마르(Andes Mar) 버스.
여기서는 이런 작은 팁이 관행이다. 어제 안데스 국경을 넘을 때에는 버스 차장이 세관 검사원에게 줄 팁을 걷는 컵을 들고 다니며 돈을 걷기도 했다. 좀 이상한 풍경이다. 세관 심사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며, 정부의 공공 업무인데, 여기서는 팁을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좀 황당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몇 페소를 그 컵에 집어넣었다. 일부 여행자들, 특히 서양 여행자들은 어깨만 들썩이며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다. 어제 버스의 차장은 국경을 넘을 때 이 팁이 든 컵과 차에 있는 간식꺼리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세관원에게 건넸다.
마치 통행세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관원은 버스회사 직원이 건넨 돈이 든 컵을 작은 책상 안쪽에 챙겨놓았다. 그 책상의 중요한 용도 가운데 하나는 그 ‘돈 컵’을 모으는 것이었다. 작지만 일상화된 부정부패의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세관검사는 법과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팁 명목의 ‘세금’을 내고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작은 ‘세금’을 내지만, 좀 큰 기업은 그에 맞게 더 큰 ‘세금’을 낼 것이고, 대기업은 아주 많은 ‘세금’을 낼 것 아닌가.
하여튼 그렇게 약간의 팁을 주고 배낭을 차에 실은 다음, 버스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버스는 예정대로 저녁 8시30분 멘도사를 떠나 살타로 장거리 야간이동을 시작했고, 나는 하루 종일 멘도사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피로가 솔솔 몰려왔다. 밖에도 이미 어둠이 몰려왔다. 짧지만, 멘도사의 진면목을 핵심 골자만 찍어서 본 ‘압축적인’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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