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한 몸의 지체
고린도전서
12:12-31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 뿐이면 몸은 어디뇨?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우리의
몸을 살펴보면, 한 군데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역할도 다 다릅니다. 서로 다르게 생기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것을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역할을 잘 이행할 때에 우리의
몸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각 사람이 지체가 되어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고 13절에서 말씀하듯이 교회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남녀노소 구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여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눈썹이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모두 뽑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눈썹은 모든 먼지와 좋지않은 것들을
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패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종종 내가
생각하기에 자리만
차지하고 아무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지탱해 나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어떤 사람 때문에 교회가 몸살을 앓고 그것 때문에 쉬지않고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문제의 사람때문에 교회가
기도의 훈련을 하게 되며 쉬지않고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활어를 다른 나라로 운송할 때에 많은 배멀리로 인해 많은 물고기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상어 한 마리를 그 속에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운송하는 도중 지치고 힘들어서 죽던 물고기들이 상어 한 마리 때문에 서로 살기위해
아둥바둥 애를 쓴다고 합니다. 물론 상어의 밥이 되어 희생되는 물고기가 생기긴 하지만, 몇 마리가 희생됨으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소에는 그들을 잡아먹는 원수인 상어가 오히려 물고기들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 헤이해질 때 영적으로 죽지 않고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극한 상황을 우리에게 경험하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람을 통해 겪어야 하는 가시가 가장 힘이
듭니다.
따라서 내 주위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하나님께서 나의 영을 살리시기 위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삶을 살기가 수월해 집니다. 왜냐하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내 영을 살리시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실까"라며 하나님의 사랑에 오히려 감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말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여기가 어떻느니... 저기가
어떻느니... 하면서 여기도 자르고, 저기도 자르면서 판단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나를 판단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judge)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condemn)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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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까지 남을 함부로 판단했던 것을 회개하고 모두가 지체라는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교제하도록 힘써보시기 바랍니다.
| 성경에서 우리에게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한
것은 "판단"이라는 단어는 "심판"이라는 단어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이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지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선악간에 심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심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에 있는 것이므로 심판 자리에 서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가 없으신 하나님처럼 나는 의롭로, 다른 사람은 죄인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심판했던 것처럼 나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행위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인데, 나도 그 행위를 행하고 있거나 행했거나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판단은, 누군가가 잘못해서 서로
권면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한다는 차원의 판단이 아니라 의로운 재판장이 되어 심판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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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는 항상 의롭고, 다른 사람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하는 말과 생각은 모두 옳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가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합니까?
교회의 교인들을 얼마나 격려해주며 보살피고 있습니까?
내 주위에 보내준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자들을 얼마나 섬겨주고 있습니까?
그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며 판단하는 것이 내 몸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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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몸 중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번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발이 움직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을 겁니다. 입이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면, 말도 못하고 식사도 못하여 얼마 안 있어 죽을 것입니다. 코가 데모를
하면, 음식의 맛을 맡지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하여 역시 얼마 안 있어서 죽을 것입니다. 장이 멈추면 식사를 해도 소화를 못시키고 또 배설물을
배출하지 못하므로 얼마 살지 못해 죽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나의 몸의 지체들이 서로 싸우며 자기의 역할을 중단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체 부자유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는 죽음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우리 가정과 교회도 이렇게 지체부자유자의 상태는
아닙니까? 머리는 지시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거나, 귀로는 들었는데 머리가 깨닫지 못하여 지각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머리가 잘못되어서 엉뚱한 지시를 하므로 몸이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늪지대에 빠지는 등......
지금 내가 속해있는 몸은 무엇이며 또
내가 맡고있는 역할은 무엇이며 나로 인해 내 몸의 현재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모두 한 지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 하나가 모여 몸을 형성합니다. 나 혼자 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 혼자 교회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겸손히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할 때에 건강한 몸이 될 수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이 무엇을 하거나 말거나 내 일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합니다.그리고 다른
지체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서로 권면하며 위로하며 이끌고 나아가야 합니다. 내 할일은 안 하면서, 남이 하는 일에 콩나라, 팥나라 하면
안됩니다. 나와 은사가 다르고
사역하는 방법도 다르며 방향도 다른 것을 보며 칭찬해주며 격려해주어야지,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필요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핀잔을 주며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없어 보이는 어떠한 지체, 콧털도 다 필요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찬양인도자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선교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마다 주어진 분량의 주어진 사역 범위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운동을 해야 건강해지므로 운동을 하라고 아무리 권할지라도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잔소리로만 들릴 뿐 어떠한 격려의
말로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권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운동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열심히 다른 지체를 위해 권했는데,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쓸데없는 일 그만하고 다른 일이나 하라는 말 소리 뿐이라면?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의 주장만 내세울 때 그곳에는 요란함과 다툼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항상 다른 이가 말을 할
때, 감정에 충실하여 기분나빠하지 말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남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생각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릅니다. 얼굴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다르게 생긴 사람에게 "왜 그렇게 생겼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질문은 그 사람에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말은 하나님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언행이 하나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남을 향해 던지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음미한 뒤에 입을
여시기 바랍니다.
내가 필요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길 수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항상 내가 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그 판단으로 결국 나도 심판대 앞에서 그 판단을 받을 것임을 잊지 맙시다!
21절에서
"쓸데
없다"라거나 22절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 23절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과 "아름답지
못한 지체" 그리고 24절에의
"부족한
지체"는 어디에서나 항상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항상 건강한 것이 아니듯, 또 모든 부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3-25)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각 기능을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이 모여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며 격려하는 가운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은사를 통해 서로 아름다운 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덕을
세우기는 커녕 그 은사로 인해 불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주신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노래에 빠져 세상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변호사 이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언변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은사를 가지고 남을 비판하거나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기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상처받고 고통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므로
그들에게 귀한 상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은사를 가지고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열심히 들어준다면, 그
역시 그 은사를 가지고 자기의 몸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에게 주어진 은사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것을 볼때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은사입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너무 답답해 보인다면, 나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해서 잘 가르쳐보라는 것입니다. 또 만약 더러운 것이 눈에 보이면 나에게 청소하는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불러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문제 의식"을 통해 나로 그 일을 연구하게 하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문제로 삼고있는 그것을
연구하여 가정과 교회를 세우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것으로 가정이나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계속 문제를 삼고있다면 회개하고 앞으로는 나로 인해 가정과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내가 속해있는
곳이 나로 인하여 건강해지고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가 나로 인해 저주를 받을 것인지, 나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인지는 바로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며 음식의 맛을 고르게 하는 소금처럼 은혜롭고 덕이 되는 말, 복음을 선포하는 말을 뿌리며 삽시다! 나에게 있는
은사를 땅 속에 뭍어두지 말고, 또 잘못 사용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하므로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해있는 모든 곳이 복을 받도록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죄인인 저를 아무 공로없이 의인으로 삼아주시며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 그 넓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결코 저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온 우주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며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라고 당부하셨던 예수님의 사랑... 그러한
사랑을 받은 저이지만, 저는 그 사랑을 본받지 못하고 때론 많은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안에서 저런 사람만 없으면 참 좋을텐데...
라는 허망한 생각을 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 그의 말을 듣기도
싫고 그와 말하기도 싫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쓸데없는 데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만드셨는데 그와
제가 다르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옳고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그릇된 생각으로 그와 자주 다투었습니다. 부드럽게 말해도 되는 것을, 엄하게
말하며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도록 말을 못하게 하고 제 말만 주입시키고자 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바로 저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영적 간음인데... 저는 영적인 간음을 수도 없이 행했던 그러한
자임을 저보다도 주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도 저 자신보다는 남을 판단하는 일에 항상 빨랐음을 고백합니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속에 있는 티만 바라보았습니다. 저에게 사랑하라고 주신 가족이나 교인들을 섬겨주기보다는 심판자의 자리에 서서 그들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항상 잔소리하기에 바빴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고 나서서 일을 하지는 않고 뒷짐을 지고 그들이 잘 하나 못하나 관망을 하며
판단만 하고 있었습니다. 지켜보다가 잘못하면 지적하기에 바빴습니다. 제 몸은 영적 앉은뱅이였으며, 입만 살아서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옮겨주지 않거나 제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불평만 일삼았습니다. 저의 삶은 어쩌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심히 교만히 행한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히 영적으로 게으르며 죽은 삶을 살았습니다. 이 모든 교만과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불순종의 죄를 모두 주께 내려놓사오니 저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시고 우슬초로 정결케하사 주의 집에 거하며 주의 성호를 높이며 영원토록 주를
찬양하게 하옵소서. 제 모든 죄악을 도말하시사 눈처럼 깨끗하게 씻어주옵소서. 그리고 다시 새출발 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가 부족한 것처럼 다른 이들의 부족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의 부족함을 볼 때에 그것을 비판하고 비난하지 말게 하시며 오히려 그것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의
연약함을 제 연약함처럼 생각하며 마음에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제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들의 부족함을 더이상 말하지
말고 그들의 부족함을 제가 메꾸어줄 수 있는 섬김의 도를 실천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족하고 못하는 것을 볼 때에 뭐라고 말하지 않고 제가
대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 마음과 생각과 입술을 지켜주옵소서.
'문제'를 주신 것은 '문제의식'을 통해
제 은사를 활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그걸 모르고 이제껏 문제를 보면 그 문제를 지적하며 비판하느라 여념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문제를 볼 때에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그것을 저에게 하라는 말씀으로 깨달아 덕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제 마음을 움직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옛습관과 옛생활에 젖었던 모든 것을 주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잘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옵소서. 저에게는 지금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저에게는 필요치 않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지금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과 올 한 해를 승리하며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 때문에 제 주변이 가시덩쿨과 엉겅퀴가
자라는 불모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저로 인하여 제 주변이 복을 받아 웃음꽃이 피며 번영하기를 원하오니 저를 새롭게 빚어주옵소서. 저로 인하여
몸이 망가지고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저로 인하여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이루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