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아이
* 부자 "親" 이라는 말에 울고
* 어미 닭과 쪼아 부수기(啄碎.탁쇄)
* 칭찬이란 보약으로 크는 아이
* 어리석은 사람으로 키워진 사람은
* 분재 소나무와 같은 정신적 난쟁이
* 닭이 달걀보다 먼저다
* 자식 버릇 길들이기
* 아비만한 자식
* 아비는 자식의 거울
* 단심가가 태어나기 까지는
* 구운몽과 윤씨부인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 지금 나에게 간병은 필요 없다
* 궤변 엄마
* 물에 놀란 아이
* 性은 자기 문제다
* 먹통의 눈(雪)
* 바른 말을 하는 친구, 좋은 말만 하는 친구
* 용서하는 마음
*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 다시 생각해 보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
* 가르쳤다 그리고 안다(知)의 차이
* 마법의 돌
* 우정
아들을 위한 기도
약할 때 강할 줄 알며, 두려울 때 용감할 줄 아는 아들.
솔직한 패배 가운데서 당당하고 굽ㅎ지 않으며.
그러나 승리 가운데서는 겸손하고 너그러운 아들.
자기의 행동을 자기의 소원으로 바꾸지 않는 아들을
기르게 하소서
그를 편안한 위로의 길로 보내지 마시고
난관과 도전이 있는 긴장과 자극 가운데로 보내소서.
거기서 그로 하여금 실패한 자들을 위한 동정을 배우게 하소서.
마음이 밝고 목표가 고상한 아들.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아들.
웃을 줄 알지만 결코 우는 법도 잊지 않는 아들.
미래를 지향하지만 결코 과거를 잊지 않는
아들을 기르게 하소서.
더글라스 맥아더
제 2장 아이
부자 親이라는 말에 울고
"親" 이라는 글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지금은 도시화으 영향으로 그 모습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한적한 시골집
싸리문 앞을 떠올려 보자.
"아버지, 어머님! 저 떠납니다."
"그래 잘 가고....짐 속에 있는 삶은 계란은 배고플 때 창 안에서 요기하거라. 소
금도 함께 넣었다. 차 조심, 사람 조심하고..."
"그러면 도착해서 소식을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조심해라. 아무쪼록...."
점점 멀어져 가는 아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 뒤를 따라 간다.
아들은 그만 오시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어미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어린 송아지의 이별같이 애틋하기만 하다. 어느덧 동구 밖 언덕 위로 아들의 모
습이 점같이 멀어져 간다. 목을 빼고 손을 내밀어 더 환송하고 싶을 것이다. 그때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 큰 나무가 서 있는 것이 보였고, 정신없이 달려 들어
그 나무 위에서 아들을 쳐다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 나무(木)위에 서서(立) 보
고 있는(見) 모습을 써 놓은 것이 "親이라는 글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의 분신을 만들고 다른 곳으로 떠나 보내지만 같은 하늘 아
래서 생활을 한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부몽게 자식은 언제나 아이요 철부지다.
환갑 지난 아들에게 길조심하라고 걱정하는게 늙은 부모의 심경이다.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경험도 없는 애가 덤벙대다 실수나 하지 않을까? 겁도 많고 소심
한 아이라 어디에 내놓아도 안심이 안된다. 그저 품안에 감싸 안고 살고 싶지만
더 큰 성장을 위하여 아들을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며 떠나 보내는 것이다. 그 양
친의 불안과 염려를 표현한 것 같은 親이라는 글자,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이런 글귀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내가 아들인 시절에 나무 위에서 울면서 나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親,"
그 흐르는 눈물을 배우의 연기라고 누가 말할 것인가!
부모의 눈물을 흐르게 했던 내가 이제는 어버이가 되었다.
'내가 자식의 소원 성취를 보는 날은 언제일까.'
'보내는 내가 나무 위에서 내려 올 수 있는 날은 언제 쯤일까?"
어미 닭과 쪼아 부수기(啄碎.탁쇄)
계한이 변해서 병아리가 된다. 미국에서 싸움 중에 말하는 욕설 중에 "You
chicken!" 이 있는데, 이 말에는 "전에 병아리였던 겁쟁이" 라는 조롱하는 뜻
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계란에 얽혀진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한다.
계란을 병아리로 부화시키려면 어미 닭은 배로 따뜻하게 품어 준다. 우리가
어머니의 뱃 속에서 10여 개월을 지내면서, "엄마, 나예요. 나" 하고 태동으로
알리면 "그래. 귀여운 내 아기" 하는 사랑의 메세지를 들으면서 자라왔듯이
어미 닭도 21 일간을 둥지를 떠나지 않고 계한 속의 병아리와 대화를 한다고
한다.
피곤하다고 해서 그대로 앉아 버리면 자신으 병아리가 깔려 죽어 버리고 만
다. 어미 닭이 품기 전 계란 속은 차이가 없어도 병아리가 되는 차이는 품는
어미닭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없다." 는 말을 영어
속담으로 "You can not makeomelets without breaking eggs. " 라고 한
다. 맛있는 오므렛을 먹고 싶다면 먼저 계란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희생
없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인데. 왜 오므렛이 라는 말이 생겼을까? 로
마 시대의 역사적 인물인 시저가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프다." 라고 말하자
부하들이 즉각 만들어 나온 것이 계란 요리였고, 이 요리 접시를 보고서 그는
오므렛이라고 말했는데 그때부터 빠른 것이라는 스페인어가 오므렛이 되었
다고 한다.
입시 준비에 바쁜 자식을 위해 새벽부터 오므렛과 같은 음식과 도시락을 몇
개씩 준비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어미닭의 사랑은 너무나 닮아 있다.
"어미와 자식이 마음을 교류하며 하는 말. 쪼아부숨!"
병아리가 되기 바로 직전이 계한을 품고 있는 어미 닭은 밖에서 쪼는 것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안에서 "알았어요! "알았어요! 엄마. 지금이지요?" 하
며 호응하면서 부순다. 이것이 동시에 맞아야만 하나의 생명체인 병아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바로 어미의 뜻과 자식의 꿈이 서로 통하여 합쳐지는 시간(啄碎同時)인 것이다.
우리 사람들의 가르침과 사랑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지는 바
로 그 순간이 최고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칭찬이란 보약으로 크는 아이
작은 초등학교 교장실에 한 학생이 뛰어들며 흥분해서소리쳤다. "교장 선생님
신기록입니다. 신기록!"
신기록이라니 무슨 신기록이란 말인가?
"100m 달리긴가, 마라톤인가?"
궁굼증이 난 교장 선생님이 "무슨 신기록이냐?" 라고 물어보니 학생이 내민 것
은 한 장의 시험지였다.
"이것 보세요. 90점이라고 써 있지요. 지금까지 최고가 80점 이니까. 10점이 더
많거든요. 신기록이죠! 안 그래요? 선생님!"
"그래 잘했다. 잘했어! 분명히 신기록이구나. 참 장하다. 그 시험지 기념으로 교
장실에 붙여 둘까?"
"아니예요. 우리 엄마한테 보여 드려야죠."
뛰다시피 교장실을 나간 그 아이의 표정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환
희에 찬 얼굴이었다.
그 다음 날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을 거닐다 보니 어제 그 괴짜아이가 공을 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얘야! 이리 와 봐라. 그래 어제 그 신기록 시험지를 어머니께 갖다 드렸더니 얼
마나 기뻐하시더냐."
"아녜요. 공연히 야단만 맞았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신기록 점수를 받았는데 야단을 맞다니?"
맥 풀린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어머니는 기뻐 날뛰는 아이에게 이
렇게 말했다고 한다.
"듣기 싫어! 100점두 아닌 그까짓 90점을 받고 야단이야. 어서 나가지 못해!"
지금까지 없던 신기록 성적을 올리고도 칭찬 한 번 못들은 아이는 맥빠진 한마디
를 남기고 달아났다.
"전 틀렸어요. 공이나 찰래요."
아이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간다. 교육학자들은 자녀에
게 "공부를 못한다. 말 안 듣는다." 라고 자꾸 반복하게 되면 정말로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왕 자녀에게 영향을 줄 바에야 플러스 영향을 주자.
"잘한다. 잘한다." 고 칭찬을 해 주면 그것이 풀러스 영향이 되어 사실 그대로 되
기 쉬울 것이다.
칭찬이라는 보약을 먹고 피는 재능의 꽃은 먼 곳에 있지않고 내 말 한마디에 있다.
어리석은 사랑으로 키워진 사람은?
우리는 백화점이나 공공 장소 같은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해 달라고 떼를 쓰면 우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엄마들을 보며 가정교육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
다. 중국 주나라 사람으로 강물에 빈 낚시대를 드리우며 천하를 다스릴 사람을 기
다리다 세상에 등장해서 유명해진 강태공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귀여울 수록 매를 이끼지 마라."
이 말에ㅐ 성급한 사람은 "교육부에서 체벌을 금하고 있는 데 무슨 소리야! 라고 할
수도 읶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자식이 귀하다면 매를 대라, 내 자식을 못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면 자식이
바라는 것을 모두 다 해 주어라." 라고 강태공은 말한 다음 "이런 애정은 어리석은
애정이다." 라고 일갈했다.
어리석을 치(痴)는 병들 병(病)에, 의심할 의(疑)를 붙인 것이다. 여기에다 사랑 애
(愛)를 써서 어리석은 애정(痴愛)이라고 말한다. 백화점 같은 데서 어린아이를 울리
고 '할 수 없지. 사 줄께." 라고 타협하는 어머니들, 이것이 어리석은 사랑이다.
이렇게 키워진 아이들은 땀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쾌락의 길을 걷기가 쉬울 것이다.
분재 소나무와 같은 정신적 난쟁이
소나무는 애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듯 대표적인 나무로 토양과 바람, 온도, 습
도 등 조건만 잘 맞으면 5.6층짜리 건물 높이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있다. 그러나 화분
에 심어진 분재 소나무는 50~60년이 흘러도 그 키는 불과 20~30cm를 넘지 않는다.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1m를 넘지 않는다. 분재된 나무
들이 키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은 분재 기술자들이 나무의 꼭대기 가지
와 뿌리를 정기적으로 잘라내고, 나무를 매년 다른 화분에다 옮겨 심으면 뿌리가 안
정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무들은 난쟁이 식물이 된다. 분재 기술자들은 키가 크지 않으면서 생
명만 유지하도록 나무들을 길들인다. 즉 나무의 성장 잠재력을 제거하기 때문에 나
무는 원래이 크기대로 성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이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재된 나무처럼 살아가고 있다.
'나는 배움이 짧아.' '나는 배경이 없어.'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야.' '나는 소심해.'
하는 식으로 마음 속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꼭대기 가지와 뿌리를 계속 잘라내면서 살
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이 멈춰버린 정신적인 난쟁이 모습이다. 조금 해보다가
잘 안 되면 금새 포기해 버리고 또 다른 일에 손을 댄다. 이런 식의 반복은 뿌리의 안착
을 억제시켜 성장 잠재력을 제거해 버리느 분재 기술자의 분갈이와 같이 인간의 잠재
력과 발젼 가능성를 위축시킨다. 이처럼 자기 내부에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상실하고
정신적인 난쟁이가 되는 것은 주위 환경이나 과거의 실패 탓인 경우가 많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흔히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은 반드시 유전인자 때문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길들여진
탓이 클 것이다. 길들이기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실수와 실패의
경험도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한 번 실수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를까봐 두려운 나머지 살아
가는 데 잇어 안전한 길만을 고집하는 소심한 성격이 된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망
설이는 분재 소나무 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가족과 사회 또는 실수와 실패로 인한 부정적인 길들이기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탈출구는 꿈과 비젼이다. 거대한 자석처럼 우리들을 목적의식의 세계로 잡아당기는
비젼을 바라볼 때, 우리는 분재가 아닌 크고 기품있는 큰 소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닭이 달걀보다 먼저다.
"아이들에게 결제적 책임감을 가르쳐라. 부모는 더 이상 자녀의 현금지급기여선 안
된다. 아이들이 용돈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얼마 줄까에만 신경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 줘라. 신용카드는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만
자칫 엄청난 고통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
로버트 기요사키와 샤론 레흐트가 공동으로 저술한 [부자 아빠의 자녀교육법]의
내용인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경제, 금융 교육이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녀
들에게 일찌감치 경제 마인드와 올바른 금융지식을 심어 줘야 한다는 주장으로 돈의
관리법은 물론 신용카드의 덫에 걸리지 않는 법, 저축은 무조건 좋고 빚은 나쁘다는
논리의 허점등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것들을 직접 터득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실리 위주의 교육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
이들을 아이답게 키우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영악한 경제적 동물로 만들어 낼 수 있
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우리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주장을 얼버무릴 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
는 풍자를 하는데, 이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했던 소재다.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곤 하지만 닭이 먼저라는 주장이 있다.
왜 그럴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달걀은 닭이 낳은 알이고 닭은 동물이다. 동물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생면의 기원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현재는 진화론과 창
조론이 맞서 있다.
먼저 진화론을 생각해 보면, 닭이든 달걀이든 어디선가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닭의 조상이 꿩이라고 가정하고 진화론에 의거 돌연변이-자연선택설을 따른다면 조
상인 꿩이 알을 낳았고, 그것이 부화해 일종의 돌연변이인 닭(병아리)이 나왔다. 이
명아리가 놀라운 능력으로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아 후손을 번식시켰다면 그 놈은
닭의 시조가 된다. 그렇다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당연히 닭이 먼저이다.
꿩이 낳은 알은 단지 꿩알일 뿐이지 나중에 병아리가 나왔다고 해서 소급해 달걀이
었다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창조론으로 생각해 보면 신이 달걀을 만들리가 없다. 왜냐하면 알에서 뭐가 튀어
나올지 알고 모형을 한단 말이가. 분명히 닭을 먼저 만들어 알을 낳고 종족을 번식
시키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세상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진리가 여럿일 수 있다는 주장의 자조섞인 근
거가 되지만, 해결을 위한 분명한 답은 있는 법이고 그 답을 찾는 일은 우리가 할 일
이다. 요즘은 신문이나 티 브이를 보면 세상 온갖 주장들이 시끄럽기만 할 뿐 '닭과
달걀' 같은 양비, 양시론 등에 무임승차하여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두리뭉실 넘어
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걸려도 '닭이 먼저인 것처럼' 분명히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의 백년대계가 바르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자식 버릇 길들이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보다 한 세대 이전인 농경 사회에서는 자녀의 가정교육을
말할 때 엄한 아버지에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엄부자보(嚴父慈母)라는 말이 많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급속히 변한 지금에는 잡안의 기강을 세우는 어른
으로서 엄부는 사라지고, 아버지는 아이들의 놀이 상대가 된 자부자모(慈父慈母)
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엄한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어른 6명(부모, 조부모, 외조부모)의 과
보호로 자란 하나 뿐인 아이는 육체만 크고 정신은 허약해져 내가 가족과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나만 위해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 성향으로 자라고.
의지력이 약해져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기 보다 남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걱
정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아버지가 자식을 몹시 엄하게 꾸짖고 있었다. 옆집 사람이 모다 못해 애가 도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리 엄하게 다스리는냐며 참견을 하자 그 아버지는 "아
까 댁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내 아들이 댁의 쌈지에서 수만냥을 훔쳤기에 그래서
혼을 내고 있다." 고 대답했다.
옆집 사람이 쌈지를 열어 보고,
"내 쌈지에는 동전 한 냥밖에 없었는데 안닌게 아니라 한 냥이 없어졌다." 고 하자
그 아버지는 ," 옛말에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녀석이
지금은 한 냥을 훔쳤으나 가만히 두면 수만냥을 훔치는 도둑이 될지도 모흡니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수만 냥을 훔친ㄴ것과 같이 엄히 다스리고 있습니다." 라
고 말했다.
어릴 때 잘못한 일을 단단히 고쳐 놓지 않으면 자라서 큰 화근을 만들어 낸다. 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마침내 겯잡을 수 없이 번져 모든 것을 태워 버리
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실락원의 작가 밀턴(J.milton 1608~1674)은 '아침에 그날의 날씨를 알아 볼 수 있
듯이 어린 시절을 보면 그 사람의 장래를 알 수 있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자식은 어릴 때 엄하게 꾸짖어 버릇을 잡고, 자란 뒤에는 꾸짖으면 안되며
엄하게 가르치되 자식이 부모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비만한 자식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자식치고 그 무모만큼 훌륭한 아들, 딸들은 많지 않다
고 한다. 큰 나무 아래서는 작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듯이 큰 부모의 그늘에 가려 자
식들이 기를 펴지 못하거나 스스로 의타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훌륭한 지위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자식 중에 부모
의 인품이나 인격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다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종
종 매스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자식 겉 낳지 속 낳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훌륭한 아버지가 불철주야 노력하여 만
들어 준 재산을 '서로더 많이 갖겠다' 고 형제간에 이전투구(泥田鬪拘)하는 사람이나,
또 아버지는 칼국수로만 식사를 하는데 아들은 룸살롱을 헤매고 다니며 하룻밤에 천
만 원을 쓴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옛부터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불초(不肖)라고 하는데 부모를 닮지 않
아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초들은 중국이 성군의 대명사로 부리우는
요(堯)와 순(舜) 임금에게도 있었다고 한다.
요 임금에는 단주라는 아들이 있었고 순 임금에는 상균이라는 불초가 있었는데 이
둘은 자기를 낮추기 위한 불초가 아니라 진짜 망나니로서 부모이 속을 태운 못난
자식이었다고 전한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대재벌을 이루고 이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한 사람이 친
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었지만 딱 두 가지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것은 "골프공을 마음먹은 방향으로 쳐 내는 것과 내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우
는 것" 이었다.
또 호부견자라는 말이 있는데 아버지는 큰 인물이지만(호랑이) 아들이 그 업적을 받
들어 계승하지 못한 (개) 경우를 두고 하는 비유이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개 같은
아비라도 호랑이 같은 자식을 원한다. 그래서 자식이 잘되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
원하지만 자식 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자식은 부모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비 만한 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훌륭한 자
식을 키워 내려면 부모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비는 자식의 거울
아이들은 분위기로 자란다. 말은 할 때 분이지만 분위기란 언제나 그렇게 잇는 것이
어서 아이들은 그 속에 흠뻑 젖어 들기 때문이다. 음악가 집안에서 음악가가 많이 배
출 되고, 화가 집안에서 화가가 나는 것은 선천적인 소질도 중요하겠지만 그 집안
문위기 역시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보고 듣는 것이 음악이요 그림이라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머리가 발달하고 관심도 그런 쪽으로 많아질 것이다.
아이들은 그게 마치 자기 숙명처럼 인식되어 당연히 그 길로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
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인품, 엄마의 심성, 부모의 인생관 그리고 교육, 생활 수준 등 수많은 요인
들이 그 집안 분위기를 좌우할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가 인생을 어떻게 보내고 있으며 어떤 자세로 살고 있고, 또 자기가 하
는 일에 얼마나 긍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신세타령이나 하고 자기 하는 일에 대해 불평불만이나 늘어놓
는다면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둡고 어려운 것으로, 불만이나
늘어놓아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기 하는 일에 긍지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나막신 장수이지만 너는 벼
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자극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뜻이겠지만, 이걸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아
버지가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아버지일수록 자기 하는 일이 얼마나 싫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과장해서 늘어
놓길 잘하는데. 그래도 죽지 못해 하는 것은 오직 너희들을 위해서라는 걸 인식시키
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죄책감을 자극하여 언젠가는 아비
하는 일을 집어 치울 수 있게 해 달라는 애원이요. 협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다고 아버지의 희망대로 아이들이 자극을 받아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오히려 심리학자들은 어린 가슴에 일찍부터 인생이 힘들다는 것을 심어줌으로써 삶
에 대한 자신을 잃게 만들어 공부는 커녕 자포자기하여 '될대로 되라'의 인생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사는지 아이들은 아버지 등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는 자세가 아이들의 자세를 결정한다. 남들 보기에 시원
찮은 직업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할 것이다.
단심가(丹心歌)가 태어나기 까지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라는 이방원의 "하여가"헤 대하여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라는 단심가로 무너져 가는 고려의 신하로
서 충정을 보이며 선죽교에 피를 뿌린 포은 정몽주(1337~1392. 충숙왕6년~공양
왕4년).
그의 대쪽 같은 절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몽주가 13살 되던 ㅐ의 일이다. 그의 외숙부는 어린 조카를 귀여워하고 예뻐했
지만 가르침에 있어서는 늘 엄격했다. 어느 날 외숙부는 어린 정몽주의 담력과 일
에 대한 태도를 시험하기 위해 늦은 밤에 방으로 불러서 콩자루를 주며 말해다.
"뒷산에 올라가면 언덕에 죽은 시체들이 많은데 그 입속에 콩 한 알씩을 넣고 오
너라."
외숙부는 정몽주가 진짜 산으로 올라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지름길로 산에 먼
저 올라가 누워서 시체인양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린 정몽주는 외숙부의 명령을 지
키기 위하여 무서움을 꾹 참고 산에 올라 누워 있는 몇 구의 시체에 콩을 한 알씩
넣었다.
이내 외숙부의 차례가 되었다. 정몽주는 콩을 하나 집어 외숙부의 입안에 넣자 외
숙부가 큰소리로 말했다. "한 알 더!"
그러자 정몽주는 전혀 놀라는 기색없이 외숙부의 따귀를 때리며 호통을 쳤다.
"이놈, 우리 외숙부님께서 쿙 한 알씩 주라고 했는데 네놈이 무엄하게도 또 달
라는 것이냐!"
외숙부는 무서움을 이기고 명령을 끝까지 지켜 낸 정몽주의 성실함과 재치에 크게
감탄했고 어린 정몽주가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쳤다.
어린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백지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과 같다. 이것은 곧 어릴
때의 교육이 아이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 비난하는 것 배우며,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 싸움질만 하
게 된다. 관용속에서 키운 아이 , 참을성을 알게 되며,격려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감
을 갖게 되고,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공정한 대접 속에 자란 아이, 올바름을 배우게 되며, 인정과우정 속에 자란 아이, 온
세상에 사랑이 충만함을 알게 된다.
구운몽과 윤씨부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구운몽을 쓴 작가이자 학자로서 최고의 직위인 정 2품
대제학을 지냈던 서포 김만중(1637~1693). 대학자 율곡 이이에게 신사림다, 명필가
석봉 한호에게 떡장수 어머니가 있었듯 그의 명성 뒤에ㅐ 는 윤씨 부인의 헌신적인 뒷
바라지가 있었다.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직한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윤씨
는 병자호란 당시 임신 중이엇는데.전란 중에 남편이 순직하자, 다섯살 짜리 아들을
데리고 강화도를 빠져나와 옥동자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김만중이었다.
김만중의 잡안은 광산 김씨 명문가 집안이었기에, 윤씨 부인은 두 아들이 어버지 없
이 자라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을 하면서 자식들을 정성껏 키웠다. 궁색한 살림에도
자식들의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앗고, 살 수 없는 책은 빌려다가 직접 손으로 베
껴 주기도 했다. 또 소학, 사략, 당시 등은 직접 가르치기도 했으며, 혹 자식들이 잘못
한 일이 있으면 바른길로 가도록 엄하게 야단쳤다.
윤씨 부인이 집에서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사려 깊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여름에는 발을 내리고, 겨울에는 병풍을 쳐서 얼굴을 가린 채 글을 읽게했다고 한다.
집안 문중의어른들이 모자지간에 내외하는 것도 아닐진대 어찌 그렇게 하는가 하
고 이유를 묻자. 부인은 "문중에서 귀한 이 아이들을 나라의 동량지재(동로 키워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굴을 가리는 것은 아이들이 글을 읽다가 잘못 읽게 되면 저도
사람인지라 얼굴에 노기를 띠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은 걱정하는 어미의 모습
에 비굴하게 행동할까 두렵고, 또 글을 잘 읽게 되면 제 얼굴에 웃음을 띠게 될 것
이고 그러면 이이들이 아주 잘 하는 줄 할고 방자하게 될까 걱정이 되어 내 얼굴 모
습을 지식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홀어머니의 극진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김만중은 14세때 진사 초시, 1665년(현종
6년)에는 장원급제를 하였지만 1687년 대제학으로 있으면서 희빈 장씨 일가 비난과,
숙종의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다 유배되어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유배지
남해에서 김민중은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지었
고, 인현왕후의 생애를 유사하게 그린 [사씨 남정기]를 지었다. 그후 숙종은 1698년
관직 복권과 1706년에는 효행에 정표를 내렸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미국의 법률가 웰레스(W.R.Wallace. 1819-1883)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남자는 강하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을 하지만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들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첨병들이다.
They say that man is might
He governs Iand and sea.
For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Is the hand that rules the world.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를 교유시킨다는 태교(胎敎)가 있었고 최근에는 의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즉 초음파로 보느 태아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화를 내거나 불안할 때는 태아도 움직
임이 둔해지며 움츠려 들고, 어머니가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는 활기가 있지 않은가.
예로부터 어머니의 자녀 교육에 대하여 맹자 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와 단기
지교(團機之敎)가 많이 인용 되어 왔다. 삼천지교란 맹자 어머니가 자식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길 맹모삼천(孟母三遷)을 두고 하는
말이고, 단기지교는 유학 가 있던 맹자가 힘든 공부를 견디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베를 칼로 끊어 버리고서 놀라 서 있는 맹자에게,
"네가 학문을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는 것과 같다. 네가 학문을 그만 두면
다른 사람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듯이, 나 역시 베를 짜다
그만 두면 남의 집 가정부호 살 수 밖에 없다."
고 훈계한데서 유래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느 것은 남자이지만바로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이다. '베갯머
리 송사(訟思)에 이겨낼 장사 없다.' 고 하듯이 잠자리에서 아내가 속삭이는 말은 영
향력을 크게 미친다. 그래서 '장수를 쏘아 맞추려면 그가 타고 있는 말을 먼저 쏘아
야 한다(射人先射馬)' 는 말처럼 상대방에게 청할 일이 있으면 우선 그 부인을 공략
하라는 것이 비지니스 세계의 교과서 같은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어머니, 여자의 힘! 바른 몸가짐, 올
바른 처신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에게 지금 간병(看病)은 필요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후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레미제라불]의 작가 빅토르 위고
는 어떻게 그토록 유명하게 되었을까? 그에 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감도시킨다.
빅토르 위고가 소년 시절에 어머니가 폐혐에 걸려 위독하게 되었다. 어머니느 옆에
서병간호를 하고 있느 위고를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부르고 나서.
"이제껏 내 간병 때문에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은 없느냐?"
"........."
"일전에 황제이 동상조각에 헌시(獻詩)를 공모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시를 써
서 응모를 했느냐?"
"아직 간병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네 간병을 받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있어 위대한 시인이 될 운이
여기에 와서 그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폐렴에 걸린 것도 운, 네가 시인
이 될까 말까 하는 시점인 여기까지 와 있는 것도 운이 다.
나의 폐렴 때문에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느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의 말씀에 감동한 위고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몃서 밤을 세워 시를
썼고 후에 황제의 동상 좌대에는 위고의 이름과 詩가 영원히 조각되어 세계에 알려
지게 되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느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있
다면, '수단을 중시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위고' 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수단!
노력을 먼저 하면서 운을 쫓지 않았던 사람이 위고이다. 후세에 이름을 남길 시인이
될 운이 위고에게 있었지만, 이 운은 위고의 노력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부착물에 지
나지 않는다.
죽을 결심을 하면 이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없다느 성현의 말씀대로, 위험에 처하면
자신의 몸을 버려서 자식에게 훈계하는 어머니, 죽음을 느낄 정도로 몸서리쳐지는 사
랑이 내 눈앞에 있지 않는가.
궤변 엄마
교육학자들은 아이들의 마음이며 성격, 진로 그리고 인생관이 정립됨에 있어 가정
환경과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란다고 다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대서 다 훌륭하게 자라진 않는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오진 않는다. 백 마디 말보다 아
이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집 환경인데 누구나 그 소중함을 알면서도 행
동은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모르는 숙제가 있어 엄마에게 물으면 일단 문제를 읽고 나서 "글쎄 옛날에 배
우긴 했는데..." 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는 다 아느 것이었는데....."라며 아이의 숙제를
슬그머니 밀어버리거나,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다 잊어버렸어." "네가 학교에서 선생
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좀 듣지...."라면서 뭐든디 결혼했기 때문에 잊어버린 양 말하
는 엄마도 있다.
또 아이가 그릇을 깨면 "그래서 내가 누누히 말했지. 조심하라고 말야." 라고 잔소리
를 하면서도 정작 엄마가 그릇을 깰 때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이것은 낡았
으니까...." "금이 가 있던 거니까....." 라고 말한다. 가끔은 깨진 조각을 들고서 진지하
게 "이것은 깨질 운명이었어." 라고 이유를 갖다 붙인다.
용기 있는 아이가 엄마에게 항의를 하면 엄마는 지지 않고 "그런 말은 어른이 되고 나
서 해!" 하며 억압적인 말로 아이들이 입을 막아 버리기도 한다.
큰 재목으로 자라기 위해선 우리 한세대에서 이루어 지는 게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 가문의 전통이 큰 재목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지 않는다. 그 중심에 엄
마가 앉아 있다. 앉을 좌(座)는 두 사람이 땅 위에서 마주 본다는 뜻인데 아버지는 서서
일하고 엄마는 앉아서 기다리는 가정이어야 아이가 안심이 되고 안정이 된다. 한데 요
즈음 엄마는 너무 바쁘게 서성댄다. 바쁘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 엄마의 눈과 아이의 눈이 편안한 자세로 교류가 될 수 있게 해
야 한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설령 났기로 소니 그게 용노릇을 옳게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냐 하면 아는 게 개천 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다.
"흉보면서 닮는다." 는 말이 있고, '딸이 제 어미 팔자를 닮는다.' 는 말을 상기하여 배
우고, 조심하고 솔선수범하는 생활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에 놀란 아이
어떤 일에 크게 어려움을 겪었거나 혼이 난 경우 그에대한 경험을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에 놀란 아이는 겁이 나서 물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하고, 개에게
한 번 무리고 나면 개를 겁내기 마련인 것과 같다.
'삼국지' 의 촉나라 군사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리고 위나라와
의 결전을 위해 싸움터로 나갔다. 그는 위나라의 사마중달(司馬仲達)을 계략을 써
서 여러 번 속였기에 중달은 공명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갈공면 같은 기재(奇才)도 오는 백발과 병마를 방패로 아무리 막아도 어
찌 할 수 없었던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54세의 나이로 병에 걸려 천수를 다했다.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중달은 그것 엮시 제갈공명의 계책으로 알
고 군대를 거두어 갑자기 후퇴 하였고 백성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하였다." 고 겁 많은 중달을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달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의 계책이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으련만 죽은 사람의 계책인데 어
떻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말했다 한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하고, '땔볕에 놀란 소는
달빛만 봐도 헐떡거린다.'느 말이 있다.
하지만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와 유사한 일을 만나면 '밀려 오는 밀물이 소용
돌이 치며 들어와 해변의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평정을 되찾듯' 어려움을 극복하며
깨끗하게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이 있는 것이다.
L.G 그룹 구본무회장이
"세계화 시대에서 세계 우량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바탕으로 전공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을 갖어야
한다. 고 강조하듯이, 부모는 자식에게 어릴 때 부터 실패 경험 보다는 가능한 많은
분야에서 '작더라도 앞으로의 인생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성공 경험' 을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性은 자기 문제다
애들 방 청소를 하는 중에 누드 사진이나 에로 잡지가 발견되었다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이며,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실신한 엄마도 있을 것이고, 녀석이 이렇게 자랐나 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별 생각을 다하여 아이보다 온갖 환상을 갖게 되지 않는가.
'요즈음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늦잠자는 이유가.......!'
'자질구레한 걱정이 모두 이 탓일 거야.'
생각이 이쯤에 미치고 보면 아이가 갑자기 이상하게 보이고, 이대로 뒀다간 아이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등 생각을 비약하면서 온갖 걱정이 다 들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 잡지를 어떻게 한다.....'
그 나이에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엄마라면 그 잡지를 그
냥 두고 나올 것이고, 이런 걸 봐선 안된다고 경고를 하는 엄마는 아예 갖고 나올 것
이다. 또 걱정은 되지만 이건 아이의 프라이버시니까 못 본척하고 그대로 둘 수 밖에
없다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편지를 남겨 둘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이럴 때 정신 심리학자들은 '제자리에 다시 놓아 둬라.' 라고 권한다.
당 엄마가 봤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 위치를 틀리게 놓아 두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이 잡지를 보았다. '안돼!' 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엄마가 알고 있다는
것만은 명심하기 바란다. 나머지는 네 판단에 맡긴다.'
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를 방목해도 목장에는 울타리가 있지 않는가. 일정한 테두리 내에서 소들은 자유다.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기도 하고, 물을 찾아 옮겨 가고, 때론 싸우고, 달리고 혹은 누워
뒹굴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엔 울타리가 있다. 목동은 저만치 언덕에 앉아 있지만 울타
리 안 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지켜보고 있지 않는가.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도 이
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가까이서 이를 직접 제시, 제지하는게 아니고 일정한 범위내에서 자율성을 주되 어느
한계는 넘지 못하게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나 아이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그 마음 씀씀이를 멀리서 높이서 그리고 자신들 등
뒤에서 느낄 때, 아이들은 안전하게 보호 받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부모에 대한 신뢰
감이 생기게 될 것이다.
性에 관한 한 더욱 그럴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에게 맡겨야겠지만 긍극적으로 성
은 자기 문제가 아닌가. 인류는 유사 이래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왔다. 우리도 그렇
게 해 왔고 자식이라고 못하리란 법도 없지 않는가.
고민도 있을 것이고 불안도 많겠지만 누구나 그런 번민과 갈등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
지 않는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성적 충동을 발산할 수 있도록 운동이나
등산을 권하고 여러 가지 청소년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라는 전문가들의 권유를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먹통의 눈(雪)
우리가 알고 있듯이 먹, 벼루, 붓 그리고 종이를 문방사우라고 한다. 이 중 하나인 벼
에는 먹을 가는 바닥과 먹물을 모아 두는 깊은 곳으로 나뉘어 있다.
먹물과 관련지어 '먹통의 눈' 이라느 말이 있는데, 학교 교실에 한 사람의 불량 학생이
있으면 차례로 그 영향을 받아서 하나, 둘 불량 학생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오염되는 현
상을 바유한 말이다. 본래의 눈으로 돌아갈 수 없고,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고,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는 막통의 눈, 한 번 그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만다는 의미이다.
여름 방학이 지날 때까지는 착실했던 학생이 갑자기 부모, 선생, 친구에 대한 말투나 복
장의 변화가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거친 말투, 혼란스러운 복장은 동급생들 자신도 모
르는 사이에 물들어 간다.
순백의 눈은 먹통에 담는 그 순간부터 까맣게 물들오 간다. 서양속담에 '개무리에 들어
갔다면 짓거나 짓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꼬리 만은 흔들어야 한다.' 는 말이 있듯이 먹
통의 눈과 동급생이라는 것이 괴로움의 시작인 것이다.
나쁜 사람과 어울리게 되면 주위 친구들은 그 속으로 끌어 넣는 결과가 되기 쉬울 것이
고 직장 내에서도 '먹통의 눈' 이라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겠다.
먹통이란 건축 현장에서 줄을 반듯하게 긋거나, 재목의 자를 위치, 구멍 뚫을 위치를
정해 주거나, 수직을 볼 때 두루 요긴하게 쓰이는 연장으로 목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많이 쓰이는 전통도구이다. 먹통은 실을 감아 주었다 풀어 주었다 하는 둥근 실패와,
실에 먹물을 칠해 주는 먹물통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명주나 목화에서 빼낸 실은 먹물
통을 지나면서 먹물에 젖어서 풀려 나온다.
먹물이 실에 알맞게 먹도록 하기 위해 솜을 먹물 통에 넣고 항상 마르지 않고 흐르지도
않도록 먹물을 잔잔하게 부어 놓았기 때문에 휴대에도 편리하다.
구멍으로 실 끝이 다시 말려들지 않도록 실 끝에 나무토막을 맸고, 그 나무끝에서 꽃아
놓은 쇠침을 마름질한 나무에 박아 실 끝을 고정시켜 놓고 먹통을 당기면 먹물 머금은
실이 졸졸 풀려 나온다.
직선을 그을 때는 다른 한 점까지 먹통을 끌고 가서 실을 손끝으로 눌러 고정 한 다음
활시위처럼 실의 중간을 당겼다 튕겨 놓으면 선명한 직선으로 먹줄이 놓아지는 것이다.
그 직선이 중심선일 때는 먹통 밑바닥의 꽂이에서 죽필(竹筆:댓조각을 칼처럼 만들어
그 끝을 붓처럼 쪼개어서 먹을 찍어 붓처럼 쓴다.)을 뽑아 세 번 가로로 표시하고, 마감
선일 때는 두 번 한다.
먹통 가운데는 쇠고리가 박혀 있어서 거기에 다른 실을 매달아 수직을 보기도 하는데
이 때 먹통은 수평으로 놓이게 된다.
바른 말(諫言)을 하는 친구, 좋은 말만 하는 친구
얼마 전부터 휴양지로 알려진 무주구천동에서는 사라져가는 '반딧불이' 의 서식지를
보호한다 하고,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인공적이나마 번식을 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서울시는 남산 자락에 인공번식된 반닷불이 서식지를 조성하는 등 이곳 저곳에서 초
여름밤의 추억거리를 찾게 하려고 노력들이다.
이 반딧불이는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민물 다슬기'를 먹고 사는 곤충으로 여름밤
에 반딧불이와 물은 잘 어울리는 좋은 사이다. 한적한 시곡집 마당 평상에 앉아서. 앞
개울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와 시원한 물소리를 듣던 여름 초저
녁을 연상해 보자. 그리고 있노라면 '물과 불' 이라는 다른 성격체가 잘 어울리는 것은
자연계의 묘미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게 된다.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는 "세 가지를 공감할 수 잇는 친구를 가져야 한다" 면서 "진정한 친구란 같
이 충고하고,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는 사이이며 이 세가지 공감이 없으면 진정한 친구
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형편이 좋고 잘 될 때는 누구라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지마,
친구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같이 하기는 쉽지 않다. 신용할 수 없는 친구는 적보다도 나
쁘다." 라고 말하고 있다.
충고를 하는 것을 간언(諫言)이라고 하는데, 이 간언을 하는 친구나 부하가 잇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말만 하느 친구나 부하는 나 자신의 판
단을 흐리게 하고 현혹시킬 수가 있다.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와 부하를
갖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용서하는 마음
공자의 제자 한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올리면서 답답함을 말해싿.
"저는 선생님의 제자라는 말씀을 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 선생님의 그 소중한 가
르침이 몸에 남은 것이 없으니 고향에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배웠다고 어
떻게 말하면 좋겠습니까?"
"아! 그토록 오랫동안 공부를 하였는데도 잊었단 말인가? 그래도 괜찮다. 사람이
란 어느 누구라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고향 사람들이 공부를 하였느냐고 묻는
다면 전부 잊었다고 말을 하되 단 하나만 남아 있다. 고 말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 물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그것이 女변에 口를 쓰고 그 밑에 마음
心을 쓰는 자, 즉 용서할 서(恕)라고 말했고 그 의미를 깨달은 제자는 눈을 반짝이
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용서는 사람이 사람을 용서(恕)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큰 인물이라는 생각에
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타인의 실패나 결점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을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 내가 나를 용서하기는 쉬워도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옆에
서 차가 들어오면 본선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뜻으로 알고 브레이크를 밟아서 "자!
먼저" 라는 뜻을 보이는 것도 어찌보면 용서하는 마음이 아닐까.
왜 용서를 하지 않는가.
왜 웃는 얼굴을 하지 못하는가.
왜 남편(부인)을 용서하지 않는가.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성현께서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 가.
가족이나 아내를 감싸고 위하여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 것은 짐
승들도 하는 것이다.
남을 위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사랑이다.
톨스토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자동차 안에서는 말다툼을 하기가 쉽다고 한다. 그 안에서는 자시이 드러나가가 쉽
기 때문인데 방자함이 쉽게 표출되어 화해하기 또한 어렵다. 철판과 유리판으로 된
제한된 공간은 자신의 방과 같은 분위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상대와
대립되어 상호 간에 피곤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피로는 상대를 하찮게 여기게
되어 결국에는 작은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일본의 정치가로서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로 존경받고 있는 A씨가 있다. 그도 젊
은 시절에는 그렇지 못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한 토론회에서
"쉽게 화내고 큰 소리로 사람을 꾸짖는 것. 이것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해서
는 안되는 행동이다. 윗사람은 사람을 꾸짖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멤버 중에 한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일어나 A씨에게 다가와 뒤
에서 머리를 큰소리 나게 때렸다.
놀란 A씨가 "뭐야. 내 머리를 때리다니!" 라며 찻잔을 집어 던지려고 했다.
그 때 되돌아온 말으 이런 것이었다.
"A씨! 그래! 자신의 감정조차도 조절하지 못하면서 국가를 위해 애쓰자고 맹세를 하
자니요. 머리 한 번 맞았다고 경솔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그릇이 작다는 것을 알
겠군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A씨는 두 손을 모아 사과를 했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유
명해진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화가 날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수를 세는 것이고, 그래도 화가 날 때는 20까
지 센다." 는 글의 말을 음미해 보면 재미있게 비유가 생각난다.
요즘 아이들의 성격이 거칠어진 것을 두고 어떤 학자는 모유를 먹지 않고 우유를 먹
고 자라서 소같이 거칠어졌다고 주장하듯, 요즘에는 주판알을 튕기면서 수를 세던 여
유를 잊어버리고 전자계산기를 누르는 세대가 되어서 성질이 급해지고 참을성이 적
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감정을 자제하는 자기 관리가 절실히 필요하겠다.
다시 생각해 보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개 부모들이 교제를 반대하면 점점 더 사랑이 깊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 심리학자가 그런 현상을 알아보려고 연애 중에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았더
니 실제로 부모가 반대하는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애정 강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몇 개월 후에도 부모들의 반대가 심할수록 애정이 더 깊어진 것으로 나타
났다고 한다.
이렇게 부모들이 반대할수록 애정이 더 깊어지는 현상을 쉐익스피어의 비극[로미오
와 줄리엣]의 사랑에 빗대어 심리학자들은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Romeo & JulietEff
ect)라 부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가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채 끝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열정을 가지고 평생을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들이 죽지 않고 결혼해서 살았다면 그들도 부부 싸움과 권
태기를 경험하고, 혹시 상대방이 외도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전문가들은 하나는 반발심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경
우 느끼는 긴장과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
들보다 자기의 가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자기 가정에 만족하는 사람
들은 굳이 부모와 인연을 끊으면서까지 연애에 몰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가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부모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빨리
부모로부터 벗어나 일찍 결혼하려고 하기 때문에 부모가 연애를 반대하면 자녀들은
오히려 더 반박한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는 평소 자녀들이 부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경우
부모가 자녀들의 이성교제나 결혼을 반대하면 오히려 사랑이란 불에 기름을 붓는 결
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사랑은 뜨거운 국과 같다. 국이 뜨거울 때는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없듯이 사
랑도 뜨거울 때는 그 참맛을 알기 힘들지 않겠는가. 자녀들이 올바른 성장을 하기 위
해서는 자녀들과 평소에 대화를 자주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하여 교제를 반대할 것인
지 허락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르쳤다, 한다 그리고 안다(知)의 차이
한 학생이 친구에게 애완견 자랑을 한다.
"우리 집에 예쁜 개 한 마리 있는데 나를 참 잘 따르거든, 그래서 1년 전부터 그 애에
게 '학교종' 이란 노래를 가르치고 있어."
"정말? 너 거짓말하는 것 아냐! "
"정말이야 틀림없이 가르치고 있단 말야."
며칠 뒤 예쁜 개가 있다는 집에 친구가 놀러 와 현관에서 꼬리 치며 반기는 개를 보자
마자 '학교종' 을 노래해 보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나 친구 아이의 닥달에도 불구하고
개가 노래를 부를리가 만무하니 당연히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말은 '거짓말쟁이' 라
는 험한 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쟁이라는 욕설을 들은 아이는 얼굴 하나 붉힘없이 오
히려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내가 왜 거짓말쟁이냐? 내가 언제 예쁜 우리 개에게 학교종이란 노래를 가르
치고 있다고 했지 노래를 한다고 했니! 가르치기만 하면 한다 라고 지레짐작한 네가
잘못이지."
우리는 내가 상대에게 뜻한 바를 가르치거나 말을 하면 그것이 곧바로 상대에게 받
아들여져 행동으로 변할 것이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이 행동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바라는 희망사항이 상대에게 그대로 전해
져 뜻한 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 와 오늘 할 일을 다음으로 미
루는 '내일병' 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산업훈련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안다(知)'에 대한 의미를 음미해 보
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안에 대하여 들은(聽) 적이 있거나, 본(見)적이 있
으면 '안다'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쉽게 인정하는 우(愚)를 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것 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 서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최소한 안다의 의미는 그 사안에
대해 '할 수(能) 있거나, 남에게 가르칠(敎) 수'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평가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만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사람에게서 교육의 결과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無)과 같다.' 는 칸트의 교육론 같이 일생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가
르치고 배우되,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말하고 가르치며, 다음으로 미루는 것 없
이 즉각 좋은 방향으로 행동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마법의돌
우리는 학창 시절 배우는 많은 교과목중에 일부 교과목에 대해 '왜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배워야 할까?'하는 의문을 갖고 배움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또 남자들은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을
때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제자리 서, 경례 등 제식훈련을 지겹도록 시키면서 군인의
기본인 사격훈련은 왜 안하는가?' 하고 불평을 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 밤 한 무리의 유목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빛이 그들 모두를
에워쌌다. 유목민들은 어떤 천상의 존재가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을 알았다. 큰 기대를
갖고 그들은 자신들의 위해 특별히 준비된 천상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마침내 공중에서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너희는 지금부터 가능한 한 많이 돌을 모으라. 그것들을 너희 배낭 속에 넣으라. 그런
다음 그것을 짊어지고 하루동안 걸으라. 내일 밤이 되면 너희들은 그 돌 때문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것이다."
천상의 존재가 떠나간 뒤 유목민들은 서로 실망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와 장수를 가져다 주고 세상에 온 목적을 실현시켜 줄 위대한 우주적 진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천상의 존재가 보여준 찬한한 빛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들 각자는
투덜거리면서 마지못해 몇 개씩 돌을 주워 배낭에 넣었다. 유목민들은 배낭을 지고 하룻
동안 걸어간 뒤 밤이 되자 천막을 쳤다.
그리고 배낭에 들어 있는 돌들을 꺼냈다. 놀랍게도 그들이 모은 돌들은 모두 다이아몬드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다이아몬드를 갖게 되어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 더 많은 돌을 주워
모으지 못한 것이 너무 슬펐다.
독일의 철혈수상 비스마르크의,
"내가 젊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 마디뿐이다. 젊은 이들이여 일하라! 좀 더 일하라!
끝까지 일하라!"
는 외침을 자기의 이상으로 설정하자.
무슨 일이라도 회피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은 젊은이들의 가장 소중한 자본이며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마패이다.
우정
한 소년이 시골 호수에서 헤엄을 치던 중 발에 쥐가 나 위험하게 되었다.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은 한 농부의 아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그를 구해냈다. 그
후 그들의 우정은 깊어 갔다.
시골에 놀러 온 소년이 생명의 은인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었다니 의학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 소년은 그의 부모와 상의하여 의학공부를 다 마칠 수 있도록 시골
소년을 힘껏 도왔다.
그가 바로 페니실린이라는 새 약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었다.
그는 194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가 구해 주었고 그를 도와준 도시 소년도 크게
장성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그만 폐렴으로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다.
그때 플레밍박사가 발견한 페니실린이 급송되어 그를 다시 살려낼 줄이야.
플레밍 박사가 두 번이나 살려 낸 사람은 바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