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이는 명사를 의존 명사라고 한다. 의존 명사도 하나의 단어이므로 띄어 쓴다. 띄어쓰기에서 자주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의존 명사이므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의존 명사는 외워두는 것이 좋다.
수효나 분량 따위의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는 단위성 의존 명사라고 한다. ‘쌀 한 말, 수십 년, 쇠고기 한 근, 굴비 한 두름, 북어 한 쾌, 고무신 한 켤레, 돌 한 개, 차 한 대, 오백만 원’에서 ‘말’, ‘년’, ‘근’, ‘두름’, ‘쾌’, ‘켤레’, ‘개’, ‘대’, ‘원’ 따위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려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삼학년’, ‘오층’, ‘10월 9일’, ‘16동 502호’ 따위이다. 여러 가지 문장 성분으로 두루 쓰이는 의존 명사는 보편성 의존 명사라고 하는데, 이에는 ‘때문’, ‘분’, ‘데’, ‘것’, ‘바’, ‘만’ 따위가 있다. 문장에서 부사어로만 쓰이는 의존 명사는 부사성 의존 명사라고 한다. ‘먹을 만큼 먹었다’의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의 ‘대로’, ‘못 본 척 지나갔다’에서 ‘척’, ‘먹는 김에’에서 ‘김’ 따위가 있다. 문장에서 서술어로 쓰는 의존 명사는 서술성 의존 명사라고 하는데, ‘최선을 다할 따름이다’, ‘일만 할 뿐이다’에서 ‘따름’, ‘뿐’ 따위이다. 문장에서 주어로만 쓰는 의존 명사로는 ‘할 수가 없다’에서 ‘수’, ‘말할 나위가 없다’에서 ‘나위’ 따위인데, 이를 주어성 의존 명사라고 한다.
그런데 동일한 어사가 의존 명사로도 쓰이고 조사 또는 접미사로도 쓰이는 경우, 어미의 일부분인 경우가 있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의존 명사이면서 조사인 것으로는 ‘대로, 만큼, 지, 만, 뿐’ 등이 있으며, 접미사와 혼돈되는 것으로는 ‘간, 님, 개, 들, 차, 씨’ 등이 있다. 어미의 일부와 구분해야 하는 것으로는 ‘데, 바, 듯, 지’ 등이다. 수필가들이 주로 띄어쓰기 오류를 범하는 것은 이런 경우인데, 자주 쓰이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 ‘지’
(a)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십수 년이 지났다.
(b) 남편의 병세가 더 나빠져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a)에서처럼 ‘지’가 ‘-ㄴ, -은’ 아래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 즉 시간의 길이를 나타내는 경우는 의존 명사로서 띄어 쓴다. (b)에서는 이런 경우가 아니다. 어미로 쓰이는 ‘-ㄹ지, -는지’ 형태다. 요컨대, (a)에서 ‘-지’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하고, (b)에서는 ‘떠나(어간)+ㄹ지(어미)’로 분석되는 형태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의존 명사는 명사의 일종이므로 단어이고, 용언(동사, 형용사)의 형태 활용에서 변화되는 부분(형식 형태소)인 어미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a)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십수 년이 지났다.
(b) 남편의 병세가 더 나빠져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2) ‘만큼’
(a) 그 사람도 공부를 할만큼 많이 하였다.
(b) 그 사람도 그 여자만큼 공부를 많이 하였다.
한국어사전에 따르면, ‘만큼’은 의존 명사로서 용언 어미 ‘-ㄹ·-을·-ㄴ·-은’ 뒤에 쓰이어, ‘그와 같은 정도나 한도’를 뜻하는 말 또는 용언 어미 ‘-ㄴ·-은·-는·-던’ 뒤에 쓰이어, ‘그와 같은 내용이 근거가 됨’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체언이나 조사 아래에 붙어, ‘정도가 거의 비슷함’을 나타내는 부사격 조사이기도 하다. 의존 명사는 단어이니 띄어 쓰고, 조사는 붙여 써야 한다. 그러니 문제는 문맥의 의미를 따져서 어느 경우에는 조사이고, 어느 경우에는 의존 명사인가를 판단하는 데에 있다. 용언 아래에 쓰였다면 의존 명사이고, 체언 아래 쓰였다면 조사로 보면 될 것이다.
(a) 그 사람도 공부를 할√만큼 많이 하였다.
(b) 그 사람도 그 여자만큼 공부를 많이 하였다.
3)‘-대로’
(a) 너무 애쓰지 말고, 되는대로 살아 보기로 했다.
(b)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도생하였다.
(a)에서의 '-대로'는 '어떤 모양이나 상태와 같이'의 뜻을 가진 의존명사에 해당한다. (b)에서의 '-대로'는 '따로따로 구별됨을 나타냄'의 뜻을 드러내는 보조사에 해당한다.
(a) 너무 애 쓰지 말고, 되는√대로 살아 보기로 했다.
(b)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노력해 보자.
4) ‘-만’
(a) 크기가 주먹만하다.
(b) 너는 대학을 다닐만하다.
(c) 한 달만 있다가 오너라.
(d) 미국으로 떠난 지 한 달만에 돌아왔다.
‘-만’을 한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a)는 문맥으로 보아 ‘하다’, ‘못하다’와 함께 쓰여 앞말이 나타내는 대상이나 내용 정도에 달함을 나타내는 보조사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다’는 형용사이다. 그러니 ‘주먹만 하다’가 맞다. ‘콩알만하다’의 띄어쓰기도 ‘콩알만 하다’로 띄어 써야 한다. (b)의 문맥으로 보아서는 ‘-만하다’를 하나의 단어로 보아야 한다.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보조형용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c)의 ‘-만’은 ‘화자가 기대하는 마지막 선’을 나타내는 보조사이고, (d)의 ‘-만’은 ‘동안이 얼마간 계속되었음을 나타내는 말’로 의존 명사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써야 바르다.
(a) 크기가 주먹만√하다.
(b) 너는 대학을 다닐√만하다.
(c) 한 달만 있다가 오너라.
(d) 미국으로 떠난 지 한 달√만에 돌아왔다.
5) ‘뿐’
(a)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을뿐 다른 일은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b) 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힘들었다.
(c) 입에 풀칠하기조차 쉽지 않았을뿐더러 집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갔다.
(a)에서 ‘뿐’은 ‘오직 그렇게 하거나 그러하다는 것’ 또는 ‘다만 어떠하거나 어찌할 따름’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다. 그러므로 띄어 써야 한다. (b)의 ‘뿐’은 ‘그것만이고 더는 없음’ 또는 ‘오직 그렇게 하거나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보조사다. 조사는 단어이되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c)에서는 ‘-ㄹ뿐더러’가 ‘어미 어떤 일이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 다른 일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다. 어미는 단어가 아니므로 어간에 붙여 써야 하나의 단어가 이루어진다.
(a)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을√뿐 다른 일은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b) 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힘들었다.
(c) 입에 풀칠하기조차 쉽지 않았을뿐더러 집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갔다.
6) ‘간(間)’
(a)부모와 자식간에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b)배든지 사과든지간에 과일은 다 좋아해.
(c)이틀간 경주에 없었다.
‘간’은 의존명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접미사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의미에 따라 구별된다. ‘사이’라는 의미를 가질 때, 또는 앞에 나열된 것 가운데 어느 쪽인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낼 때는 의존 명사다. ‘기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서 동안의 뜻’을 가질 때에는 접미사에 해당한다.
(a)부모와 자식√간에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b)배든지 사과든지√간에 과일은 다 좋아했다.
(c)이틀간 경주에 없었다.
7) ‘상’
(a)사실상, 외관상, 절차상, 인터넷상의 장애, 도로상의 문제
(b)지구상의 생물은 다 소멸할지 모른다.
‘상’이 ‘위’의 뜻을 가질 때에는 의존 명사이고,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과 같은 추상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구체적인 또는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는 접미사이다.
(a)사실상, 외관상, 절차상, 인터넷상의 장애, 도로상의 문제
(b)지구√상의 생물은 다 소멸할지 모른다.
8)‘차’
(a)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간차에 그 여인도 만나 보고 싶었다.
(b) 묘사에 참여차 고향마을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a)에서 ‘차’는 ‘어떠한 일을 하던 기회나 순간’의 뜻을 지닌 의존 명사다. (b)에서 ‘차’는 ‘목적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접미사는 단어가 아니므로 앞말에 붙여 써야 한다.
(a)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간√차에 그 여인도 만나 보고 싶었다.
(b) 묘사에 참여차 고향마을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다.
9)‘듯’
(a) 떠날듯 가방을 싸더니 결국 하룻밤을 더 묵었다.
(b) 그 남자는 내 곁을 떠나듯 그 여인의 곁에서 또 떠나고 말았다.
(c) 비가 올듯하더니 해가 쨍쨍 내리쬐기 시작했다.
(a)에서 ‘떠나+ㄹ’이 수식어이므로 ‘듯’은 체언 가운데 하나일 텐데 대명사나 수사는 분명 아니므로 명사일 가능성이 짙다. 그런데 독립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므로 ‘행동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임’의 뜻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일 수밖에 없다. (b)에서는 ‘떠나듯’이 하나의 단어가 되어 말이 되려면 ‘떠나(어간)+듯(어미)’의 형태다. 용언(동사, 형용사)은 ‘어간+어미’의 형태를 갖추어야 단어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듯’은 ‘듯이’의 준말로 어미일 수밖에 없다. (c)에서 ‘듯하더니’는 ‘듯하다’의 활용형인데 ‘앞말이 뜻하는 사건이나 상태 따위를 짐작하거나 추측함’을 나타내는 보조 형용사다. 그러므로 띄어씀을 원칙으로 하되 붙여 써는 것도 허용한다.
(a) 떠날√듯 가방을 싸더니 결국 하룻밤을 더 묵었다.
(b) 그 남자는 내 곁을 떠나듯 그 여인의 곁에서 또 떠나고 말았다.
(c) 비가 올 듯하더니 해가 쨍쨍 내리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