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정식을 앞에 두고- 금주 일지 47일(2022.10.30.)

복어 정식을 앞에 두고- 금주 일지 47일(2022.10.30.) 오늘은 독서 모임을 하는 지인들과 영광 물무산 나들이를 하였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물무산 행복숲 맨발 황톳길을 걷기로 하였다. 두어 차례 다녀온 바가 있는 나로서는 3대가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산이라고 여기며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이었지만 자잘한 얘길 나눌 기회가 적었던 터라 산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발하였지만 크지 않은 산인지라 정말 가볍게 여겼다. 그래서 가장 길고 가파른 코스를 선택하였다. 그동안 가본 적이 없는 ‘물무정을 지나는 코스였다. 제법 땀이 날만큼 산맛이 나는 좋은 숲길이었다. 일행들도 물무정에 올라 영관의 전경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무려 4시간 30분에 걸친 걷기였다. 물론 유명한 질퍽질퍽한 황톳길 0.6km, 마른 황톳길 1.4km 길을 포함하여 간간이 새들의 노래도 듣고, 나뭇잎들의 속삭임도 엿들으며 천천히 숲길을 음미하듯 걸으니 시간은 4시간이 넘게, 거리는 10km가 넘을 만큼 상당하였다.물무정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영광의 유명 막걸리를 한 잔 마시면 영광의 정취에 더해 마음속까지 취할 것 같다는 생각을 속으로만 꿀꺽 삼키며 마셨다.이윽고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복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식당에 들어서니 손님이 식당의 유명세에 어울리게 가득하였다.우린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복요리를 먹게 된다. 그것도 정식요리를 주문하였다니 기대된다. 특히 개운하고 시원한 복탕에 깔끔한 소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황금의 콤비였다. 복어와 관련한 소동파의 이야기가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소동파가 친구로부터 복어를 대접받고 한입 씹어 먹으면서 ‘아, 한 번쯤 먹고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也值得一死; 야치득일사)’라고 감탄했다”라는 이야기 말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맛볼 만하다는 말이니 좀 지나치지만 그래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담백하고 시원한 맛에 시원한 소주 한 잔 곁들이는 조합이란 생각만 해도 행복, 황홀 자체이다.정식을 주문하였으니 정한 순서에 따라 음식에 상위에 자리를 잡는다.복어껍질무침이 먼저다. 신맛이 나며 얄캉하고 쫄깃한 식감의 복어껍질에 먼저 소주 한 잔이 제격이었으나 나는 금주 중이다. 마음으로 삼키며 앞에 앉은 선배에게 한 잔을 권한다. 내가 같이 먹어줘야 술맛이 제대로 날 텐데 아쉬워하며 혼자서 홀짝 들이킨다.이어서 머릿고기+ 홍어+ 묵은김치 삼합이 나온다. 이 또한 훌륭한 소주 안주라. 앞에 앉은 선배에게 또 한 잔 권했다. 내 땅소주로 잔을 부딪쳐주면서 맛나게 드시라고 했다. 왠지 소주잔이 쓸쓸해 보인다.거기에 김치메밀전병에 동태전, 복어 튀김까지 하나하나 술안주가 계속해서 상을 채워갔다. 아, 이럴 땐 한 잔 먹어줘야 하는 것이 예의 아닐까. 이 좋은 술안주를 놓고 맹물만 들이키는 것은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 안주들이 웃고 왔다 울면서 땡깡부릴 것만 같다. ‘이게 뭐냐고. 나를 두고 물만 마시느냐고!’ 그래도 내가 누군가. 이계양 아닌가. 하하와 ‘더 나아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질문에 응답으로 선언한 금주 아닌가. 등뒤에서 하하님들이 보고 있다. 그래. 기가 막힌, 죽어도 여한 없을 술안주가 눈앞에 있어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하하 이계양이어야지.마지막으로 하이라이트인 복지리가 큼지막한 냄비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다. 미나리와 익은 콩나물의 향과 냄새가 코끝에서 술맛과 함께 용솟음한다. 앞에 앉은 선배에게 술을 권하다 보니 한 병이 끝이다. 그래서 더 주문하려니 그만하란다. 혼자서 마시는 것이 암만해도 별맛 없는 듯하다. 나 때문, 나의 금주 때문인 듯하여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여기까지 참아왔는데 무너지면 안 된다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소리치고 있었다.이렇게 나의 금주는 또 한 고비가 47번째 고개를 용케도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