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여름이 뭐 이래요? 장마가 끝났다더니 어느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등어리에 자글자글 햇볕이 끓어야 들에 곡식이 야물어 갈텐데. 이따금 불어가는 바람이 어느듯 가을이 온 걸 실감합니다. 어제 밤에는 옅은 홋이불을 덮고 잤다니까요? 누렇게 시들거나 거무죽죽 타들어간 고추밭이 횅하니 마음이 좋지 않네요. 제대로 농사가 된 게 없는 거 같더라고요. 우리가 견디기 어렵더라도 여름은 역시 해가 과수밭이나 고추밭에 자글자글 끓어야 농사가 된답니다. 아직도 해가 질라면 한창 남았는데 공장에는 경쾌하게도 '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오네요. 띠도 띠도 띠도다도딩 ~ ♪♬피아노의 단음으로 이어질락말락하는 애절한 멜로디가 공장에 꽉차고 넘칩니다. 무슨 엘리제가? 우리 공장에서는 일과 시작과 마침을 엘리제를 위하여 라는 베토벤의 불후의 명곡을 가지고 쓰걸랑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마침과 시작 종(鐘)을 쳤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세련되어갑니다 그려. 하기사 청소차의 후진 벨소리도 이곡이지요?
요즈음 같이 해가 서산에 지기까지 한 뼘도 더 남았는데 하루 일을 끝낸데요. 베토벤이 섭섭해 할까요? 유쾌발랄한 불후의 명곡을 공장 문 열고 닫는 알람종으로 쓴다는 걸. 베토벤 영감이 속 좁은 사람이 아닐테니 노동자들을 위하여 엘리제가 쓰여진다면 그 영감도 좋아할 거예요. "베토벤 선생께서 그리 말씀하시더냐?" "아니, 제 생각입니다."
땀에 범벅이 된 가난한 노동자들이 글라인더를, 밀링 작업을 하던 손을 털며 옷을 훌러덩 벗고 샤워실로 들어가네요. 경쾌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어이쿠, 시원해라" 비명이 창문을 넘어서 들려옵니다. 노동의 기쁨 또한 그리 상쾌할 거라 여기는 건 착각일까요?. 뉘엿뉘엿 지는 햇볕이라고 깔보다간 혼납니다. 호랑이 장가 간다고 잠시 소나기가 뿌린 터라 후덥지근한 습기가 훅하니 들이칩니다. 이제 저마다의 승용차 시동을 요란하게 걸더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은 자기를 온종일 기다렸을 엘리제가 있는 집으로 갈테지요.
그럼 이제부터는 엘리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해요. 수박 하우스에서 종일 일하느라 지칠 법한데도 엘리제, 새댁은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뒤꼍 텃밭에서 시퍼렇게 독이 올라 푸르댕댕한 고추도 서너 개 따고 짙은 보라색 가지를 밥솥에 쪄내 시원한 우물에 간을 맞춘 가지 냉채를 차리고도 무언가 부족해서 뒷꼍을 돌아가 덩굴을 걷어서 야들야들한 호박 잎 새순을 따다가 된장을 끓이지 않겠어요. 그리고 부랴부랴 화장대에 앉아 입술에 연분홍 루즈를 그리고 옷매무새도 고쳐보겠지요. 마을마다 곱디고운 엘리제가 맛나게 차린 저녁 밥상의 구수한 냄새가 가득한 마당으로 검붉게 탄 건실하게 생긴 남정네가 들어설테고. 우리집 남정네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주 건실한 사냅니다. 하우스 농사 짓다가 서방님 퇴근에 맞춰서 저녁 차리랴 얼굴 단장 곱게한 엘리제가 수퍼우먼같네 그려. 곱디고운 엘리제가 행주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으며 배웅을 나왔는데도 곰살맞게 '잘 있었냐'는 둥 다정한 말은 커녕 방으로 들어가고마는 무뚝뚝한 사내의 등짝이 못나 보이네요.
사실 농촌마을의 저녁은 청솔가지에 불을 붙여 무쇠솥에 밥을 하는 게 제격이지요. 청솔가지가 어디 불이 잘 붙습디까? 눈물바람을 하고서야 겨우 불이 붙는 게 아니던가요? 무쇠솥에는 엘리제가 안쳐놓은 이밥, 쌀밥이라해야나요? 쌀 한 주먹, 그보다 더 너른 자리를 차지한 꽁보리가 풀숙풀숙하고 끓는 소리가 나면 엘리제는 마음이 푸근할테지요. 우리 엘리제는 서방님 입에 밥숫가락이 들어가는 게 그리 보기 좋더래요.
참 요즈음 처럼 더운 날에는 마당에 양은솥을 걸어놓고 밥을 할테지요. 아궁이에 솔가지나 참나무 삭정이를 분질러서 불을 때야 굴뚝을 타고 이내라고 하는 푸른 기운이 피겠지요만, 요즈음처럼 전기밥솥에 밥을 하면 정겨운 풍경은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녁무렵, 마을마다 밥하느라 나무를 때면 맨처음에는 짓푸른 연기가 나다가는 이내 푸른 기운이 잦아들고 말지요. 마을에 들어서는 동구에서 바라보면 집집마다 푸른 연기라고하기에는 아늑한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리는 걸 볼 수가 있는데 이걸 남기(嵐氣)라고 해요. 또는 이내라고도 하는데 국어사전을 보면 '해 질 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라고 풀어놓았더군요. 전기밥솥에다가 티브이 안테나, 쫑긋하고 귀를 세운 개명한 세상. 남기도 아득한 옛날 추억이어서 아슴하군요.
절 따라 엘리제가 분투노력하는 우리네 농촌 풍경을 더 들여다 보지요.
너른 마당에는 으례 들마루를 깔아놓았을테고. 밥상을 채린 엘리제는 서방님을 재촉합니다. 얼릉 밥 먹으라고. 그런데 이 화상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어매는 어데 가셌는고?' 서방님 자시라고 고등어 자반 한 토막 남겨 두었으면 얼릉 먹을 노릇인데. '건너마을 아재네 갔니더.' '머 할라꼬?' '내사 모르지. 밥이나 얼릉 먹으소' '남편한테 말하는 뽄새 보그라' 으이그 이놈의 화상은 와 안 잡아가는동 몰따. 이놈의 서방은 오만 참견 다 하느라 밥 먹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그놈의 간잽이 고등어 한 손 땜시 새댁은 가슴이 쫄아터지고 만다.
그예 때를 놓치고 만다. 웬 일로 서둘러 온 시어머니 눈이 흘깃 아들 밥상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간잽이 고등어 한 토막을 놓칠 턱이 없다. 후딱 밥 한 그릇을 퍼서 두 모자간에 겸상을 차린다. 남편한테 간고등어 한 손 맥이려고 분투노력한 보람도 없이 저녁상을 물린다만은 엘리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오늘도 남편은 잠자리에서 그 억센 손아귀로 자기를 안아 줄거라는 걸. 남들 보는 앞에서 여간 뚝뚝해 보이지만 잠자리에서 산맥처럼 너른 가슴에 안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남들이 볼까 종종걸음으로 뒤꼍으로 간다. 얼음보다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서 뒤집어 쓰면 온갖 시름도 고된 하우스 일도 잊어버릴테니. 텅빈 공장, 나는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물에 말은 밥 한 그릇에 텃밭에서 뽑아온 열무쌈에다가 고추를 된장에 찍어 뚝딱하고 설렁설렁 설거지까지 끝내고서 저녁 산책을 나서봅니다. 서울에서야 밤에 걷는 고수부지가 환상적이지만 해가 저물면 먹물을 부어놓은 듯 새카만 시골에서 밤마실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마냥 지 세상이려니 으름장을 놓던 여름 해도 저녁거미가 스물스물 밀려올 때면 꼬리를 내리고 서산으로 자취를 감춥니다. 해가 진 서쪽 하늘에서부터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은 장관입니다 그려. 비온 후에 노을이 더 황홀한 법인 거 알아요?
종일토록 화근내 나는 땅과 씨름했을 농부가 개울에 삽을 씻는 저녁, 보건소 지소 앞마당에 긴 그림자를 끌고 서있는 옥수수가 마치 미염공 관우장군이 은빛 수염을 쓸어내리는 한가로운 시골이 저물어 갑니다. 방죽을 따라 내 걸음도 설렁설렁 양반 걸음으로 따라 갑니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담갈색 개울 소리와 하얀 백사장이 더위에 지친 가슴을 씻어주듯 시원합니다. 바람따라 너울거리는 초록의 논에는 백로가 한가하게 저녁 밥을 잡숫고 계십니다. 미꾸라지 반찬이면 일품 요리겠지요. 끝간 데 모르게 펼쳐진 초록의 들녁에서 희디흰 백로를 본다는 것은 분명 호사입니다. 뛰엄뛰엄 역 에쓰자로 서 있는 백로는 섹시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세상은 '에쓰'자를 원하는데 백로는 '역에쓰'자라 아깝기 짝이 없습니다. 온통 섹시한 걸 최고로 쳐주는 세상이 밉기 짝이 없습니다.
방죽을 따라 걷다가 보면 횡재하는 경우가 있지요. 바로 산딸기가 지천이거든요.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산딸기 따먹느라 저녁 산책길이 수선스럽습니다. 얼만큼? 맛은 괜찮구? 잘익은 거로 따 먹으면 쉽게 꼭지가 빠지며 입 안 가득 달콤한 과육을 씹는 맛은 어디에 비할까요. 배가 부르도록 따먹었으니 복에 겨웁다는 게 맞아 떨어지는 표현일까요? 혹시나 해서 미리 변명합지요. 산딸기 먹었다고 힘 좀 쓸거라고 상상 아니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워낙에 고상해서요. 후후후...아참! 엘리지가 하우스 일 끝나고 올때 일로와서 산딸긴지 복분자인지 따간 건 아닌지 몰따. 그래도 염치가 있어서 잘 익은 거로만 골라 몇개씩 따먹고 남겨둡니다. 뒤에 오는 길손을 위해서. 더위에 지친 화사(꽃뱀)가 목이나 축이라고. 가끔 얼룩얼룩 무늬가 고운 꽃뱀이 풀밭을 스쳐 지나가는 걸 봤거든요. (딸기철이 지난지 언제인데. 분위기상 딸기를 넣어봤습니다)
내키를 넘어가는 무성한 억새가 줄지어 선 방둑에는 생명이 넘쳐납니다. 걸음마다 거미줄이 칭칭 감겨요. 거미가 어벙한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질긴 거미줄을 쳐둔 여름 방둑에 어찌 저만 걸어갔을려고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부지런한 농부가 지나갔을거고. 한가한 백면서생도 뒷짐 지고 걸었을 텐데도 거미줄은 집요하게 저를 감아오네요. 곧게 뻗은 방둑이 허리를 펴나 굽어 돌아가는 데 이르면 개울물이 은빛 허리를 감으며 갈짓자로 노을이 시작하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저만치 물푸레나무가 무성합니다. 가지 하나를 꺽어서 흘러가는 개울에 담가나 볼까요. 물에 넣으면 물을 온통 푸르게 한다는 물푸레니까 장마 끝에 황톳빛으로 흘러가는 개울이 온통 푸른 물로 넘치겠지요. 그대의 마음도 그렇게 푸르렀으면 좋겠습니다. 파득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오리 떼가 옹기종기 모여서 날개를 쉬고 있는 저녁도 어느덧 저물어갑니다.
엘리제,
그리운, 내 사람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