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天路歷程)
배영춘
나는 소란스러운 거리를 걷다가 수림 속에 포근하게 자리 잡은, 조용하면서도 청신한 분위기의 연변대학교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흐트러지고 구겨졌던 내 삶이 녹색 물감을 머금듯 살아나면서 지상천국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나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며 직선으로 뻗은 까마득한 층계 위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어우러져 웅장함과 거창함에 어마어마한 위압감으로 주눅이 들 정도였다. 개강 시간이 되어가자 기숙사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강의 교실로 찾아가기 위해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른다. 학습을 위하여 숨 가쁜 계단을 오르는 학생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나 역시 인생에서 또 한 갈래의 천로역정의 계단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 한 걸음 한 걸음은 나의 정열과 의미가 있는 학습이어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부신 찬란함 속에 혹독한 여정의 끝이 저 계단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일상생활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불혹을 넘기고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창의성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연변 작가협회에서 주최한 문학창작 강습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4월18일부터 시작한 문학창작 학습이었으나 늦게 소식을 접한 나는 한국에서 하고 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중국으로 오다 보니 5월 초순부터 강의를 듣게 되어 아쉬움이 많았다.
20년 만에 다시 찾아보는 연길시에 들어서자 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으나 연변대학에서 공부하는 딸까지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동북아 버스 역에 도착하자 딸이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2년 6개월을 보지 못한 딸은 대학생이 되어 내 앞에 서 있는 게 이미 숙녀로 예쁘게 변해 있었다. 우리는 동북아 버스 역에서 나왔다. 동서남북으로 모두 빌딩 숲을 이루어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자가용이나 택시들이 사람을 태우려고 줄을 지어 길이 꽉 막혀 있다. 예쁜 딸은 급한 게 없으니 택시보다 시내버스 타고 가자고 했다. 시원스럽게 넓어진 큰길이며 물결이 출렁이는 부르하통하, 깨끗해진 거리와 멋있어진 건물, 이전의 컴컴하고 지저분함은 없어졌고 스프링클러가 새파란 잔디를 적시고 있다. 공터에 마련된 노천 헬스 기구며 그네들에서는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법석댄다. 고층 아파트도 우후죽순처럼 일어서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나는 연길의 변화를 만끽하며 연변 작가협회에서 마련해준 한성호텔에 들어섰다.
문학 창작 학습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문인들은‘뿌리’에 착안하여 창작해야.” “중국 문학의 현황과 작가의 사명” 등등 명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창작의 미래를 생각하며 설렘과 함께 다채로운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순수문학 창작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었다.
강의가 없어 모처럼 쉬는 오후, 나는 소설가 량영철씨의 초대로 시인 박춘월씨, 번역가 리계화씨와 함께 모아산 둘레길을 걸었다. 영산홍꽃, 배꽃, 살구꽃이 뒤엉켜 피면서 그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여인들은 더욱더 예뻐 보였고 남자들도 의젓해지는 느낌이었다. 반지르르하게 윤기 흐르는 새잎은 그런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줬다. 따뜻한 봄날의 아지랑이 더위를 몰아왔고 새의 지저귐, 약수터의 물소리, 이름 모를 벌레들, 솟아오르는 새싹, 봄의 모든 것이 모아산, 그곳에 있었다. 직선으로 곧추 뻗은 무성한 소나무들 사이에 손바닥만 한 하늘이 보였다. 그 사이로 햇빛이 파고들면서 나의 얼굴을 비춰주고 어로 쓸어 주었다. 그 빛의 영롱함과 찬란함에 피곤함이 싹 가셔졌다.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뛰어가다가 멈춰 서서 먹잇감을 양손으로 들고 먹고 있었는데 그 입놀림이 부지런했다. 하도 귀여워 우리 일행은 멈춰 서서 다람쥐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팥알만큼도 못돼 보이는 다람쥐의 까만 눈과 우리의 눈은 한참을 서로 교감을 했다. 우리가 몸을 움직여 걷기 시작하자, 다람쥐도 우리를 경계하면서 숲으로 쏙 들어가면서 몸을 숨겼다. 동식물에 박식한 소설가 량영철씨가 여러 종류 나무와 꽃, 그리고 벌레의 특징까지 설명해 주고, 다람쥐를 잡고, 뱀을 가지고 놀던 일 등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가벼운 코스를 돌며 문학에 대해서 의논하고 같이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한 바퀴 돌아 모아산 입구로 되돌아왔다.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모아산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시민들의 안식처로 되어있었다. 신록의 싱그러움으로 짙어가는 화창한 봄날의 꽃을 배경으로 우리는 소중한 사진 한 컷을 남겼다. 꽃잎의 화려함과 야들야들하게 햇빛을 반사하는 새잎은 새로운 늦깎이 공부를 하는 나의 마음과도 같다.
지나간 세월의 멍든 상처 때문에, 나는 예쁜 봄의 새잎과 아름다운 꽃이 향기를 지니고 있었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아니,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찾아드는 계절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며 짧은 봄의 화사함과 고느적한 가을의 정숙함, 또한 겨울 같은 혹독한 여정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새 잎과도 같은 여린 마음과 청순함을 오늘까지 유지하려고 노력도 해봤다. 그러나 반들반들하던 피부는 윤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먼지투성이고 초췌한 모습에 흰 머리카락, 반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과의 경쟁 속에 내몰려 심리적 고통에 소외감도 느껴보면서도 나의 작은 행복 같은 것들을 지켜보려고 안간힘도 썼지만, 세월의 흐름과 불규칙한 생활은 스트레스로 변질하여 상처 받으며 늙어만 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가만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고목이 되고 만다. 나 역시 그렇다. 자연 일부처럼 수없이 물오르는 사춘기에는 질풍노도의 활력으로 살았고 새싹이 돋듯 아름다웠다. 단풍이 드는 중년기인 지금, 어찌 보면 나 자신이 태어나서 물 한번 올랐다 빠져 늙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학을 등에 지고 향하는 하늘 길만이 천로역정이 아닐까 싶다.
이 시점에 내게 주어진 문학 공부의 기회, 그리고 연변에서 만난 사람들이 큰 재부이고 수확이다. 나는 내게 찾아온 이 빛나는 인연을 보배로 받쳐 들고 싶다. 다시 시작하는 문학 공부 앞에 쉬지 않고 문인들의 뒤를 따라가고 싶다.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겸손과 그 고통이 사랑의 속성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그 사랑의 속성 찾아 나는 오늘도 행복한 세상을 헤맨다.
2019년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