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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2인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던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철학적 측면에서 정리하여 다룬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은 불가리아 출신의 철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엮어냈다고 한다. 크리스테바가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프랑스어로 행해진 강연을 영어로 번역하여 2001년에 토론토대학 출판부에서 출간을 했으며, 이 책은 영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겠다.
크리스테바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등 ‘이미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심각하게 토론된 그녀(아렌트)의 정치적 작품들에 대해서는 크게 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학위논문을 비롯하여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저술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위에서 언급한 책들만 읽은 나로서는 한나 아렌트의 저술에 담긴 내용들에 익숙하지 않아 책이 전반적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1장에서는 책의 부제와 같은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라는 제목으로, 아렌트의 일생을 간략하게 개관하면서 그녀의 사상적 편력을 논하고 있다. 사람의 탄생과 죽음을 ‘하나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아렌트의 관점이 강조되고 있다고 하겠다. 2장에서는 아렌트 철학의 연원과 영향 관계를 논하는 내용으로서, ‘아렌트와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하기를 위한 변증’이라는 제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렌트 사상의 근본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탐색하고, 니체의 사상을 섭렵하고 20세기의 학자 하이데거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실증하고 있다.
‘20세기를 이야기하기’라는 제목의 3장에서는 아렌트 자신을 포함해서 20세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사상과의 관련 양상과 비교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치러지고 그 자신이 나치의 대량학살을 피해 망명을 택했던 아렌트에게, ‘공포와 홀로코스트를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치장한 것은 어떤 이해나 분석 또는 합리주의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크리스테바는 아렌트가 니체의 ‘생의 철학’에 주목했고, ‘아마도 그녀 자신의 방식으로, 특별히 정치철학으로서의 생의 철학을 실현하고 행한 20세기의 유일한 철학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4장에서는 ‘인격과 몸’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아렌트의 철학은 ‘인간의 본질에 집중하는 근본적 존재론의 전유로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강연자는 ‘여성성은 우리의 첫 번째 기원으로부터 주어진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알기를 아렌트에게서 정치적인 것의 대상이 되는 행위를 위한 본질적인 차이라고 보여진다’고 강조한다. 곧 아렌트가 ‘각자와 모든 사람의 자아를 주장하는 일에 전념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몸의 탐구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으로 연결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마지막 장인 ‘판단’은 아렌트의 마지막이자 미완성저술을 대상으로 논하면서, 강연자는 아마도 저술의 최종적인 목표는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이은 <정치이성 비판>이었을 것이라고 파악한다. ‘용서는 사람을 향한 것이지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관점에서 아이히만의 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논한 아렌트가 나치의 행위까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처벌은 용서와 마찬가지로 그것 없이는 끊임없이 계속 일어날지 모르는 어떤 것에 종결을 짓는 일’이고, 특히 용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실상 이러한 논의들은 아렌트의 다양한 저서들을 접하지 않고서는 깊이 있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겠다. 다만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역자 후기’를 통해서 아렌트 사상의 본질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크리스테바의 강연이 ‘이미 아렌트 사상에 대해서 선이해가 있다고 가정한 사람들에게 한’ 것이기에 번역자도 어려웠음을 고백하는 것에서 다소의 위안을 얻었음을 밝힌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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