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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일본의 동화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일본 근대의 동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일컬어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인 <은하철도의 밤>은 작품집에 수록된 겐지의 대표작이자 표제작으로, 은하수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하는 수업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작품이다. 교실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선생님의 내용을 읽으면서, 문득 무한한 우주 속에서 보잘것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고 조금식 그 비밀을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이 또한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까? 최근에 읽었던, 몸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의 장애를 가졌음에도 우주의 비밀을 풀려고 죽을 때까지 노력했던 <스티븐 호킹>이라는 책 내용이 떠올랐다.
선원인 아버지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병든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조반니는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해달 가죽 웃도리를 가져다 준다'는 놀림을 받는다. 정확한 주석이 달려있지 않아 그 의미가 불명확하지만, 친구들이 조반니를 만날 때마다 하는 이 말은 아마도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놀리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놀림에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과 겉도는 조반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끼리 친구인 캄파넬라만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듯하지만, 그 역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조반니에게 그저 안타까운 눈길만 보낼 뿐이다.
학교에서 파한 후 집에 돌아온 조반니는 우유가 배달되지 않은 것을 알고, 우유 보급소로 우유를 가지러 간다. 보급소 주인이 없어 기다리던 중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조반니는 언덕으로 가서 쉬다가 잠시 꿈을 꾼다. 조반니는 꿈속에서 은하열차를 타고 친구 캄파오네와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데, 그 내용은 마치 애니매이션 <은하철도 999>를 연상시킨다. 꿈에서 깬 조반니가 보급소에서 우유를 받아오다 축제놀이를 하던 캄파오네가 물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캄파오네의 생사를 궁금해하는 그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으로 작품은 종결된다.
<바람 소년 마타사부로>는 작품집에 수록된 두 번째 동화 작품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등교하는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12일 동안에 일어났던 일상을 기록한 내용이다. 배경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하나의 교실에서 공부하는 한적한 광산촌의 초등학교이며,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는 날 바람이 부는 날씨에 전학을 온 친구를 아이들이 마주치면서 작품의 내용은 시작된다. 첫 부분에서 광산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온 낯선 전학생에 대한 다른 아이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다카다 사부로라는 이름을 가진 전학생이 온 날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는 의미로, 그에게 아이들은 '또 하나의 바람'이라는 뜻의 마타사부로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처음에 전학생과 서먹하던 관계도 차츰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친해지게 되지만, 아버지의 광산일이 뜻대로 되지 않다 불과 열흘만에 사부로가 전학을 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동안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지만, 아이들은 바람같이 사라진 사부로를 자신들이 붙여준 별명처럼 '바람 소년'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작품은 종결된다. 이 작품에는 이렇듯 조그만 시골학교에서 벌어진 전학생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필치로 펼쳐지고 있다.
<개머루와 무지개>는 짧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단편의 우화라고 할 수 있다. 늦가을 시들기만을 기다리는 개머루와 무지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개머루에게는 하늘의 무지개가 동경과 희망이 대상이다. 그래서 개머루는 열매가 떨어지는 겨울철이 되기 전에 무지개와 한번만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마침내 무지개가 뜨고 개머루는 무지개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오히려 무지개는 개머루를 부러워하는 말을 전한다. 무지개는 잠시 생겼다가 사라지지만, 개머루는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라지지 않는 무지개'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은 아닐까? 작가가 이 짧은 우화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할 것이다.
<땅신과 여우>는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의 하나로, 이 역시 우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벚나무 아가씨'와 우직하지만 거친 늪지에 살고 있는 '땅신' 그리고 거짓말과 허세를 일삼는 '여우'가 등장하는 내용이다. '산벚나무 아가씨'의 환심을 사려는 '땅신'과 '여우' 사이에 벌어지는 일종의 삼각관계를 설정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러한 성격의 설정 역시 인간 사회의 면모를 풍자하려는 의도가 개재해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점잖아서 남을 화나게 하거나 기분나쁘게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여우에게 산벚나무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이에 비해 땅신은 '성격은 난폭하고 머리카락은 무명실처럼 거칠거칠하고 두 눈은 시뻘겋고 옷은 꼭 미역 같으며 늘 맨발인 데다가 발톱은 검고 기다랬'기 때문이다. 항상 산벚나무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여우를 질투한 나머지, 결국 땅신은 여우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그의 집에 찾아간 땅신은 여우가 살아생전 했던 말이 다 거짓말이고 허세였음을 확인하고,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머금고' 죽어 있는 여우를 보면서 땅신이 소리내어 우는 것으로 작품은 귀결된다.
마지막에 수록된 <수선월 4일>이라는 작품 역시 ‘눈 할머니’와 ‘눈 아이’ 등이 등장하여, 늦겨울 마지막 눈보라를 몰아오는 시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제목이기도 한 ‘수선월 4일’은 봄이 되기 전 세차게 눈이 내리는 날로 설정되어 있는데,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본 역시 우리의 ‘꽃샘추위’에 대응하는 초봄의 매서운 추위가 있기에 이러한 설정을 햇을 것이라 이해된다. 눈보라를 힘겹게 걷고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눈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으로 담요에 쌓여 눈 속에 잠들어 있던 아이는 다음날 아침 아버지에게 발견되는 것으로 작품이 끝맺는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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