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인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감독인 트리에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 있는 작품이었다. 트리에는 병원을 소재로 한 '킹덤'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기 때문에 간혹 화면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작중 인물의 심리와 관계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화면을 보면서 더욱 긴장하게 된다.
변두리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방인의 처지. 낯선 땅 미국에서 살고 있는 체코 출신인 주인공 셀마의 삶을 한마디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다. 하나는 자신처럼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을 위하여 돈을 모아 수술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국에 있을 때 매료된 할리우드 뮤지컬을 마음껏 보고 연기하는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점차 잃어가는 시력 속에서도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또 일과 후에는 작은 극단에서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다. 공장 친구인 크왈다가 그녀의 이러한 처지를 알게되어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라면, 집주인인 빌은 자신의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가엾은 셀마의 돈(아들의 수술비)를 훔쳐낸다.
결국 자신의 돈을 훔친 빌을 찾아가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그를 죽여 재판을 받게되지만, 끝내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인물의 배치는 흔히 '자유와 꿈의 나라'라고 인식되는 미국의 양면적인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의 검사와 배심원, 그리고 아들을 위하여 굳게 입을 다문 셀마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은 이방인인 약자가 당해낼 수 없는 강대국의 힘앞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강변할 수 있음에도 끝까지 죽은 빌과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 때문에 입을 다무는 셀마. 결국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서 빌을 죽여야 했고, 빌 또한 자신의 유산이 많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아내 린다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불쌍한 셀마의 돈을 훔칠 수밖에 없고, 살아서는 그 사실을 아내에게 들키게 되기 때문에 죽여달라고 사정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에서 돈때문에 발생하는 비극적인 모습이 비춰진다. 사람보다는 돈이 앞설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인 삶의 모습.
여기에 이방인인 셀마에게 사랑을 느끼는 제프라는 인물. 매번 그녀에게 차가운 대접을 받지만, 변함없이 그녀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인물이다. 또한 춤을 추는 그녀의 재능을 알고 캐스팅한 극단의 연출가 역시 그녀의 이방인적 삶을 위로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끝내 자신의 시력 때문에 주인공 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그리고 그의 신고로 경찰에 붙들려가게 된다. 그녀가 극단에서 연기하는 작품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며, 그녀의 역은 주인공인 마리아 역이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작품을 느끼기 위해,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극장을 찾아서 영화를 보고 크왈다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장면은 그녀에게 뮤지컬이란, 아니 춤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소리를 통해서 리듬을 익히고, 상사 속에서나마 뮤지컬을 연기하는 셀마. 그녀에게는 모든 소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한 감방조차도 견딜 수없는 환경이 되고,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환기구를 통해서 소리를 맛보고자 한다.
마지막 삶에 대한 미련을 확인한 크왈다는 아들의 수술비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셀마를 위해 새로운 변호사를 소개하고, 재심을 요청하게 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수임료가 아들의 수술비라는 사실을 알고, 단호하게 재판을 포기한다. 눈을 잃은 삶이 어떻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는 아들에게만큼은 그것을 물려주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왜 아들을 낳았냐는 제트의 물음에 단지 '아들을 품에 안고 싶어서'라고 대답하는 그녀에게 아들의 존재는 삶의 목적과 동일한 것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가명으로 예약을 하고, 영수증조차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돈을 수술비로 지불한 것을 알게되면, 수사 과정에서 반드시 증거로 빼앗길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셀마는 아들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크왈다의 말을 듣게되고, 아들이 쓰던 안경을 품에 품고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에게만큼은 자신과 같은 천형을 안겨주지 않게되었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서...
셀마가 빌을 죽이고 나오는 순간 집앞에 게양되어 있는 성조기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위선과 영광을 동시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프칸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란 미국과 미국민의 그것이지 보편적인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치와는 거리가 지극히 멀다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차니)